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가 폭력에 멍들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넥센 외야수 이택근(37)은 지난 19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취재진 앞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지난 2015년 5월 팀 후배 문우람을 야구 배트로 폭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KBO도 이날 상벌위원회를 통해 36경기 출장정지 징계 처분을 내렸다. 넥센의 영원한 캡틴, 정신적 지주로 불렸던 이택근이 한순간 폭력배로 낙인 찍혔다.
사실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폭력은 오래된 관행처럼 여겨졌다. 군대식 군기를 잡는 문화가 운동부에 팽배했다. 야구계도 다를 것 없었다. 이택근에 앞서 많은 선배 야구인들이 폭력의 가해자, 피해자로 나눠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례가 수두룩하다.

한국야구 레전드들부터 폭력의 씨앗이 됐다. ‘불세출의 투수’ 姑 최동원은 지난 1979년 연세대 3학년 재학 시절 경기를 패한 뒤 단체 기합과 체벌에 참지 못해 팀을 이탈한 뒤 잠적했다. 허리를 다쳐 병원 신세까지 졌다. 당시 선배들 대표로 후배들을 체벌한 사람이 또 다른 레전드 투수 ‘불사조’ 박철순이었다.
박철순은 반대로 1994년 9월 OB 소속 당시 체벌에 반발하며 선수단 항명을 주도했다. 쌍방울과 전주 경기에서 패한 뒤 윤동균 감독이 선수단을 체벌하려 하자 박철순 포함 17명의 선수들이 대거 팀을 이탈한 것이다. 윤동균 감독 사퇴, 주요 선수 징계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야구계에 씁쓸한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선수 폭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2002년 9월 KIA 포수 김지영이 김성한 당시 감독에게 3차례 배트로 머리를 맞은 사실을 폭로했다. 김성한 감독은 ‘사랑의 매’라고 해명했지만 김지영은 과다 출혈로 병원 입원 치료를 받았다. 당시 KBO는 김 감독과 구단에 엄중 경고 조치로 끝났다.
2009년 8월에는 LG 투수 서승화가 2군 훈련 중 후배 외야수 이병규(현 롯데)를 배트로 가격했다. 선배를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이마를 맞은 이병규는 피를 흘리며 상처를 입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 KBO는 별도의 징계 없이 넘어갔고, LG도 근신 조치를 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마다 KBO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거나 아예 징계조차 하지 않았다. 군대식 고압적 문화와 폭력에 길들여진 사회 분위기상 어물쩍 넘어갔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올해 넥센에 입단한 신인 안우진도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고교 시절 후배 폭행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택근의 3년 전 폭행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팬들은 또 한 번 분노하고 있다. 그라운드 밖 폭력 행위에 대해 최초로 징계를 내린 KBO였지만 36경기 출장정지도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용납되지 않는다. 폭력이 사랑의 매로 둔갑하는 시대는 지났다. /waw@osen.co.kr

[사진] 이택근(위). /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 이택근-문우람(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