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의 인디살롱] 박지하, 잇단 해외투어 “외국에선 선입견이 없다”
OSEN 김관명 기자
발행 2019.01.14 13: 06

[OSEN=김관명기자] 국내보다 외국에서 먼저 진가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뮤지션 박지하(34)가 꼭 그 경우다. 국내에서는 ‘국악 연주가’로 분류되는 그도 외국에서는 그냥 ‘박지하 뮤지션’일 뿐이다. 그래서 피리, 양금, 생황 같은 그가 연주하는 악기에 대한 체감 온도가 한국과는 다르다. 솔직히, 이들 국악기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옛것’ 혹은 ‘어르신들 것’ 등으로 분류될 만큼 몹시 지독하다. 
“외국에서 너무나 적극적으로 좋아해주셨어요. 그분들한테는 제가 하는 음악이 국악이 아니라, 그저 음악을 하는 한국의 뮤지션, 박지하 뮤지션일 뿐이죠.”
실제로 박지하닷컴에 들어가 2017, 2018년 그녀가 한 외국 공연을 살펴보니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2017년 5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시작으로 영국 런던, 폴란드 바르샤바, 독일 베를린, 헝가리 부다페스트, 스페인 마드리드, 벨기에 브뤼셀, 네덜란드 헤이그, 체코 프라하, 미국 뉴욕 워싱턴, 덴마크 코펜하겐, 스웨덴 웁살라, 포르투갈 리스본, 프랑스 파리, 슬로베니아 류블리아나 등에서 외국 관객과 만났다. 

= 어떻게 외국에서 이처럼 잇따라 공연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2017년 초에 네덜란드 클래시컬 넥스트 아트맥스와 폴란드 워맥스 월드뮤직마켓의 쇼케이스 뮤지션으로 선정됐다. 이를 계기로 잇따라 해외 공연스케줄이 잡혔다. 특히 네덜란드 쇼케이스를 본 디렉터들이 초청을 많이 해주셨다. 현재 전문 에이전시가 있다.”
= 외국에서 인기를 체감하나. 
“지난 2016년에 나왔던 제 1집 ‘커뮤니온(Communion)이 해외레이블과 계약이 됐다. 그래서 2018년 3월 독일 글리터비트 레이블에서 재발매됐다. 영국의 BBC와 가디언, 미국의 피치포크 등 외국 전문지 평가도 좋아 ‘주목할 만한 신인’이나 ‘이 달의 베스트 월드뮤직 음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 나온 2집 ‘필로스(Philos)’도 올해 8월 글리터비트 레이블에서 또 재발매된다. 1집 때와 마찬가지로 LP와 CD로 동시 발매된다.”
=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왔다. 왜 국악을 선택했나. 
“딱히 조예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실 양악을 하려면 예산이 많이 드는 이유가 컸다. 국악은 국립이고 장학금까지 준다. 희소성이 있다는 것도 감안했다.”
= ‘박지하’라는 뮤지션에 대해 아직 세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본인 소개 좀 자세히 부탁드린다. 
“1985년생이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클래식FM을 틀어주셔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하게 됐다. 국립 국악중과 국악고를 거쳐, 2004년에 한예종 전통예술원에 들어갔다. 주 악기는 국악중 때부터 피리이지만, 대학 2학년 때는 생황도 배웠다. 졸업 후 무엇을 할까 고민했는데, 악단에 들어가기보다는 제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졸업 후 동기와 팀을 결성했다.”
= 그 팀이 ‘숨’(su:m)인가.
“맞다. 가야금을 전공한 동기 서정민과 2008년 숨을 결성, 2016년 10월까지 활동했다.”(숨은 2010년 1집, 2014년 2집을 냈다)
= 왜 전공으로 피리를 선택했나. 
“보통은 여학생들의 경우 가야금을 선택한다. 해금도 인기가 많다. 하는 모습도 예쁘고. 하지만 피리는 불면 얼굴이 안예뻐진다. 부는 것 자체도 힘들다. 국악중 입학 당시 원하는 악기를 3지망까지 써내는데 남들이 안하는 악기를 하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 플루트를 배운 적이 있어서 이와 비슷한 악기를 찾은 게 피리였다. 작지만 알차고 큰 소리를 내는 게 매력적인 악기다.”
= 생황와 양금은 어떤 악기인가.
“생황은 모양부터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악기다. 쉽게 보지 못하는 악기이면서 소리도 전통 악기와는 다른 음색을 낸다. 어떻게 들으면 전자음악처럼 들린다. 국악기 중 유일하게 화성을 낼 수도 있다. 2kg이나 나갈 정도로 무척 무겁다. 어쨌든 생황은 소리가 천상에서 온 듯한 색다른 느낌이 있다. 양금은 숨을 하면서 악기 음색이 다양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배우게 됐다. 치는 악기다.”
= 솔로 1집 ‘커뮤니온’은 연주자 구성이 색다르다. 
“숨 때는 국악기를 주로 사용해 창작했지만 솔로 1집에서는 색소폰의 김오키, 비브라폰의 좀 벨, 타악의 강택현 등 3분이랑 협업했다. 저는 국악 배운 사람, 김오키 오빠는 독학을 통해 자기만의 음악을 가진 사람, 뉴질랜드 사람인 좀 벨은 저와는 다른 베이스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음악을 조화롭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앨범 타이틀을 ‘교감’이라는 뜻의 ‘커뮤니온’(communion)으로 지었다.”
= 하지만 2집 ‘필로스’는 순전히 국악 연주로만 이뤄졌다. 
“1집은 다른 연주자 분들과 협업을 했지만, 2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저만의 호흡으로 만들고 싶었다. 소리에 대한 집요함, 공간 및 시간에 대한 집요함을 담고 싶었다. 그런 사랑을 대표하는 단어가 ‘필로스’(philos)라서 앨범 타이틀도 ‘필로스’로 정했다.”
= 2집을 함께 들어보자. 첫 곡은 ‘Arrival’이다. 
“제가 연주하는 소리들이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는 트랙이다. 지금 들리는 게 향피리와 양금이다. 양금은 때리기도 했고 활로 문지르기도 했다. ‘띠랑띠랑’ 들리는 것은 생황이다. 영화 ‘컨택트’에서 외계인이 지구에 왔을 때처럼, 이 세상에 없는 소리가 오는 느낌을 담고 싶었다.”
= ‘Thunder Shower’에서 바닥에 깔리는 소리는 무엇인가.
“빗소리를 직접 녹음해서 집어넣은 것이다. 메인 악기인 양금을 녹음하는데 갑자기 동남아 스콜처럼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더라. 그 소리가 앰비언트로 들렸고, 그때 감정을 살리고 싶어 빗소리를 따로 넣어 만든 곡이다. 양금 솔로는 채 2개로 쳤다.”
= 3번 트랙 ‘Easy’에서는 레바논 아티스트 디마 엘사예드가 시를 낭송한다. 
“그녀는 제가 2013년 미국에서 ‘원비트’라는 음악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알게 됐다. 전세계에서 음악장르를 불문하고 23명을 뽑았는데, 그녀와 이야기가 잘 통해 이후에도 SNS로 연락하며 지냈다. 그러다 2015년 국내에서 화엄음악제가 열려 제가 그 친구를 초대하기도 했다. 생황으로 선율을, 양금으로 앰비언스를 만든 트랙을 그 친구에게 보내줬더니 시를 써줬다. ‘너의 음악을 듣고 느꼈던 것을 써봤다’고 하더라.”
= 타이틀곡은 5번 트랙 ‘Philos’다. 그런데 생각보다 피리가 많이 안나온다. 
“피리는 1번과 8번 트랙에서만 연주했다. 주로 양금과 생황을 많이 썼다. 양금도 메인으로 가는 주된 양금이 있고, 여기에 다른 양금을 덧붙였다. 여러 명의 박지하가 많은 시간을 들여 쌓아 만든 곡이다. 나중에 능력이 되면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해보고 싶은 곡이다.”
= 6번 트랙 ‘Walker: In Seoul’은 생활소음이 들린다. 
“저는 스튜디오에서 양금을 녹음하고, 바깥에 마이크를 설치해 길에서 나는 소리를 담았다.”
= 그런데 이 곡에서는 양금이 서양악기인 챔발로처럼 들린다.
“그럴 수 있다. 비슷한 맥락의 악기이니까.”
= 7번 트랙 ‘When I Think Of Her’는 양금과 생황의 선율이 좋다. 그런데 왜 ‘Him’이 아닌 ‘Her’인가.
“엄마랑 있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나서였다. 그렇다고 엄마라고 구체적으로 지칭하면 감상에 방해가 될 것 같아 ‘Her’로 표기했다. 사실 이 곡을 만들면서 무척 슬펐다. 그래서 가슴을 훅 치는 느낌이 들도록 양금 연주를 했다.”
= 마지막 트랙 ‘On Water’를 들어보면 역시 표현력은 피리가 압도적인 것 같다. 
“섬세하다. 지금 들리는 것은 향피리이고, 더 맑게 들리는 소리는 글로켄슈필, 바닥에 깔린 소리는 양금이다. 엄마 뱃속에 있는 듯한, 몽환적이고 평온한 느낌을 담고 싶었다. 뒤에 나오는 양금은 그 물에서 첨벙첨벙 소리를 내는 것 같지 않나?”
= 국악 연주를 이렇게 직접 뮤지션의 코멘터리와 함께 들으니 새롭다. 올해 계획을 들어보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자.
“제 이름으로 두 장의 앨범을 냈으니 이를 바탕으로 공연을 할 계획이다. 해외 공연도 몇 개 들어온 게 있다. 아까 말한 것처럼 2집 LP도 8월에 나온다. 수고하셨다.”
/ kimkwmy@naver.com
사진제공=미러볼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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