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벽에 막힌 베트남 대표팀이었지만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가슴을 펴고 귀국길에 올라도 될 것 같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24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알 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전에서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끄는 일본에 0-1로 패했다.
베트남은 후반 13분 비디오판독(VAR)에 고개를 떨궜다. 티엔 둥이 페널티박스 안을 돌파하던 일본의 도안 리츠의 왼쪽 발등을 밟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페널티킥 키커로 나선 도안은 그대로 득점에 성공했다.

결국 이 실점이 승부를 가르는 결승골이 됐다. 베트남은 이후 일본의 탄탄한 중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몇차례 반격에 나서 봤지만 제대로 된 공격이 되지 못하면서 그대로 일본에 승리를 넘겨줬다.
베트남은 적어도 전반전 만큼은 일본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오히려 빠른 스피드와 돌파로 일본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36분부터 38분까지는 베트남이 거의 득점을 뽑을 뻔 했다. 특히 38분 일본 골키퍼 곤다와 주장 요시다 마야의 실수 속에 꽝하이가 날린 슈팅은 정말 아쉬웠다.

전반전의 옥에 티라면 전반 24분이었다. 코너킥 상황에서 요시다가 헤더로 베트남 골문을 흔드는 장면이었다. 다행히 VAR로 요시다의 슈팅이 손에 맞았다는 것이 선언되면서 골이 취소됐지만 선수를 놓치고 말았다.
그 외는 모두 다 괜찮았다. 베트남 선수들은 기타가와 고야(시미즈 펄스)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로 채워진 일본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스피드, 개인기, 조직력, 체력 등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았다.
최전방에 거침없는 개인기와 몸싸움을 보여준 꽁푸엉을 비롯해 중원의 중심을 잡아주는 꽝하이, 일본의 수비 뒷공간을 파고 든 판 반 둑 등은 오히려 성장세가 눈에 띄었다. 당 반 람 골키퍼는 이날 페널티킥 실점을 빼고 여러 차례 선방쇼를 펼쳐 한층 발전된 모습이었다.
경기 전날 한 일본 매체가 "베트남은 낮은 평가를 뒤집고 16강전을 통과해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고 말한 이유가 고스란히 경기를 통해 묻어나왔다. 지난해보다 기량이 확실히 올랐다는 것을 경기력으로 증명해 보였다.
12년 전 아시안컵 때와는 전혀 다른 결과다. 양팀은 지난 2007년 베트남 하노이의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만났다. 당시 베트남은 1-4로 패했다. 전반 8분만에 선취점을 올린 베트남이었지만 이후 내리 4골을 내줬다. 그나마 첫 골도 일본의 스즈키가 기록한 자책골이었다. 그 때와 비교해 0-1 이란 점수차가 바로 베트남의 현재 수준을 알려주는 셈이다.
하지만 후반전은 달랐다. 초반부터 일본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 가끔 역습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일본 수비의 발에 걸렸다. 사실상 승부가 기운 경기 막판 총공세를 펼쳤지만 일본의 수비벽은 뚫지 못했다. 전반과 비교하면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결국 경험이 문제였다. 일본은 시간이 갈수록 베트남을 상대로 여유를 보였다. 골을 넣고 나서는 더욱 느긋하게 덤비는 베트남을 끌어내는 모습이었다. 후반전에서는 역시 격차를 느낄 수 있었던 양팀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박항서 매직'은 이번 대회에서 많은 것을 남겼다. 조별리그 1, 2차전에 패해 베트남 언론의 포화를 맞기도 했지만 3차전 예멘전에서 승리하면서 16강 막차에 합류했고 16강에서는 A조 1위 요르단마저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베트남이 아시안컵 토너먼트 스테이지에서 거둔 역사상 최초의 승리였다.
박 감독의 베트남은 작년부터 치르는 대회에서 모두 인상적인 성적을 남겼다. 2018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위, 2018 AFF 스즈키컵 우승에 이어 2019 아시안컵에 이르기까지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성적을 거뒀다.
이에 싱가포르 언론은 일본전에 앞서 베트남에 대해 "어떤 결과를 내든 동남아 친구들의 공부가 될 수 있는 아이콘이 됐고 지금까지의 여정은 싱가포르, 말레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이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됐다"면서 "박항서 감독과 선수들이 만든 것은 일본과의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역사 교과서에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극찬했다.
베트남의 기량은 적어도 전반전에는 분명 동남아를 넘어 동아시아와 견줄 수 있었다. 이제 후반전까지 그 기량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 됐다. 박 감독과 베트남이 보여줄 앞으로 행보가 더욱 기대를 모으게 만드는 이유다. /letmeout@osen.co.kr
[사진] AFC 트위터, 두바이(UAE)=박준형 기자 /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