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의 결과가 원했던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알맹이를 없애고 부차적이었던 문제에 눈길이 쏠리게끔 만들었다.
지난 10일, 승부조작에 연루됐던 이태양과 문우람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골자는 이태양과 함께 승부조작 공모 혐의를 받았던 문우람의 억울함을 풀기 위함이었다. 이미 재판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을 받은 이태양은 브로커 혐의를 받은 문우람에게는 죄가 없고, 검사에게 속아 누명을 썼다는 것이 기자회견 주장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담담하게 진행되던 양심선언은 갑작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문우람이 브로커 조 모씨와 친하게 지내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선배에게 야구 배트로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태양은 브로커와의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브로커가 설명한 승부조작 연루 선수들의 실명을 기자회견 장에서 폭로했다.

이태양의 양심선언, 문우람의 결백을 주장하고 밝히는 자리가 순식간에 문우람에 폭행을 가한 선배, 그리고 다른 선수들의 승부조작 연루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
승부조작이 여전히 만연해 있다는 폭로는 건강한 리그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에 기반을 두고 정확한 증거를 갖고 주장을 펼쳐야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브로커의 증언과 대화록만 갖고 의혹만 있던 선수들의 실명을 언급했다. 결국 실명이 알려진 선수들은 즉각 반발했고, 관련이 없다고 대응했다. 그동안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고, 혐의가 없다고 결론이 난 부분들에 의문을 가졌지만, 현 시점에서 의문은 자충수가 됐다. 만약 이들이 추가 증거를 갖고 나온다면 상황은 다시 달라지겠지만 현재까지 추가 증거가 나올 낌새는 없어 보인다.
이들의 폭로는 실명이 거론된 선수들의 명예훼손 문제로 이어지며 역풍을 맞았다. 거론된 선수들 가운데 최고 거물인 정우람은 “자신의 이름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며 이태양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언급된 김택형 역시 SK 구단을 통해 “이태양과 문우람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을 경우 법적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그리고 문우람에게 폭행을 가한 팀 선배는 결국 이택근으로 밝혀졌고, 이택근은 지난 19일 KBO 상벌위원회를 통해서 36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문우람은 폭행 사실이 공개된 직후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꺼려했지만, 프로무대에서 아직도 폭행이 만연해 있다는 폭로는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문우람이 폭행 사실과 함께 당시 심각했던 상황의 진단서까지 꺼내자 폭행은 더 이상 가볍게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넥센 구단과 이택근의 소명과 기자회견은 문우람의 결백 호소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결국 현재 이태양과 문우람이 만든 폭로의 자리에서 알맹이를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들의 폭로에 귀를 기울여야 했지만, 그들 스스로 핵심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결국 이태양과 문우람의 폭로는 승부조작 연루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핵심이 사라지고, 명예훼손, 그리고 폭행만이 남게 됐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