보스턴 레드삭스가 야심차게 영입한 마운드의 우승청부사, 데이빗 프라이스와 크리스 세일이 비로소 자신이 보스턴에 온 이유를 증명해냈다.
보스턴은 29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LA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5-1로 승리를 거뒀다. 보스턴은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2013년 이후 5년 만에 월드시리즈 패권을 탈환했다. 아울러 통산 9번째 우승이자 2000년대 들어 4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2000년대 최강팀의 입지를 다졌다.
올해 보스턴은 리그 최강이었고 탄탄대로를 걸었다. 108승54패의 경이적인 승률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일찌감치 확정지었고, 구단 역사상 최다승 기록까지 경신했다. 결국 뉴욕 양키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LA 다저스까지 격파하면서 왕좌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우승을 향한 여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2013년 우승 이듬해인 2014년 71승91패, 2015년 역시 78승84패에 머물며 2년 연속 지구 최하위로 추락했다.
2015년 8월, '극단적 윈나우' 성향의 데이브 돔보로스키 단장을 선임하며 오프시즌을 공격적으로 보냈다. 2016년을 앞두고 프리에이전트(FA) 투수 최대어 데이빗 프라이스와 계약기간 7년 총액 2억17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1대4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좌완 크리스 세일을 데려왔다. 당시 프라이스는 가을야구에서의 부진, 그리고 세일은 단 한 번도 가을야구 무대를 밟아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우려가 있었지만 이들은 보스턴의 우승청부사가 돼야 했다.
일단 보스턴은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명예회복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 문턱은 밟지도 못하고 좌절했다. 완전한 명예회복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보스턴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월드시리즈 우승이었다.
이젠 세일과 프라이스가 진정한 역할을 해줘야 할 시기였다. 시즌 중 어깨 부상에 시달렸던 세일의 내구성, 프라이스의 울렁증은 시한폭탄 우려가 있었다.
세일은 기선제압이 중요했던 양키스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5⅓이닝 8탈삼진 2실점 역투로 승리를 따냈다. 대권행보의 첫 단추를 제대로 뀄다. 이후는 다소 부진했다. 디비전시리즈 4차전 구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역할을 했을 뿐 휴스턴과의 챔피언십시리즈,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모두 5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세일은 비록 마운드 위에서는 제 몫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 4차전, 세일은 덕아웃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3차전 연장 18회 7시간 20분의 혈투 끝에 패한 보스턴, 4차전 역시 6회말 야시엘 푸이그에 3점포를 얻어맞는 등 4점을 헌납하며 패색이 짙어졌다. 3차전 혈투의 후유증이 시리즈의 모멘텀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7회초 공격 때 덕아웃에 비춰진 세일은 그 누구보다 분노했다. 덕아웃에서 고함을 치면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연장 혈투 이후 축 쳐진 선수단이었다. 하지만 세일의 고함이 선수단에 결국 영향을 끼쳤다. 7회초, 다저스는 미치 모어랜드의 대타 3점포로 추격했고, 8회초 스티브 피어스가 동점포를 터뜨린 뒤 9회초 5점을 더 추가하면서 4점 차 역전극을 일궜다.

4차전을 승리로 끝낸 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알렉스 코라 감독은 "나는 영어가 짧아서 세일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 못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이내, "우리팀 그 어떤 누구도 에너지가 없다고 느꼈다. 분명 푸이그에 홈런을 허용했지만, 우리는 경기를 계속 해야 했다"면서 "남은 3이닝 동안 우리가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에서 하던 것처럼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미치(모어랜드)의 홈런이 그 사실을 일깨웠다"고 말했다. 세일의 고함이 어떤 방식으로든 경기에 영향을 끼쳤다고 인정했다. 세일의 고함은 시리즈 전체가 넘어갈 수 있던 시점에서 또 다른 모멘텀을 만들었다.
프라이스의 행보는 정반대. 세일의 바통을 이어받아 나온 디비전시리즈 2차전 1⅔이닝 3실점 수모를 당했다. 가을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했고, 홈 팬들의 야유까지 덤으로 받았다. 이후 프라이스는 환골탈태했다. 세일보다 프라이스가 보스턴 가을 마운드의 주역이었다.
마운드 위에서는 프라이스가 몸소 투지를 선보였다. 2차전 6이닝 2실점 승리 투수를 이끈 프라이스는 3차전 경기를 앞두고 코라 감독을 향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만약 (내가) 필요하다면, 나는 준비돼 있다." 하루 휴식 후 3차전 불펜 등판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직접 전한 것. 그리고 3차전 팀은 패했지만 불펜으로 나와 ⅔이닝 무실점으로 의지를 확인시켰다.
그리고 대망의 5차전, 프라이스는 선발 등판 후 3일, 불펜 등판 후 하루 휴식을 취하고 다시 선발 마운드에 올랐다. 우려를 낳았지만 프라이스는 투혼으로 마운드를 버텼다. 7이닝 1실점의 대역투. 짧은 휴식이 프라이스의 투혼을 막을 수 없었다. 3경기에 등판해 2승 평균자책점 1.98(13⅔이닝 3실점)의 대역투. 포스트시즌 새가슴의 오명은 훌훌 털어버린 뒤였다. 우승 뒤 코라 감독은 "프라이스가 어제 ‘내가 준비됐으니 내일 절 써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냈더라. 그는 마무리를 짓길 원했고, 오늘 그렇게 했다. 그가 자랑스럽다”고 극찬했다.
마지막 5차전 프라이스의 역투, 그리고 세일의 1이닝 마무리로 우승을 확정 지었다. 세일과 프라이스는 과거의 데이터와 편견을 극복했다. 자신들의 위치에서 해야할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해냈다. 스스로 우승청부사임을 증명하며 환호했다. /jhra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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