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은 부질없는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궁금하다. 만약 양의지(31・NC)가 8년 전 KIA로 트레이드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난주 야구계 최고의 화제는 양의지였다. FA 최대어로 주목받은 양의지는 지난 10일 최다득표로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뒤 두산에서 7년을 함께한 더스틴 니퍼트를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튿날은 NC와 4년 총액 125억원, 순수 국내파 FA 선수로는 역대 최고액 대박을 터뜨렸다. 당대 최고 포수로 최고 대우를 받았다.
광주 진흥고 출신 양의지는 지난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8라운드 전체 59순위로 두산에 지명됐다. 당시 그보다 먼저 뽑힌 포수가 무려 8명이나 있었다. 입단 첫 해 2군에서 보낸 뒤 2007년 1군 3경기 1타석만 뛰고 경찰 야구단에 입대했다. 일찌감치 군복무를 마친 뒤 2010시즌을 앞두고 두산에 복귀했다.

경찰 야구단에서 타격이 일취월장한 양의지는 2010년 두산의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됐다. 당시 김경문 두산 감독은 최승환, 용덕한, 이성열에 양의지를 포수 경쟁 후보군에 넣었다. 그쯤 김경문 감독이 양의지를 다시 한 번 보게 된 계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KIA의 트레이드 제안이었다.
당시 KIA는 주축 타자 장성호가 공개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두산도 장성호에게 관심이 있는 팀들 중 하나로 KIA와 트레이드 카드를 맞추는 과정에서 양의지의 이름이 나왔다. 연고지역 출신인 양의지를 눈여겨본 KIA 관계자가 장성호의 반대급부 중 하나로 지목한 것이다.

2010년 KIA에는 포수 김상훈과 차일목이 있었지만 미래 전력 강화 차원에서 양의지를 주목했다. 2006년 드래프트 당시 양의지가 두산 지명을 받았을 때도 KIA는 대학 진학을 권유했다. 대학 진학 후 추후 지명을 바랄 만큼 양의지의 가능성을 꽤 높게 봤다.
트레이드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김경문 감독은 KIA에서 콕 집은 양의지를 더욱 주의 깊게 지켜봤다. 2010년 시범경기에서 11타수 4안타 타율 3할6푼5리 1홈런으로 방망이 솜씨를 뽐내자 개막 엔트리에도 넣었다. 개막 두 번째 경기부터 2회 교체로 나와 데뷔 첫 안타를 터뜨리며 팀 승리를 이끈 양의지는 3월30일 목동 넥센전에서 첫 선발 마스크를 썼다.
이날 양의지는 홈런 2개를 폭발하며 주전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해 홈런 20개를 쏘아 올리며 신인왕까지 올랐다. 그 이후 리그를 대표하는 포수로 성장하며 골든글러브를 4차례나 수상했다.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 2회를 이끌며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 포수로 자리 잡으며 FA 대박을 쳤다.
부질 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8년 전 양의지가 KIA로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니면 KIA의 트레이드 제안이 없었어도 양의지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당시 사정을 아는 관계자는 “양의지는 부모님이 자신을 얼마나 끔찍이 뒷바라지하는지 아는 선수였다. 야구를 절실하게 했기 때문에 김경문 감독도 기회를 많이 주고 싶어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두산이 KIA의 트레이드를 제안을 거부한 건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양의지의 잠재력과 절박함을 외면하지 않았다. 기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준비된 선수’ 양의지는 이를 놓치지 않았고, 125억원 FA 대박을 치며 인생 역전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