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고비도 이겨낸 이주실의 모정이 감동을 안겼다.
27일 방송된 MBC 시사교양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는 '국민엄마' 이주실의 인생이 그려졌다. 이주실은 영화 '꽃손'이 '2018 서울 노인영화제' 개막식으로 무대에 올랐다. 데뷔 54년차 연극계의 대모로 불리는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직장에 취직, 야간대학을 다녔다. 가정형편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면서 그 당시 특상을 받은 것이 동기가 돼서 방송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주실은 스물한 살에 대국방송 아나운서로 방송에 데뷔했다. 그 계기로 제2의 여운계라 불리며 무대에 오른 연극만 200여편이 넘는다. 최주봉 "연극계의 거물, 집념이 있고 다양한 색깔을 잘 표출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평생 연기라는 한 길만 고집해온 배우 이주실, 시대극 출연의상도 직접 준비한다고 했다. 그만한 이유는 어려운생활을 했던 습관들이 몸에 베어있기 때문이라고. 실버 돌싱이라는 그녀는 "아이를 낳고도 혼자 미역국을 끓였어야했다"면서 남편이 가정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주실은 "그 당시 어머니의 역할, 또 가장으로, 경제력까지 책임져야했다, 혼자서 다 해내기 정말 힘들었다. 뒤돌아보기 싫을만큼 힘든시기였다"고 돌아봤다.
이주실은 결혼생활 이혼후 홀로 두 딸을 키워왔다고 했다. 이주실은 "남편의 빈자리를 채운다는게 노력해서 되는 일은 아니었다. 벌지 않으면 안 될만큼 책임감, 의무감 같은게 등에 짊어지게 됐다"면서 "그것도 운명이었을까 생각, 이제와서 생각하면 무척 애썼구나란 생긱이 든다"고 회상했다.
이혼과 홀로 딸 둘을 키우는 것. 이후에도 인생의 고비는 계속됐다. 이혼 후 7년뒤 1998년, 유밤암 4기 발병이 됐다고. 게다가 유방암 말기로 한쪽 가슴을 모두 도려내야했던 아픈 과거를 떠올렸다. 막내가 겨우 7살일 때, 병원에서는 결국 1년이란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그녀였기도 했다. 이주실은 "살고싶단 생각 많이했다, 애들을 키워야하니까 살고싶단 생각 뿐"이라면서 "아이들이 독립할 때까지만이라도 살고싶다고 생각했다"며 애끊는 모정을 보였다.
이주실은 직장 근처에서 독립한 딸의 끼니를 걱정,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챙겨서 딸을 찾아갔다. 이주실은 암 진단후 딸들을 해외로 보냈다고 했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녀는 "그냥 떠밀어서 아이들을 보낼수 밖에 없었다, 떠밀어서 아이들을 보낸 건 미안한 정도가 아니라 상처였다"고 했다.당시 母를 이해할 수 없었다던 딸은 "이제야 엄마 마음이 이해가 된다, 저라도 그랬을 것"이라 말했다.

13년의 헤어짐, 빈 시간만큼 더욱 돈독해진 모녀였다. 이젠 친구처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딸과 함께 쇼핑에 나선 이주실은 딸에게 "뜨겁게 포옹하자"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그러면서 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주실은 "결혼 적령기가 있는데 그때를 넘겼다, 저 때문이 혼기를 놓친건 아닐까 생각을 많이한다"며 무거운 마음을 보였다.
그날 밤, 이주실은 장롱 깊은 곳에서 오래된 사진을 꺼냈다. 그리곤 종이가 누레진 일기장을 꺼냈다. 그 시절 고통이 고스란히 적혀있지만, 딸들과의 추억이 있어 버릴 수 없었다고 했다. 이주실은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못한, 죄스럽기까지 했던 엄마였다"면서 "병까지 드니 마음이 급해지더라, 내가 갈때 가더라도 아이들의 시간까지 나에게 허비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며 입을 열었다.
그때 일기엔"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라며 최선을 다해 좀 더 아이들을 곁에 남고 싶다는, 딸들을 향한 시한부 엄마의 고뇌가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일기와 함께 꺼내놓은 건 애써 감춰뒀던 엄마의 미안함과 죄책감이었다.이주실은 "그 시간을 어머니로서 어떻게 보상하겠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려본 적없다"면서 "그렇지만 죽을 때까지 이 마음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이주실은 "애쓰는 걸 보면, 부모가 뭔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딸은 "엄마가 걸어온 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면서 "그때 당시 이해를 잘 못해줘서 죄송할 뿐"이라고 했다. 이어 "요즘은 시간이 갈 수록 엄마 마음이 이해가 된다"고 울먹였고, 이어 두 사람은 손을 붙잡으며 미소로 마음을 나눴다. 살아서 만나자던 약속을 지켰던 두 모녀, 서로에게 친구이자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 osenstar@osen.co.kr
[사진] MBC 화면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