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민정의 변신이 시청자들에게 통했다.
지난 1일 첫방송을 시작한 SBS 드라마 '운명과 분노'(극본 강철웅, 연출 정동윤) 속 이민정의 모습이 화제다.
이민정은 이날 방송에서 부산에서 짝퉁 구두장으로 일하다 모자를 눌러 쓰고 단속을 피해 달아다는 인물 구해라의 모습으로 강렬하게 첫 등장했다.

거래차 동행한 술자리에서 사장에게 술을 맞은 구해라. 그는 "다 젖었는데 꿉꿉하지? 네가 흥 깼으니까 그거 벗고 분위기 바꿔놔"라며 사장의 막말을 듣고 독기 어린 눈빛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얼음을 자신의 머리에 붓고는 "다 젖으면 안 꿉꿉해. 이제 안 벗어도 되지?"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런 악바리 같은 구해라의 도움으로 무사히 계약을 하게 된 재벌 아들 태인준(주상욱 분). 그가 구해라에게 감사의 사례와 명함을 건네자 뒤이어 약혼자인 악녀 차수현(소이현 분)은 구해라에게 "주상욱 근처에 얼씬하지 말라"며 협박을 했다.
하지만 당당한 구해라는 "넘기자면 넘어 오겠던데. 명함 그거 감춘다고 작정한 도둑년한테 방해가 될까? 남의 남자 관심없는데 장물은 좀 관심 있지"라는 말로 지지 않고 되받아 쳤다. 그리고는 마음 없던 파티에 참석하는 것으로 바로 행동에 옮겼다.
그 곳에서 태인준을 만나 그의 손을 잡고 파티장에 들어가게 된 구해라는 초대 가수가 행사장에 도착하지 않고, 조명까지 고장 난 상황에서 무대로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이는 태인준 뿐 아니라 그를 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때 나타난 차수현. 그는 구해라를 향해 자신의 허락없이 드레스를 훔쳐 입은 도둑이라며 여러 사람들이 보는앞에서 그의 뺨을 때린 후 드레스를 찢어 버렸다. 비참한 구해라 앞에 며칠 후 차수현에 대한 복수심에 불 타 있는 진태오(이기우 분)가 찾아와 태인준의 마음을 훔치자는 제안을 했다. 언니의 수술비로 벼랑 끝에 서게 된 구해라는 결국 진태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격정 멜로'란 장르와 '운명과 분노'라는 타이틀처럼, 드라마는 묵직하고 어두운 어른의 멜로다. 막장 재벌 집안과 이와 반대되는 밑바닥 현실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복수, 사랑, 애증, 분노, 야망 등 에너지 넘치는 여러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시청자들을 옴싹달싹하지 못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이민정이 있다. 정통 미인형이라 부를 수 있는 이민정이 시청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뛰어난 비주얼 뿐 아니라 한층 깊어진 연기력이었다. 고급스런 분위기가 돋보이는 그이지만 빚에 허덕이며 거친 인생을 살고 있는 구해라 캐릭터가 찰떡처럼 달라붙었다. 여기에 누구에도 기죽지 않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 세찬 모습, 그러면서도 아버지와의 추억을 그리워 하며 눈물 짓는 외롭고 여린 모습 등 다양한 면모가 섬세한 감정선으로 전달됐다.
결혼하고 엄마 이민정으로 연기자로서 새로운 장을 열어제친, 오랜만에 안방 복귀한 이민정의 세련되고 현명한 선택이다. 실제로 '이민정이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란 반응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연기자' 이민정을 다시금 각인시킬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운명과 분노'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와 운명인 줄 알고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목적을 위해 남자를 차지하려는 여자와 복수심에 차 그 여자를 되찾으려는 남자 등 네 남녀의 엇갈리는 사랑과 분노를 담은 드라마다. /nyc@osen.co.kr
[사진] SBS 방송캡처,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