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星一"'..사람이좋다' 故신성일, 이름처럼 하늘에서도 빛나길 [어저께TV]
OSEN 김수형 기자
발행 2018.11.14 06: 45

지난 3년간 곁에서 지켜본 故신성일에 대한 기록들을 전했다.  
13일 방송된 MBC 다큐 '사람이 좋다' 에서 신성일의 생전모습이 그려졌다. 
타계 4주 전, 부산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신성일의 미공개 영상도 공개됐다.  1964년 제 7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시작으로,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상 등 시상식에서 수상한 신성일. 그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참여한  공식 행사인 2018 부산국제영화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부산 호텔에서 만난 故 강신성일의 모습은 레드 카펫 위에서처럼 건강한 모습이 아니었다. 두 명의 간호사를 대동한 채 양 팔에 진통제를 맞고, 목까지 전이된 암 세포 때문에 목 보호대를 착용해야 하는 병약한 모습이었다. 그가 몸이 힘든 상태임에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것은, 이장호 감독과 약속한 내년 크랭크인 예정인 영화 ‘소확행’에 대한 애정과 그가 사망했다는 소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그가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올해로 23회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신성일도 인사를 전했다. 최악의 몸상태에서도 영화제에 참석해 후배와 동료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몸이 힘든지 이내 중간에 나와 식사를 하러 자리를 떠났다. 식당안에서 신성일은 휴대폰으로 영화제에서 찍힌 사진을 확인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이어 "루머가 뜨니까 해명해야지, 살아있다, 죽지 않았다"면서 "백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으로 살아있다고 보여줘야지"라며 미소지었다. 
취재 당시 신성일은 자신이 기르던 개가 2개월 전 사망한 것이 주변 사람 들에게 회자되다가 개가 죽었다는 것은 빠지고 ‘신성일이 투병 중에 사망했다’는 소문이 났다는 것. 요양을 위해 영천 집을 비워 둔 사이 발생 한 웃지 못 할 해프닝이었다. 한국 영화계의 거성, 故 강신성일이 타계 3주 전에 보인 진솔한 모습과 영화에 대한 열정을 들여다봤다. 
신성일은 "근육 다시 만들 것, 2차로 전이됐다지만 이겨낼 것"이라면서 암세포를 극복할 것이란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어 부산 영화의 거리에 도착한 그는, 유명배우들의 핸드프린팅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신성일은 지난해 핸드프린팅한 자신의 발자취를 보며 남다른 감회를 보였다. 
가족들의 솔직 고백도 그려졌다. 1960년 배우 엄앵란이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에서 본 신성일의 첫인상 은 ‘멋있다’였다. 1964년에 개봉한 정진우 감독의 영화 ‘배신’을 통해 연인이 된 두 사람은 같은 해 11월, 부부의 연을 맺었다. 엄앵란은 영화 ‘맨발의 청춘’에 출연한 젊은 신성일을 보면서 80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참 잘 생기고 싱싱했다’고 감탄했다. 특히, ‘깡패 역할의 액션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엄앵란은 여전히 신성일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그렇지만, 엄앵란에게 남편 신성일은 ‘집안에서 볼 수 없는 대문 밖의 남편’이었다고 했다. 신성일, 엄앵란 부부의 별거는 오래되고 유명했고, 신성일은 2011년 출간한 그의 자서전에서 본인의 혼외 로맨스를 솔직하게 털어놓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딸 강수화는 "생활방식이 전혀 달랐다"면서 "다섯살 때부터 별거를 하셨다, 다른 집도 부모님이 각방쓰는지 알았다"며 회상, 이어 "자서전 때도 인터뷰를 과거 이이갸만 빼라고 했는데 그것만 나갔다. 3개월동안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서 밖을 못 나갔다"며 속상했던 과거도 토로했다. 
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일까. 신성일의 사망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 중 하나가 ‘부인 엄앵란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전해라’였다.
영화계 큰별 답게 그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뤄졌다. 마지막 길도 영화계 선후배가 함께했다. 엄앵란은 "우리 남편에게 저승에서 순두부같은 여자 만나 구름타고 전세계 놀러다녀라 얘기하고 싶다"면서"울면 망자가 걸음을 못 걷는다고, 난 억지로 안 울 것, 집에서 혼자 울 것, 그동안 희노애란 많았지만 엉망진창으로 살았다, 다시 태어나서 다시 산다면 이제는 선녀같이 공경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후 신성일이 정해놓은 묏자리로 마지막 인사도 남겼다. 살아생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마지막도 결코 외롭지 않았다. 엄앵란은 "부부로 지낸지 55년, 오늘 보니 당신 대단한 사람, 참 베푸는 사람"이라면서 "내 자리 비워놓아라, 지금은 혼자자니까 춥지"라며 다시 올 것이라 했다. 반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여곡절이 참 많았던 두 사람, 잘 버텨낼 기에 건넬 수 있는 마지막 인사였다. 
딸 강수화 씨에게신성일은 미워할 수 없는 든든한 아버지였다. 2016년 영천에 찾아 온 막내 딸의 발 젖는다며 80세 노년임에도 딸을 번쩍 업어 들고는 개울을 넘었던 신성일. 딸 강수화 씨는 개울가에서 
자신을 업어 줬던 그런 아버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며, 평생 건강한 채 그 자리에 계실 줄 알았던 아버지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 지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전했다. 결국"정을 떼고 사시다가 정을 붙이고 가셨다"며 눈물을 흘렸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임종에 대해 신성일의 둘째 딸 강수화 씨는 아버지가 임종을 맞이하기 전, 아버지의 투병 생활에 대해 털어 놓았다. 병세가 악화돼 옮긴 광주의 한 병원에서 그는, 통증이 너무 심해져 이렇게 누워도 아프고 저렇게 누워도 아픈 상황에서 진통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힘든 투병 생활을 했다고.
항상 영화를 생각하며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신성일에게 병들고 근육이 빠져 버린 몸은 자신의 모습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병원에 문병을 와서 발을 씻겨 주겠다는 엄앵란의 말에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신성일. 그 이유는 바로 언제나 건강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그였기에 노랗게 황달 끼가 온 몸을 보이기 싫어서였다. 게다가, 발톱도 깎지 못한 채 앙상한 병자의 발은 보는 이마저 마음이 아플 정도라고 전했다. 
며칠 뒤, '아름다운 예술인상'으로신성일이 수상하게 됐고, 이를 대신 아내 엄앵란이 받았다. 엄앵란은 "한국 영화사 가장 화려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 본인이 있었으면 좋아했을 것. 죽을때까지 영화인"이라면서 "대리수상해줘서 고맙다,모든 걸 다 잘하지 못해 부끄럽다"며 소감을 전했다. 
한편,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故 강신성일. 한국 영화의 상징 이자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신성일이 11월 4일 폐암으로 별세했으며 많은 이들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추모했다. /ssu0818@osen.co.kr
[사진] '사람이 좋다' 방송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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