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부터 8월까지 베를린, 홍콩, 런던, 밀라노, 파리, 서울, 멕시코시티, 상하이, 도쿄 등 전세계 9개 도시의 아디다스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일제히 낮선 음악이 흘러나왔다. ‘Lake’와 ‘19+91’ 등 인디록, R&B, 재즈, 덥사운드, 트립합, 슈게이징에 걸친 4곡이었다. 누구지? 인디음악 좀 들었다는 국내 팬들도 갈피를 좀체 못잡았다. 바로 홍크(Honk. 본명 안상영)라는, 올해 28살의 젊은 뮤지션이 그 주인공이었다.
홍크를 [3시의 인디살롱]에서 만났다. 마침 지난 11월15일 정규 1집 ‘Monosandalos’가 나왔고, 오는 28일에는 서울 을지로의 호텔수선화에서 단독공연을 갖는 그다. 총 11곡이 수록된 1집은 선명한 노래나 멜로디보다는 거친 노이즈와 폭신폭신한 감성, 기존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결로 인디신에 새로운 뮤지션이 탄생했음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다.
= 반갑다. 음악만 들었을 때는 거친 풍파를 헤집고 나온 40대 남자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훤칠한 미청년일 줄은 몰랐다. 본인 소개부터 부탁드린다.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만드는 홍크다. 1991년생으로, 어떤 그림, 어떤 음악을 할지는 아직 안 정했다. 마음 가는 대로 할 것이다. 악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아니고 트랙을 만들어야 해서 기타와 베이스 위주로 독학으로 배웠다. 피아노는 잘 못쳐서 녹음할 때 나눠서 하는 편이다. 미디도 많이 쓴다.”

= 기타는 어떤 것을 쓰나.
“멕시코산 펜더 재규어를 쓴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예쁜데다 조절하는 게 많이 달려서 쓴다.”
= 홍크씨가 그린 일러스트를 여럿 봤다. 납작한 직사각형의 다리 등 특징이 있더라.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나.
“중학교 들어가면서 그림과 음악을 같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진로를 미술로 정하고 고등학교도 그쪽(서울미술고)으로 갔다. 대학도 2010년 상명대 미대를 갔으나 2012년에 자퇴했다. 지금도 외주가 들어오면 일러스트 작업을 한다.”
= 장범준 1집과 버스커버스커의 버스킹에 참여했다.
“장범준은 학교 선배였고 김형태는 룸메이트였다. 그래서 2013년 버스커버스커의 천안 버스킹 때 같이 공연했다.”
= ‘홍크’라는 예명은 언제, 어떻게 짓게 됐나.
“대학 들어가면서 작가명을 만들고 싶었다. ‘홍크’는 자동차 클락션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인데 어감이 좋았다.”

= 곡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었나.
“대학 다닐 때부터 다른 뮤지션의 앨범 프로듀싱을 했다. 사운드 클라우드에도 올렸고. 그러다 2016년에 처음으로 EP를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의 말대로 2016년 2월18일 홍크의 첫 EP ‘You Drink I Honk’가 나왔고, 이어 4월6일 EP ‘JA-zone’, 2017년 3월28일 EP ‘demo’가 나왔다. 이 ‘demo’에는 아디다스가 채택한 곡 ‘Lake’와 ‘19+91’이 수록됐다. 2017년 9월14일 4번째 EP ‘gaerong’, 2018년 11월15일 정규1집 ‘Monosandalos’가 나왔다.
= 아디다스는 어떻게 알고 홍크씨 음악을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아디다스가 기획한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음악을 찾아주는 회사가 스페인에 있었다. 그런데 그 회사의 한 분이 제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Lake’와 ‘19+91’, 그리고 ‘FFF’, ‘H-IDME.57’을 발견해 제안을 해왔다. 따로 보수는 없었고 대신 저작권만 갖기로 했다. 현재 음저협에 등록된 ‘Lake’와 ‘19+91’만 저작권이 적용된다.”
= ‘FFF’와 ‘H-IDME.57’은 무슨 뜻인가.
“음…’FFF’는 ‘Fuckyou Flaming Fuckyou’, ‘H-IDME.57’은 ‘Honk Inteligent Dance Music Experimental 57번’이라는 뜻이다.”

= 1집이 올해 소속사(오름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고 나서 나왔다.
“거의 다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소속사 들어오고 날짜를 조율하다 지난달에 나왔다. (EP 유통사였던) 미러볼뮤직이 올해의 추천 앨범에 제 EP를 추천했고, 이를 오름 대표님이 서칭하다가 보셔서 인연을 맺게 됐다.”
= 1집 제목 ‘모노산달로스’가 ‘한쪽 신만 신은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들었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이아손(Iason)이 노파로 변신한 헤라를 업고 강을 건너다 신고 있던 신발 한 쪽을 잃어버린 일화에서 따왔다. 한 쪽 신발의 부재에 따른 그 불안정한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흔들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상황과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저 역시 그랬고.”
= 신발이 한 쪽만 남아서 불안정한 것인가, 한 쪽이 없어져서 불안정한 것인가.
“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 본격적으로 앨범 얘기를 해보고, 몇 곡을 직접 같이 들어보자. 녹음은 어디서 했나.
“음악의 질감이 로우파이여서 집에서 했다. 집에서 할 때가 더 나은 경우가 있다.”
#1. Monodandalos = 앨범을 소개해주는 연주곡이다. 중간에 헤드셋으로 들어보면 한 쪽에서만 기타가 나온다. 이아손이 절뚝거리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1집에는 신곡 8곡과 리마스터링 3곡(남과남은, 어쩌면, 젖은 머리를 기대는 당신은) 등 11곡이 실렸다)
#2. IASON = 이 곡 ‘이아손’은 재즈 코드를 많이 썼다. 코러스 부분은 리버스 기타를 썼는데, 기타를 거꾸로 돌린 것이다. 리버스 기타를 꼭 저만의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다.
= 이 곡은 삶에 지친 40대 남자가 터벅터벅 걷는 느낌이다.
“맞다. 터벅터벅.”
= 지금 들리는 살랑살랑 거리는 사운드는 어떤 악기인가.
“드럼 하이햇이다. 하이햇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썼다.”
#3. 양배추와 왕 = 루이스 캐롤의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바다표범과 목수’라는 단편이 있다. 목수가 바다로 들어가서 굴 가족 애기들을 꼬셔서 나오는데 바다표범이 다 먹어버린다는 얘기다. 그런데 저는 새끼굴들이 바다 위로 나오는 모습이 슬픈 감정들이 술을 먹거나 음악을 들을 때 수면 밖으로 나오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 곡에서는 바다표범이 양배추, 왕이 목수가 된다. 이 곡 처음은 오래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서곡 느낌을 주고 싶었다. 중간에는 옛날 재즈 느낌을 주고 싶어서 브라스와 스트링도 들어갔다.
#4. 눈 =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잡으려면 녹는다. 고양이도 눈을 마주쳐 만지려면 도망간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모두 잡으려면 도망간다.
#5. 강변살자 = 김소월의 시에서 따왔다. ‘강변 살자’는 말이 왠지 좋았다. 잘 살자는 느낌, 우리 기운을 내자는 느낌이 좋았다.
#6. Vowel = 아프면 ‘아아아’ 신음을 낸다. 신음에는 자음이 없다. 사운드적으로도 그런 자음이 없는 소리를 내고 싶었다. 메인 보컬도 소스를 뭉쳐서 잘 안들리게 했다.
#7. 안자려고 안잔게 아니고 = 기타 톤을 로우(raw)하게 잡았지만, 기본적으로 왈츠 느낌을 주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사가 마음에 드는 곡이다. 중간에 ‘찌르르’ 거리는 소리는 케이블을 훼손시킨 베이스 기타 소리다. 집중하지 않아도 들리는 음악이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런 앰비언트 소리를 음악에 많이 넣는 편이다. 뒷부분에 나오는 사운드는 건반만 빼놓고 모두 생활소음이다.
#8. 개롱 = 개롱은 오금역 옆의 실제 역이름이다. 그 동네에서 어렸을 때 살았는데 컨트리 곡 분위기에 어울릴 것 같아서 개롱이라고 지었다. 옛날 포크 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 홍크씨 음악에서 보컬은 스포트라이트가 실리는 보컬이 아니라 그냥 화면에 투사되는 보컬처럼 들린다.
“제 노래가 그렇다.”

= 설명 잘 들었다. 앞으로 어떤 뮤지션이 될 것인가. 그리고 뮤지션이라는 표현보다는 ‘작가’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 같다.
“28일에도 공연이 있지만 앞으로도 공연을 하면서 EP를 많이 내고 싶다. 이미 써놓은 것도 있고, 앞으로 만들 것도 많다. 내년 1월 말에는 일러스트 전시회도 열 생각이다. 어쨌든 똑같은 것을 계속 하는 작가가 안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색은 유지하지만 다양하게 팽창되는 느낌의 작가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림이든 음악이든, 뭔가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작가라는 단어를 쓴다.“
= 수고하셨다. 한동안 모노산달로스, 이 말이 입과 귀에 붙어있을 것 같다.
“수고하셨다. 공연 때 꼭 오시라.”
/ kimkwmy@naver.com
사진제공=오름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