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영화만"..故신성일, 엄앵란·이순재·안성기 눈물의 배웅(종합)[故신성일 추모]
OSEN 선미경 기자
발행 2018.11.05 07: 45

오직 영화만 생각하며 일생을 살았던 배우 고(故) 신성일은 이별도 영화 같았다. 아내 엄앵란을 비롯해 동료 배우들은 고 신성일과의 이별을 안타까워하며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고 신성일이 폐암 투병 중 4일 오전 2시 25분 별세했다. 1년 반 동안의 폐암 투병에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내비치면서 "꼭 회복하겠다"라는 의지를 보였던 고인. 고 신성일의 타계 소식에 영화계가 슬퍼했고, 동료 배우들이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
고인은 생전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 온 것은 물론, 한국 영화계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던 만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엄수된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30호실에 마련돼 4일 오후 1시부터 조문객을 받았다.

고 신성일은 생전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만 507편이 될 정도로 한국 영화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 또 영화 제작은 물론 감독으로도 참여했을 정도로 영화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아내 엄앵란도, 동료 배우들도 신성일의 영화 사랑을 기억하고 있었다.
엄앵란은 이날 빈소에서 딸과 함께 남편이자 영화계 동료였던 고 신성일을 추억했다. 엄앵란은 "고 신성일은 까무러쳐서 넘어가는 순간에도 영화만 생각했고, 죽어가면서도 영화 이야기를 했던 사람. 이렇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다"라며 "앞만 보고 가는 사람. 한가지만 명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 신성일의 남다른 영화 사랑에 대해 언급했다.
또 엄앵란은 "신성일은 '가정남자'가 아니라 '사회남자'였다. 일에 미쳐서 집안은 내게 맡겼고, 그래서 역할들을 소화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사회적이었고 일밖에 모르는 남자였다. 늘그막에 함께 재밌게 살려고 했는데 내 팔자가 이렇다. 존경할만 해서 55년을 함께 살았다"라고 덧붙였다.
고 신성일의 빈소가 마련된 후 동료 배우들과 지인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들은 영화를 사랑했던 고인을 추억하며 비통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 신성일에 대해 함께 추억했고 추모했다.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도 "신성일은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전무후무한 연기자다. 지난 9월 17일 신성일이 있는 화순으로 병문안을 갔을 때 그리 심각하지도 않았고, 이장호 감독의 영화에 들어간다고 대본을 각색하는 등 의욕을 가지고 영화 제작을 준비 중이었다. 갑자기 별세하게 돼 유감"이라고 말했다.
배우 최불암은 고 신성일의 빈소가 차려진 직후 달려왔다. 최불암은 "조금 더 건강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고인이 남긴 업적이 오래 빛나길 바란다. 철저하게 몸을 다스려온 분이라 후배들도 많이 놀랐다"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이어 황혜영도 고 신성일의 빈소를 찾아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황혜영은 "고 신성일을 큰아빠라 부를 정도로 가까웠다. 우리 집 경조사도 챙기고 내 결혼식도 와주셨던 분이다. 며칠 전까지 호전됐다는 얘길 들었었는데 안타깝다"라며 "후배된 입장에서 고 신성일은 우러러봐야 할 분이었다. 많이 안타깝다. 영화계 큰 별이 지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고 신성일이 폐암 투병을 하는 과정에서 꾸준히 만났던 김수미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불과 두 달 전에도 같이 밥을 먹었다. 더 계실 수 있었는데. 하늘에서도 배우하세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쏟았다.
동료 배우 이순재도 빈소를 찾았다. 이순재는 "고 신성일은 한국 영화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한 사람이다. 너무 일찍 간 사람. 신성일에 대한 많은 자료가 있어 후학들에게 좋은 교본이 될 것"이라며, "마지막으로 본 지는 오래됐으나, 그 때는 얼굴이 좋았었다. 건강이 좋았다면 말년까지 좋은 작업을 했을 것. 관계기관에서도 고인을 추모하고 아쉬워할 수 있길 바란다"이라고 말하며 고 신성일을 추모했다.
고 신성일과 여러 작품을 함께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배우 안성기 역시 슬픈 모습으로 빈소를 찾았다. 안성기는 "내년 영화 시나리오 작업도 거의 끝나갔고 오랜만에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떠나가서 안타깝고 허망하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안성기는 고 신성일이 이장호 감독과 준비 중이던 영화 '소확행(가제)'에서 호흡을 맞출 예정이었다.
또 안성기는 "고 신성일은 1960, 70년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스타였다. '스타'라는 말이 어울리는 분이었다. 그 사이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별빛에는 범접하지 못했다. 비록 그 빛은 졌지만 우리 마음에는 오래 함께하리라 생각한다"라며, "그 분의 왕성한 활동은 끝났지만, 마지막까지 현장에 계셨다. 우리도 그 연세까지 현장에 남을 수 있겠구나 하는 좋은 본보기이자 버팀목이 됐다"라고 고 신성일을 추억했다. 안성기는 고 신성일 장례위원장을 맞게 됐다.
배우 박상원도 "고인이 좋은 곳에서 편안히 영면하길 바란다. 고 신성일은 오늘날 같은 한국 영화 영광의 시대를 열어가신 분이다. 영면하시길 바란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도 "내년이 한국영화 100년이 되는 해다. 내년 그 중요한 자리에 신성일이 없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100주년을 맞아 영화인들이 뜻을 모아 신성일이 얼마나 영화계에서 중요한 일을 했고 의미있는 일을 했는지 알릴 수 있는 행사를 고민해보려 한다"라고 말하며 비통한 심경을 전했다.
고 신성일이 영화계의 '큰별'로 기억되는 만큼 많은 동료 배우들과 영화인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물로 고인을 떠나보내면서 하늘에서는 평안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고 신성일은 지난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이후 507편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며 스타덤에 올랐고, 한국 영화 발전에 공헌하며 영화계의 '큰 별'로 불렸다.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인기상은 물론, 연기상, 공로상까지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고 신성일은 '아낌없이 주련다', '그때 그사람', '매일 죽는 남자', '가정교사', '눈물 젖은 부산항', '동백 아가씨', '5인의 건달', '춘향', '청춘교실',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위기의 여자', '아메리카 아메리카 아메리카' 등에 출연하며 연기 열정을 불태웠다. /seon@osen.co.kr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OSEN DB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