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플레이오프 MVP에 선정된 SK 김강민(36)은 공식 인터뷰를 마친 뒤 자리를 일어서기 전 취재진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잠시 숨을 고른 김강민은 "이제 먹튀라고 그만 이야기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라고 농담 섞인 속내를 털어놓으며 자리를 떴다.
'FA 먹튀'. 지난 몇 년간 김강민에게 따라다닌 꼬리표였다. 지난 2014년 시즌을 마친 뒤 김강민은 4년 총액 56억원에 SK와 FA 재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오른손 외야수 기준으로 삼성 심정수(60억원) 이후 역대 두 번째 최고액을 받았다. 공수주 삼박자를 갖춘 특급 외야수, 그만한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었다.

실제 당시 김성근 전 감독이 부임한 한화가 김강민을 영입 우선순위로 두고 그가 시장에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SK가 당시 FA 우선협상기간 마지막 날 김강민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SK 왕조 주축 멤버로서 그의 계약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FA 계약 첫 해부터 부상이 겹치며 부진에 빠지기 시작했다. FA 계약 4년간 379경기 타율 2할7푼 33홈런 142타점 OPS .760. FA 계약 전 4년간 421경기 타율 2할8푼9리 39홈런 201타점 OPS .783에 비해 성적이 하락했다.
2016년 115경기 타율 2할9푼8리 109안타 10홈런 47타점으로 그나마 제 몫을 했을 뿐 2017~2018년 2년 연속 90경기 이하로 뛰었다. 지난해 타율 2할1푼9리로 바닥을 쳤고, 올해는 3월말부터 6월 중순까지 퓨처스에 머물렀다. 그 사이 SK 외야는 젊은 선수들로 리빌딩됐다.

그렇게 점점 잊혀 져 가던 김강민이었지만 7월부터 반등을 시작했다. 후반기 타율 3할1리 12홈런 35타점으로 살아났다. 여세를 몰아 플레이오프에서도 21타수 9안타 타율 4할2푼9리 3홈런 6타점 맹타를 휘두르며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먹튀' 오명을 한 번에 씻어냈다.
김강민은 "올 시즌 굉장히 힘들게 시작했다. 어려운 시간을 잘 헤쳐 나와 이렇게 좋은 일이 있는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힘든 순간들이었다. 다시 돌아가라면 돌아기기 싫은 날들이었다"며 "그렇다고 힐만 감독님 때문에 (1군) 경기에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순전히 내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그는 "지난해 시즌 시작할 때 1번타자는 나였다. 내가 슬럼프와 악재에 빠진 사이 노수광 선수가 잘하다 보니 자리가 바뀐 것이다. 누구를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변화가 먼저였다. 2군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2군 스태프들이 많이 신경 쓰고 도와준 덕분에 지금 다시 이렇게 플레이하고 있다. 힐만 감독님께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FA 먹튀 오명 속에서도 김강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찬란한 가을을 위해 칼을 갈고 있었고,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시련을 딛고 일어선 김강민에게 이제 '먹튀' 수식어는 빼야 할 것 같다. /waw@osen.co.kr
[사진] 인천=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