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우승' 아산 팬은 웃지 못한다..."사형 선고 기다리는 기분"
OSEN 이인환 기자
발행 2018.11.03 05: 33

선수, 코칭스태프, 구단 직원, 팬의 1년여 땀방울이 무너졌다. 우승했지만 누구 하나 웃지 못하는 아산 무궁화의 이야기다.
아산 무궁화 축구단 존속을 위한 축구인 결의대회가 2일 오전 11시 서울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총재와 홍명보 전무이사 및 임직원, 아산 박동혁 감독 및 선수단, 최용수 FC서울 감독, 최진철, 김병지, 송중국, OB축구회, 축구 원로, 아산 유소년 선수가 참석해 경찰청의 일방적인 선수 수급 중단 철회를 요청했다.

아산 서포터즈들도 동참했다. 아산 팬인 윤효원-허유경-우상희는 이날 집회에 참석해서 여러 축구계 인사들과 함께 경찰대학에 대해서 성토했다. 아산 팬들 입장에서 갑작스러운 선수 수급 중단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경찰대학은 지난 9월 프로축구연맹과 아산 구단에게 예정됐던 선수 수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애초 경찰대학-아산-프로축구연맹은 정부의 점진적인 의경 폐지에 발맞춰, 단계별로 시민 구단 전환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찰대학의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아산은 지난 10월 27일 서울 이랜드 FC와 K리그2 3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4-0으로 대승을 거뒀다. 이날 승리로 아산은 2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승점 66점(19승 9무 6패)으로 2위 성남 FC와 승점 7점 차이를 벌리며 2018시즌 K리그2 타이틀을 차지했다
하지만 우승에도 아산 관계자들은 웃지 못하고 있다. 경찰대학이 축구계의 지속적인 항의에도 아무론 소통 없이 선수 수급 중단이라는 일방적인 태도만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산 유니폼을 입고 서울로 올라온 윤효원 씨는 "올 여름까지 서포터즈를 향해 경찰 관계자들이 다음 시즌도 잘해보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돌연 입장을 바뀐 것이 화가 난다. 팬들은 아산이 2020년이나 2021년에 사라지는 것을 다 알면서도 구단을 사랑한 사람들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FC 서울의 팬으로 주세종을 따라 아산 팬이 된 허유경 씨는 "팬이나 구단에 사전에 전혀 통보 없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화가 난다. 통보 이후 경찰대학은 일방적으로 팬들과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 7월에 선수가 제대할 때까지 전혀 몰랐다. 승격만을 꿈꾸다가 기사를 보고 늦게 알아 큰 충격에 빠졌다"고 호소했다.
경찰대학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아산은 점점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 팀 존립도 중요하지만, 우승을 하고도 승격 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오는 5일 열리는 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는 이번 시즌 K리그2 구단의 승격 문제와 방식에 대해서 거론할 계획이다. 만약 이날 전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아산의 다음 시즌 승격은 무산된다
윤효원 씨는 "준비가 안 돼서 K리그2에 남는다고 결정하면 모르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다. 훨씬 빠른 시점에서 승격 문제가 결정되니, 과장을 보태서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기분이다. 팬이 있기 때문에 구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대학뿐만 아니라 연맹이 아산 팬들 입장을 반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쉽다"고 토로했다.
허유경 씨는 "아산은 특혜가 아니라 선수들의 특기를 살린 것이다. 시즌 내내 노력해서 당당히 우승을 이뤄내 승격 권리를 얻었다. 노력해서 얻은 권리를 종이 한장으로 박탈당해야 하나. 죄없는 선수들과 팬이 왜 피해를 봐야 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산은 오는 4일 홈구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FC 안양과 이번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가진다. 이날 경기에서 아산은 우승 세리머니를 진행할 계획이다. 아산 사태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없다면 이날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우승 세리머니가 될 것이다.
우승 세리머니 다음 날에 한시즌 농사가 모두 물거품이 될 확률이 높은 현실 앞에 아산 팬들은 그저 고개를 떨궜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너무 잔인하다. 화가 나다. 경찰대학의 행보는 정부의 시책을 따른다고 말만 하고 숨은 것이다. 그들의 방식은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방향성과는 정반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1월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성할 때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이해 단체-국민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움직이겠다'고 사과하지 않았나. 이런데도 왜 경찰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런 독단을 저지르는지 모르겠다"고 분노를 토했다.
윤효원 씨는 "정부 시책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민의 세를 먹는 공무원이라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의무라 생각한다 지금 경찰대학은 '정부 시책'이라는 말만 외치며 일방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 태도에 너무 화가 난다. 동네 슈퍼도 이렇게 갑자기 없애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산 팬들은 9월 선수 수급 중단 소식을 듣자 여러 방면에서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경찰대학의 이른바 매크로 답변들이었다. 허유경 씨는 "이건 경찰대학의 갑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아산 폐지가 정말 문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결정인지 궁금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가족 모두 아산 팬이라는 우상희 씨는 "팬으로 책임감을 느껴 수차례 국민 신문고에 글을 올렸다. 하지만 매번 다른 질문에 똑같은 '복붙' 답변이 돌아왔다. 또한 선수 수급 중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협약 위반이 아니라고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경찰 대학의 이런 무책임한 대처에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응원팀이 우승했지만, 전혀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자칫 잘못하면 응원하던 팀이 공중 분해될 위기이다. 서울에서 결의 대회가 끝났지만 아산 팬들은 전혀 쉴 수가 없었다. 바로 아산으로 내려가서 시가 주관하는 시민 구단 전환에 관한 공청회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산 팬들은 응원팀이 우승했음에도 전혀 기쁨을 표하지 못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이곳 저곳을 떠도는 처지가 됐다. 그 때문일까. 바쁘게 타고 온 구단 버스를 향하는 아산 팬들의 걸음은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mcadooo@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