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가 돋보이기 보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잘 보이길 바라요. 배우로서 어떤 역할을 어떻게 소화 하자는 계획보다도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를 상상하는 편이죠.“
윤계상(41)은 장난기 많고 밝은 사람이지만, (물론 절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만 그의 개그본능이 발휘된다.)일을 대할 때 만큼은 ‘세상 진지’한 인물이다. 이제는 배우로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음에도 자신을 한 없이 낮추며 작품 전체에 녹아 들어 가길 바란다. 거만해지지 않는 모습이 그의 최대 장점. 그의 겸손함과 예의 바른 자세가 ‘믿고 보는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게 해준 게 아닐까. 물론 그가 연기력을 갖추고 있음은 당연한 사실.
윤계상이 범죄 액션 영화 ‘범죄도시’(감독 강윤성, 2017)로 흥행에 성공한 이후 새 작품 ‘말모이’(감독 엄유나,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더 램프(주))를 통해 스크린에 컴백했다. 내년 1월 9일 개봉하는 점을 감안하면 1년 3개월 만의 차기작 행보이다.

‘말모이’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판수(유해진 분)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 분)이 만나 한국어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마음을 모으는 이야기를 그린다. 윤계상은 정환 역을 맡아 대나무처럼 올 곧지만 정 많은 인물을 표현했다. 조선어학회 류정환 대표를 연기한 윤계상은 전작 ‘범죄도시’에서의 극악무도함을 말끔하게 지우고 이성적이지만 인간적인 내면을 가진 유학파 출신 엘리트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윤계상은 1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말모이’는 진짜 뿌듯한 영화다. 제가 주시경 선생님이나 조선어학회에 대해 그동안 잘 몰랐었기 때문에 부끄러웠는데 배우로서 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다. 너무 좋았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이어 그는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돋보이는 캐릭터가 아닌, 영화 전체다. 배우로서 ‘어떤 역할을 어떻게 소화하지?’라는 생각보다 이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를 상상한다”며 “평소에도 제가 뭔가를 엄청나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데 (이 영화가 생각한 대로 잘 나와서)좋았다. 무엇보다 유해진 선배가 한다는 것에 메리트가 있었다. 또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출연을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말모이’는 올 4월 1일 크랭크인 해 7월 15일 촬영을 마쳤다.
정환은 친일파 아버지 류완택(송영창 분)을 부끄러워하며 독립의 길을 걷는 인물이다. 민족의 정신인 말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 믿기에, 일제에 맞서 주시경 선생이 남긴 원고를 기초로, 목숨을 걸고 사전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한글책을 파는 책방을 운영하며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는 ‘말모이’를 꾸려나간다.

정환은 전과자인 데다 까막눈인 판수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진심을 다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노력하자 비로소 판수를 받아들이고, ‘말모이’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영화는 시대가 드리운 비극에 굴하지 않고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뜻을 모은 사람들의 관계를 감동적으로 담았다.
윤계상은 촬영 기간인 약 4개월 가량을 정환으로 살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했다. “촬영 중반까지 너무 힘들어서 내가 못 모르고 달려 들었나 싶었다. 류정환이라는 역할은 매력적이기 보다 진정성 있게 관객들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제가 가진 진정성으로는 안 되더라. (장애와 어려운 일들이 가득한 상황에서)이쯤 되면 정환이 포기할 만한데 어떤 힘으로 버티는 지 궁금했다. 이 정도로 힘들면 어느 정도 타협을 하지 않았겠나 싶었는데 그런 게 없는 사람이라 그 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했다. 윤계상이 진정성을 갖고 노력했기에 완성된 영화에는 그가 고심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영화의 말미에는 폭주하는 정환의 감정을 맛볼 수 있다.
윤계상은 “결국 저도 (류정환처럼)애국심으로 버틴 거 같다. 저를 빗대어 생각하면 안 될 거 같지만 그 시대 선생님들은 그런 마음을 갖고 살아가지 않았나. 그 때는 누군가 그 일(우리말 지키기)을 해야 했다. 제가 류정환으로서 생각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갈등이 커지지만 (처음에 세운 목표를)놓아 버리면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그게 없었으면 결국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어려움을 이겨낸 과정을 전했다.

그러면서 “(류정환의 사전작업은)제가 연기를 잡고 있는 끈과 비슷하다. 너무 잘하고 싶은데 어렵고 계속하는데 남들의 평가에 의해 포기하고 싶진 않은 마음이다"라며 “어떻게 되든 끝까지 가보는 거 같다. (언젠가는)이루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쉽진 않겠지만(웃음)”이라고 덧붙였다.
윤계상은 지난해 ‘범죄도시’가 688만 546명(영진위 제공)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에 대해 “‘범죄도시’는 선물이었다. 제게 단비 같은 영화다”라면서도 “지금은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인생(에서 하나의 성공을) 스치듯 여겨야 할 거 같다. (거기에 취해)머물러 있으면 안 될 거 같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기 보다 잊고 빨리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좋은 거 같다. 변한 건 없이 똑같다. 저는 지금도 연기를 하면서 ‘내가 왜 이거 밖에 안 되나?’ 좌절한다. (그래도 예전보다)조금씩 알아간다는 점에 있어서 여유가 생긴 거 같다. 이젠 ‘이렇게도 해볼 수 있구나’ ‘이렇게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 말이다”라고 털어놨다.

1999년 그룹 god로 데뷔한 윤계상은 드라마 ‘형수님은 열아홉’을 통해 2004년 본격적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사랑에 미치다’(2007) ‘트리플’(2009) ‘로드 넘버원’(2010) ‘최고의 사랑’(2011)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 ‘라스트’(2015) ‘굿와이프’(206) 등의 드라마, ‘발레 교습소’(2004) ‘6년째 연애중’(2008) ‘비스티 보이즈’(2008) ‘풍산개’(2011) ‘레드카펫’(2014) ‘소수의견’(2015) ‘극적인 하룻밤’(2015) ’죽여주는 여자’(2016) ‘범죄도시’(2017)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윤계상은 “저는 (최고로 인정 받는)롤을 가진 배우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남들이 제게 '너는 뭘했을 때 제일 좋으냐?’고 물어 본다면 ‘진정성 있는 역할’이라고 답할 거 같다. 배우로서 그건 포기 못하겠다. (감독님이나 제작사들은)상업적인 부분을 원하기도 하지만 진정성은 포기 못한다. 그게 연기를 하는 저의 행복이다. 전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기 보다 진정성 있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라고 진심을 밝혔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욕심을 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저보다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 작품이 잘 나오는 게 중요하지 제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언제나 돋보이는 역할만 찾아야 한다는 게 힘들 거 같다.” /purplis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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