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가 고(故) 신성일을 잃은지 이틀이 됐다. 각계 관계자들의 추모가 이어지는 가운데 많은 이들은 고인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고 신성일은 4일 오전 2시 25분 약 1년 반 가량의 폐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고인의 빈소는 같은 날 오후 1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고인이 눈을 감을 때부터 함께 했던 아내 엄앵란과 유가족이 빈소를 지키며 추모객들을 맞았다.
엄앵란은 고 신성일을 '사회적인 남자'로 기억했다. 가정에 소홀했지만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 엄앵란의 설명. 엄앵란은 "죽어가면서도 영화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다. 이렇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성일은 '가정남자'가 아니라 '사회남자'였다. 일에 미쳐서 집안은 내게 맡겼고, 그래서 역할들을 소화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사회적이었고 일밖에 모르는 남자였다"고 회상했다.

또 누군가에게 신성일은 '최고의 스타'였다. 임하룡은 "신성일은 헤어스타일 하나부터 화제가 됐고 엄앵란과 연애할 땐 노래가 나올 정도였다. 부러움의 대상이자 대단하신 분이었다"고 말했고, 안성기는 "고 신성일은 1960, 70년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스타'였다. 비록 그 빛은 졌지만 우리 마음 속에서 오래 함께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계 큰 별 중 하나가 진 만큼, 영화계에서도 그의 업적을 기려 최선의 예의를 갖춘다. 고 신성일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엄수된다. 지상학 회장과 배우 안성기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고, 신영균 김동호 김지미 윤일봉 김수용 남궁원 임권택 정진우 이두용 오석근 문희 고은아가 고문을 맡고, 이덕화 거룡 장미희 송강호 강수연 최민식이 부위원장을 맡는다.
또한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내년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영화인들이 뜻을 모아 신성일이 얼마나 영화계에서 중요한 일을 했고 의미있는 일을 했는지 알릴 수 있는 행사를 고민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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