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강한나에 박찬호 독립원정대 5인, 독립자금 벌기 위해 상하이 고군분투 [종합]
OSEN 박판석 기자
발행 2019.01.08 00: 16

 임시정부의 흔적을 찾아 나선 독립원정대는 숙소와 식사 그리고 일까지 하면서 임시정부요원들의 삶을 체험했다. 세탁소부터 장사까지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힘겹게 돈을 벌었다. 
7일 오후 처음으로 방송된 MBC 스페셜 ‘독립원정대의 하루, 살이’(이하 하루살이)에서는 강한나, 김수로, 김동완, 공찬, 박찬호가 상하이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생활을 체험했다. 
박찬호와 강한나와 김수로와 공찬과 박찬호는 공항에서 처음 만났다. 다섯명의 멤버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맞이해서 독립원정대가 되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러 떠나야했다. 

다섯명의 멤버들의 첫 번째 목적지는 상하이였다. 상하이 신천지에 당시 임시정부가 위치한 곳이었다. 신천지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가 남아있었다. 무려 94년전 지어진 곳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는 역사를 안내하기 위해서 양지선 단국대 사학과 연구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임시정부의 가장 큰 역사적인 의미는 대한민국 역사 최초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였다는 것이다. 
임시정부 청사에 자리 잡기까지 7년이 걸렸다. 이봉창 의사는 31살의 나이에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고 10달.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봉창 의사는 김구 선생님의 지시로 의거를 결심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임시정부는 가난했다. 어렵고 힘겨운 상황에서도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한 것이었다. 
독립원정대는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이 살던 곳에 숙소를 정했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살던 곳에서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이 먹었던 음식을 먹었다. 쫑즈와 두부국과 짠지와 냉채와 중국 국수 찌꺼기를 먹었다. 당시 임시정부요인들은 국수찌꺼끼를 사먹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김구 선생님의 아내 최준례의 소원은 고기를 먹는 것일 정도로 힘겹게 살았다. 강한나는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누가 배고픔을 견디겠냐. 배고픔을 참으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처참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독립원정대의 첫 번째 미션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 이들이 번돈은 모두 독립운동가 후손을 지원하는데 쓰였다. 김동완은 엑스트라로 일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벌어야 했다. 강한나와 김수로는 장사를 하러 칠보고진 시장을 방문했다. 김수로는 100년전 한류상품을 팔아야했고 강한나는 요즘 한류상품을 팔았다. 임시정부 살림의 대부분은 백산상회를 비롯해 상회를 통해서 나왔다. 김수로와 강한나의 장사는 쉽지 않았다. 김수로와 강한나는 열심히 호객행위를 했지만 20분째 물건을 팔지 못했다.
강한나는 출중한 중국어 실력으로 개시하는데 성공했다. 연이어 중국의 신화팬이 찾아오면서 시디까지도 팔렸다. 김수로는 수화로 농산물을 팔았다. 김수로는 엄청나게 싼 가격에 농산물을 팔았다. 김수로는 “언어소통이 완벽하게 될 일이 없었을 텐데 진짜 좋은 물건만 팔았을 것 같다”며 “이상한 물건을 팔지 않으셨을 것 같아서 힘든길을 가셨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박찬호는 세탁소를 방문했다. 박찬호는 세탁소 기계 조작법을 먼저 배워야했다. 하지만 세탁기가 고장나면서 박찬호는 직접 손세탁을 했다. 박찬호의 빨래는 끝이 없었다. 박찬호는 계속해서 이불빨래를 하면서 투덜거렸다. 박찬호는 “독립투사들은 돈 되는 일이라면 무조건 하면서 독립자금을 마련했다”며 “돈 버는 일을 찾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했다. 윤봉길은 상하이로 건너오는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청도 세탁소에서 일을 했다. 박찬호는 계속해서 빨래를 하면서 금새 지쳤다. 
김동완이 도착한 곳은 1930년대 옜 상하이를 재연한 영화 촬영장이었다. 김동완은 단역이 아닌 주연인 레이먼드 킹 역할을 맡았다. 레이먼드 킹은 1930년대 영화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던 김염이었다. 김동완은 엑스트라가 아닌 주연을 맡게되서 당황했다. 하지만 배우 였던 김동완은 순조롭게 촬영을 진행했다. 김동완은 레이먼드킹 서거 35주년에 상영 될 추모영상의 주인공을 맡은 것. 
김동완이 연기한 김염은 당시 청춘 영화에 출연하는 인기 스타였다. 김염은 ‘대로’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항일 영화에 매진했다. 레이먼드 킹은 사실은 한국인이었다. 그의 한국 이름은 김덕린 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김필순이었다. 김필순은 삼일운동의 배후로 지목되서 일본 밀정에게 독살을 당했다고 전해졌다. 김동완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한국인 김염을 마음에 담고 연기했다. 공개된 김염의 35주년 추모영상은 감동적이었다. 
김염은 일제의 위협을 무릎쓰고 항일 영화에 출연했다. 김영의 일곱 형제 중에 세 명의 형제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김염의 외손녀 박규원은 김염이 김구 선생님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김염은 중국의 국립묘지에 묻힐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공찬은 상하이 한국학교에서 일일선생님으로 나섰다. 공찬은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의 수업을 맡았다. 공찬은 아이들에게 음악 수업을 했다. 공찬은 아이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공찬이 일일교사를 맡은 인성학교는 여운형이 설립한 학교로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임정 요인들이 역사를 가르쳤다. 인성학교 출신들은 독립군으로 자랐다.  
빨래를 마친 박찬호는 인성학교를 찾았다. 박찬호는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 박찬호는 17살 당시 국가대표로 경기하기 위해서 미국을 방문해서 다저스 스타디움을 찾았던 기억을 하나하나 털어놨다. 박찬호는 2년 4개월만에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뛰는 투수로 성장했다. 박찬호는 “꿈은 저게 좋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며 “하루만 참으면 된다. 3일이 되면 습관이 된다. 부족해도 오늘이 아닐 수도 있다. 분명히 성공이라는 자리는 온다. 인내심이라는 키를 담아둬라”라고 조언했다.    
독립자금을 벌기 위해서 고생한 이들은 또 다시 국수집에 모였다. 박찬호와 김수로와 강한나와 공찬과 김동완이 번 돈을 정산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pps2014@osen.co.kr
[사진] ‘하루살이’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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