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V4 스토리]⑥ '위기의 그때' 박종훈-문승원은 그렇게 주역이 됐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8.12.01 13: 14

SK 와이번스가 2018 한국시리즈에서 업셋 우승을 했다. 2010년 이후 8년 만에 거둔 네 번째 우승이다. SK왕조의 역사가 희미해지는 순간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아직은 KBO리그 최강은 아니다. 이번 우승은 새로운 왕조를 향한 첫걸음이다. 몇 회에 걸쳐 V4의 장정을 짚어본다. 
트레이 힐만 감독과 염경엽 단장의 만남은 시작부터 큰 화제였다. 말 그대로 최고 경력을 가진 감독과, KBO 리그에서 성공적인 감독 생활을 한 단장의 만남이었다. 둘 사이의 원만하고, 때로는 치열했던 토론은 궁극적으로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어졌다.
트레이 힐만 감독은 “염경엽 단장은 KBO 리그에서 이미 성공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라면서 “그의 조언이 리그를 보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 트레이드로 좋은 전력을 만들어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한 일”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제는 힐만 감독의 후임이 된 염 감독 또한 “배울 것이 많았던 감독”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대다수의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 통일을 이루거나, 혹은 한 쪽이 양보를 했다. 두 지도자 모두 강속구와 빅볼이라는 선호 사항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비슷한 성향은 기본적인 의견 충돌의 범위를 최소화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항상 의견이 같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생각이 다른 경우는 몇 번이나 회의를 거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중반에 있었다.
당시 SK는 불펜에 있어 뚜렷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기존 선수들은 떠나거나 노쇠화되고 있었고, 새로운 피들은 1군을 돌파하지 못했다. 힐만 감독이 개막 마무리로 낙점했던 서진용이 끝내 보직을 내려놓자 구단의 기존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때 데이브 존 당시 투수코치가 하나의 아이디어를 내놨다.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 중이던 선수를 하나 빼서 불펜으로 돌리는 방안이었다. 그만큼 SK의 사정이 급했고, 마땅한 불펜 대안이 없었다.
박종훈(27)과 문승원(29)이 불펜 전환 후보자로 올랐다. 당시 상승세를 타고 있었던 박종훈은 포기하는 대가가 큰 만큼 확실한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문승원은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로 불펜에서 전천후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있었다. 힐만 감독은 당초 이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것을 꺼려했지만, 점차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뭔가의 변화가 필요했고 당시는 선발보다는 불펜이 더 급했다.
그때 염경엽 단장이 재고를 요청했다. 염 감독은 이제는 한참이나 지나간 당시 상황에 대해 “반대가 아니라 그냥 싹싹 빌었다”고 회상한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당시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염 감독은 “두 선수가 향후 SK 선발 로테이션을 이끌어갈 투수들이고, 선발로 키워야 한다. 그리고 마무리 경험이 없어 뒤로 간다고 해서 100%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치열한 토론 끝에 힐만 감독도 염 감독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사실 힐만 감독 또한 두 선수를 선발 로테이션의 축으로 보고 있었고, 뚜렷한 성장세에 흐뭇해하던 시점이었다. 실제 김광현보다 어린 선발투수 둘이 로테이션에서 활약하는 것 또한 SK에서는 의미가 있었던 일이었다. 결국 좀 더 멀리 보고 가기로 하면서 불펜에서는 다른 방안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박종훈과 문승원은 선발진에 남았다.
팀 사정상 어쩔 수 없는 논의이기는 했지만, 한 번 마음의 결정을 내린 힐만 감독의 뚝심도 염 감독 못지않았다. 박종훈과 문승원의 선발 위치는 더 굳건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두 선수에 대한 믿음을 거둬본 적이 없다. 힐만 감독은 두 선수의 성장세를 항상 즐거운 어투로 논하곤 했다. 감독과 선수로서가 아니라, 마치 제자의 성장을 뿌듯해하는 스승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2018년 두 선수의 활약은 SK의 막강 로테이션 구축의 마침표가 됐다.
2017년 12승을 거뒀던 박종훈은 올해 30경기에서 개인 최다인 159⅓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4.18을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더 많은 14승을 기록했다. 이제는 리그 정상급 선발투수라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해 금메달을 걸었다.
지난해 155⅓이닝을 던지며 개인 첫 규정이닝에 진입한 문승원은 “모든 면에서 조금씩 더 성장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올해 31경기에서 8승9패를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을 5.33에서 4.60으로 낮췄고, 첫 세 자릿수 탈삼진(122개)를 기록하며 역시 정상급 선발로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토종 선발투수 중 문승원보다 더 좋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선수는 손에 꼽을 만했다. 한 시즌을 꾸준하게 활약했다는 점 또한 괄목할 만했다.
힐만 감독의 신임을 얻고 거침없이 경험치를 쌓은 두 선수는 포스트시즌에서도 팀 우승에 일조했다. 박종훈은 한국시리즈에서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으나 1차전에서 조쉬 린드블럼, 5차전에서 세스 후랭코프라는 외국인 투수를 만나 팀 승리에 일조하며 두산의 필승 계산을 깨뜨렸다. 문승원은 6차전 연장 접전에서 1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승리를 챙겼다. 강속구로 무장하며 두산 타선을 막아낸 문승원의 모습은 또 하나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다.
당시 불펜 전환에 반대했던 염 감독은 공교롭게도 힐만 감독의 후임이 됐다. 당연히 박종훈과 문승원은 내년에도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으로 시즌을 시작할 전망이다. 구단의 계획과 힐만 감독의 뚝심으로 더 강해진 두 선수는 이제 SK의 우승 주역이자 로테이션의 상수로 거듭났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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