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가 마지막 소원은 고향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는 것이라고 전했다.
3일 방송된 KBS 2TV ‘대화의 희열’ 9번째 대화에서는 영원한 국민MC 송해가 출연했다. 92세 송해는 대한민국 최고령 현역 MC이자, 최장수 예능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아이콘이다.
종로에 위치한 '송해길'에 대해 송해는 "종로 낙원동은 제2의 고향이다. 영화인 작곡가 국악인 가수 등 종로에 사무실이 많았다. 종로 낙원동은 인심이 후해서 음식값이 제일 저렴하다. 제 사무실도 바로 이 앞"이라고 설명했다.

낮에 방송 없을 때 뭐하냐는 유희열의 질문에 "CF 세상이 뒤집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송해는 "화려한 시기를 지나고 나면 밖에 나오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나도 연예계에서 선배 축에 들다보니까 내 사무실에서 모이자고 해서 모이고 있다. 원로 연예인들이 나와서 바둑도 두고 그런다. 잘했다고 자부하는 건 치매 걸린 환자가 없다. 와서 노니까 신경이 쉴 사이가 없다. 저녁 6시 이후에는 강제 해산한다. 그 나이들 돼서 저녁에 휘청거리면 안되니까. '내가 말이야 옛날에' 그런 말 하면 안되니까"라고 말했다.

MC 유희열이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배출된 스타로 김혜연, 별, 송소희, 홍석천, 박상철 등을 언급했다.
송해는 "장윤정은 당시 다섯살 때 나왔다. 나이가 어리면 어머니랑 같이 나오라고 하는데 혼자 나왔다. 나중에 커서 다시 오라고 했는데 그때 '그럼 기념품이라도 주셔야죠'라고 했다. 그때도 깜찍했다"고 털어놨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여러분들이 주인공이다. 즐거움이나 등 여러분들이 알려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전달자일 뿐이다. 이 시간까지 3년 계획을 못 세워봤다. 춘하추동 개편을 하니까. 이 때쯤 되면 가을 개편이다"고 말했다.
이에 MC들이 "선생님도 개편을 고민하시냐"고 놀라자, 송해는 "당연히 고민한다"고 답했다.
많은 후배 MC들의 롤모델인 송해. 후배 진행자들에게 노하우를 좀 알려달라고 하자 "죽은 나무가 나와도 꽃피는 나무라고 그래라. 거짓말인지 모르지만, 예심에 나오는 사람들은 기성인이 아니라 아마추어다. 그러니까 연출가만 봐도 기가 죽는다. 연출가가 떠난 뒤 참가자를 만나면 힘을 실어준다. 내 사명은 저 사람을 소개하는 것이지 내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송해는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황해도 재령 출신인 송해는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생이별을 했다.
광복 당시에 대해 "열여덟이었다. 하도 쪼들리고 지배하에 있어서 소리를 지르는 것도 몰랐다. '광복' '독립'의 뜻도 잘 몰랐다. 만세 한번 잘못했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 광복 상상을 전혀 못했다. 옆에 친구도 뭔지 모르니까"라고 전했다.

해방 이후 5년 뒤, 6.25 전쟁이 터졌다. 송해는 당시 24세였다. 황해도 재령이 고향인 송해는 "처음엔 38선이 있어도 왕래를 했다. 장사하는 사람들, 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왕래를 했다. 어머니가 어느날 '오늘은 조심해라'고 했는데 그말이 영원한 작별 인사가 됐다. 전쟁이 터졌다. 어머니는 이별을 짐작하고 계셨던 것 같다"고 전했다.
마지막 어머니의 모습에 대한 질문에 "황해도 아낙들은 무명 모자를 잘 썼다. 씻김굿 할 때 쓰는 흰 모자와 비슷하다. 우리 어머니 참 예뻤다"며 눈물을 훔쳤다.
혈혈단신으로 부산에 온 송해는 바로 군 복무를 하게 됐다. 통신병으로 배치된 송해는 "휴전 전보를 내 손으로 쳤다"고 고백했다. 고향 땅으로 가는 길을 끊은, 송해의 얄궂은 운명. 그는 "내가 전보를 두드리고 내가 못 가냐"고 읊조렸다.
북한을 몇 번 방문했지만, 아직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송해의 고백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송해는 분단 후 가보지 못한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며 "마지막 소원은 고향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는 것"이라는 소망을 전해 출연진들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송해는 "'고향에 계신 여러분, 복희가 왔습니다. 전국노래자랑!' 하고 떠나고 싶습니다"라고 전했다. "그 장면이 꿈에 나올 정도"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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