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타기 좋은 차를 만들 심산이었으면 애초부터 다른 고민을 했을 게다. 현대자동차의 대형 SUV ‘팰리세이드(PALISADE)’를 탄생시킨 주역들은 차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공간’을 거듭 강조했다. 인간은 공간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간은 그 자체로 휴식을 주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그토록 중요한 공간의 가치를 왜 이제야 끄집어냈을까?
여유로운 공간은 배려다. 운전자가 구상하는 공간 안에는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함께 있으면 마음이 따뜻한 친구들도 있다. 여유 있는 차를 장만한다는 것은 언제든 그들을 맞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그런데 또 이런 고민도 있다. 가족과 친구들을 항상 차에 태우고 다니지는 않을 건 아닌가? 이럴 땐 너무 텅 빈 느낌이 나서도 안 된다. 언제든 가족과 친구들에게 공간을 베풀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땐 안락함과 품위가 있는 차량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차를 바라고 있던 대한민국의 가장들은 많았다. 팰리세이드 사전 계약에 쏟아진 몰린 예비 구매자들을 보면 많아도 아주 많았다. 자동차 제조사에서 몰랐을 리가 없다. 때를 기다렸다가 이제야 실현 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시장이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판단 한 뒤에야 개발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공간’이라는 주제는 정해졌다. 충분히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으면서, 안락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탈 수 있지만 편하지 않는 차는 안 된다. 움직임이 둔해서도 안 된다. 그 또한 불편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조건이 참 까다롭다. 기존의 개념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신개념이 필요하다.

현대자동차는 결국 ‘케렌시아’라는 개념을 꺼냈다. 케렌시아(Querencia), 현대인이 중요시하는 공간의 신 개념이라고 한다.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독립적인 공간을 케렌시아라고 하는데 현대인은 그런 공간에 대한 요구를 끊임없이 키워왔다고 한다. 자동차 만큼 공간이 한눈에 보이는 사물도 없다. 공간은 작을수록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압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안정감과 여유, 두 상반 된 정서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공간의 크기는 어느 지점일까?
현대차가 내놓은 팰리세이드는 국내 자동차 소비자들로부터 엄청난 각광을 받고 있다. 차를 내놓은 현대차도 이 정도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차를 먼저 사겠다고 나서고 있는 걸까? 팰리세이드가 소비자들에게 준 확실한 정보는 내외관 디자인과 최대 8명을 태울 수 있다는 공간성 밖에 없는데 말이다.
2만 명이 넘는 사전계약자들은 이 차를 타 보지도 않았다. 이전 세대 모델이 있어서 헤리티지가 쌓인 것도 아니다. 2만여 명의 수요를 부른 핵심은 결국 ‘공간’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팰리세이드가 속한 세그먼트는 포드 ‘익스플로러’, 혼다 ‘파일럿’, 닛산 ‘패스파인더’ 등이 조용히 세력을 키우고 있던 시장이다. 팰리세이드의 성공 여부는 국내 대형 SUV 시장의 성패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8인승을 기본 모델로 하고 있는 팰리세이드는 좌석이 3열까지 배치 돼 있으며, 2, 3열은 모두 6:4 폴딩이 가능하다. 2, 3열 좌석을 모두 접으면 2인승이, 3열을 접으면 5인승이 되고, 2, 3열을 6분할 폴딩하면 4인승이, 2, 3열을 4분할 폴딩하면 6인승이 된다. 자유자재의 변신 능력이다. 화물 공간은 또 어떤가? 2, 3열 시트를 모두 접었을 때 만들어지는 화물용량은 2,477리터나 된다.
7~8인승으로 나오는 차량은 꽤 있지만 3열은 사실상 죽은 공간이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팰리세이드는 3열도 뒤로 10도까지 젖혀진다. 아주 먼거리를 오가는 여행이라면 아무래도 불편함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3열도 충분히 거주성을 확보했다는 얘기다.
미디어 시승행사 때 용인 M&C 웍스에서 세종천문대를 돌아오는 왕복 136km 거리를 몰아봤고, 최근에는 포천에 있는 모터스포츠용 서킷, 레이스웨이에서도 이 차를 경험했다.

첫 시승에서는 새로운 공간과 딴딴한 주행 감성에 놀랐고, 서킷 주행에서는 체구를 초월하는 민첩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5미터 가까운 전장을 가진 차들은 자칫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동작이 굼뜨거나 차체가 출렁거리기도 한다. 운전대에서 맞닥뜨린 팰리세이드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가속기를 밟자 바닥을 단단히 다지고 있는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내가 모는 차가 5미터 가까운 전장을 지닌 차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가속페달에 반응하는 차체의 움직임은 보통 중형 SUV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서킷 주행에서는 높은 차체가 주는 시각적 불안감을 빼고는 나무랄 데가 없다. 포천 레이스웨이의 날카로운 헤어핀 구간을 스키어처럼 잘도 빠져나간다. 공간의 매력에 부합하는 날렵함이 있다.
넉넉한 엔진이 동작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팰리세이드는 디젤 2.2, 가솔린 3.8 두 가지 모델로 출시 됐는데 덩치에 눌리지 않을 출력을 지니고 있는 엔진들이다. 주력 모델이 될 디젤 2.2는 최고출력 202마력(ps), 최대토크 45.0kgf·m을 발휘한다. 체중도 최대한 줄여 놓았다. 공차 중량이 디젤 2.2 1,945kg, 가솔린 3.8 1,870kg이다.
큰 덩치로 인해 둔해지는 움직임을 막기 위해 무게는 줄이고, 서스펜션은 단단하게 조여 놓았다. 헐렁한 바지를 입었더라도 허리띠를 동여매고 신발끈을 단단히 묶으면 웬만한 중거리 경주는 거뜬히 해내는 게 우리네 습성이다.

미세먼지 이슈 이후 가솔린 모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3.8리터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모델은 최고출력 295마력(ps), 최대토크 36.2kgf·m의 성능을 발휘한다. 복합연비는 9.6km/ℓ(2WD, 7인승, 18인치 타이어 기준)다. 4륜구동에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20인치 타이어를 선택한다면 연비는 이 보다 더 떨어진다. 동력 성능은 넉넉하지만 연료비 부담이 마음에 걸린다. 대신, 디젤 모델의 복합연비는 훨씬 높은 12.6km/ℓ다.
가격은 두 모델 모두 익스클루시브, 프레스티지 트림으로 통합해 운영하고 디젤 2.2모델은 익스클루시브 3,622만원, 프레스티지 4,177만원, 가솔린 3.8 모델은 익스클루시브 3,475만원, 프레스티지 4,030만원이다.(※2WD 7인승 기준, 개소세 3.5% 반영기준)
물론 실구매가는 이 보다 올라간다. 옵션을 모두 선택하면 5,000만 원에 육박한다. 익스플로러, 파일럿 등과 크지는 않지만 일정 가격차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눈에 보인다. 8단 자동변속기와 랙 구동형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R-MDPS), 전방 충돌방지 보조, 차로 이탈방지 보조, 운전자 주의 경고, 하이빔보조 등 첨단 지능형 주행안전 기술(ADAS)은 전 모델에 기본 적용 돼 있지만 구미 당기는 여러 기능들은 선택사양으로 넘겼다.

드라이브 모드와 노면 상태에 따라 네 바퀴의 구동력을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전자식 4륜 구동(AWD, All Wheel Drive) ‘에이치트랙(HTRAC)’을 선택하면 SUV의 덕목인 다양한 환경에서의 주행성능이 향상 된다. 진흙, 모래, 눈길 주행을 가능하게 한 ‘험로 주행 모드(Multi Terrain Control)’도 국산 SUV 최초로 적용 됐다. 미디어 시승행사에서 코스 일부에 오프로드 주행 구간을 자신있게 집어 넣은 것도 이 같은 대비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 됐다.
차량 내부에 별도로 장착 된 마이크를 통해 엔진 소음을 실시간으로 분석한 뒤 역 위상의 음파를 스피커로 내보내 엔진 소음을 줄이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Active Noise Control)’은 꽤 쓸만하게 작용했다. 사이드미러가 커지는 만큼 바람이 부딪히는 소리도 커질수밖에 없는데, 잘게 부서진 엔진음이 적당히 중화시켜 엔진소리인지 바람소리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자동차 업계 최초로 적용 된, 공조기기의 바람이 직접적으로 승객에게 가지 않도록 조절 가능한 ‘확산형 천장 송풍구(루프 에어벤트)’, 내비게이션과 연계해 차량 터널 진입시 차량 윈도우를 닫고 공조를 내기 순환 모드로 자동 전환해 실내를 쾌적하게 유지해 주는 ‘자동 내기 전환 시스템(터널 연동 윈도우/공조 제어)’, 마이크로 에어필터와 클러스터 이오나이저를 활용해 한번의 터치로 미세먼지를 필터링하고 탈취하는 ‘공기 청정 모드’, 스마트 키로 시동을 걸 수 있는 ‘원격 시동’, 전자식 변속 버튼(SBW, Shift By Wire) 등은 향후 제네시스 브랜드로 탄생할 프리미엄 SUV의 ‘프리미엄 급’ 편의 사양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듯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