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병옥이 평생의 은인을 만나 눈물을 흘렸다.
김병옥은 21일 오후 방송된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주신 제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된 정말 고마운 은인 연극연출가 기국서 형님을 꼭 만나뵙고 싶다”고 밝혔다.
김병옥은 “23세부터 연극을 하기 시작했는데 40세 될 때까지 제대로 된 배역을 맡아보지 못했다”며 “23살 때부터 41살까지 18년 무명 생활을 했다. 다른 일을 해볼까 생각했다. 예전에는 삐삐를 가지고 다녔다. 낚시를 하는데 삐삐가 울리는 거다. ‘맥베스’라는 공연을 하는데 대본리딩에 왜 안 왔냐는 거다. 내일은 꼭 오라고 했고, 가겠다고 했다. 연습장에 갔는데 주인공 맥베스는 김병옥이가 해, 라고 된 거다”고 말했다.

그는 “35살에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다음에 느꼈다. 그때 내가 어떻게 살아왔나 싶다. 어떻게 견디고”라며 “어떤 식의 보답을 다해야 되는데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연습해서 다행히 크게 문제 없이 끌고 나갔다. 아마 그 공연을 보고 ‘올드보이’를 소개한 거다”고 전했다.
김병옥은 유명한 연출가임에도 그동안 찾지 못한 이유에 대해 “돈을 많이 빌려줬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 거다. 내가 살기 바쁘니까 찾을 수가 없었다.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근래 생각이 나더라. 컴컴한 어둠 속에서 그 형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더라면 낚시하다가 퐁당 할 수도 있고. 그때도 생각은 많이 했다. 지금이 되어서야 돌아보게 된 거다”고 털어놨다. ’맥베스’를 한 후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보증을 서주다가 고향 집까지 날리게 됐다고. 생활고 때문에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김병옥은 예전에 살던 집터를 찾았다. 빚 보증 때문에 날린 고향집터를 보며 무명 시절 자신을 사랑으로 챙겨주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맥베스’ 출연 당시에 여기서 살고 있었다며 당시 자신을 무료로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준 선배도 찾았다. 목욕탕 지인들은 “목욕탕 생길 때 아버지를 데리고 왔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버지가 치매가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쯤 꼭 모시고 왔다. 동네에서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유명했다”며 그의 성품을 전했다.
대학로 옆동네인 서울 동소문동으로 이동했다. 기국서 연출가와 술자리 추억이 있었던 곳. 이곳에서 재회한 극단 후배 김미준 씨는 “술자리에서 그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너 나랑 같이 작품하자’고 이야기하시곤 한다. 선생님이 나이가 있으시다 보니 극단 대표직은 후배한테 주셨다. 몸이 약간 안 좋으시다”고 말했다.
김병옥은 자신을 캐스팅한 후 기국서 연출가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힘드셨을 거다. (배우들이) 끝날 때까지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다. 뒤풀이 할 때까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만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에 대해 “죄송하다고, 고마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북한산국립공원으로 향했다. 4·19탑 근처가 바로 기국서 연출가의 집 근처였다고. 옛집을 찾아왔으나 아무도 없어 그의 집인지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기국서가 김병옥의 이름을 부르며 등장했고, 김병옥은 “편찮으시다는 말을 들었는데”라며 정정한 모습에 안도한듯 눈물을 흘렸다. 기국서 연출가는 “(힘든) 뒷 사연이 있는 줄 나는 몰랐다. 그런 느낌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높은 환경에서 아무 걱정 없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서 일단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하자”며 집으로 초대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추억을 회상했다. 기국서 연출가는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백마강 달밤에’를 봤다. 당당함이 있다. 어색하거나 낯선 게 아니라 그 자체가 그냥 눈이 딱 갔다”고 주연으로 캐스팅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김병옥이 수많은 작품에서 캐스팅되는 것을 본 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병옥은 집에서 써온 편지로 마음을 전했다. / besodam@osen.co.kr
[사진] ‘TV는 사랑을 싣고’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