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의 ‘꽃’은 존재감 인식의 중요성을 이렇게 노래했다.
‘한 떨기 꽃’이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한 포기 풀’에 지나지 않았던 기아자동차 ‘쏘울’이 몸부림 끝에 환골탈태했다. 골격은 유지했지만 뼈마디에 기운을 불어넣고, 근육에 뜨거운 피를 흘려주는 심장은 완전히 바꿔 버렸다. 하도 ‘쏘울’을 몰라주니 “이래도 내 이름을 불러주기 않을 건가?”라며 심하게 앙탈을 부렸다. 성격마저 달라졌다. 누군가 쳐다봐 주기만 기다리던 소극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이다 못해 톡 쏘는 맛까지 담았다.
그런데 알고 보면 ‘쏘울’이 그렇게 안 팔린 차도 아니다. 그토록 안 팔렸으면 3세대까지 명맥을 이어왔을 리가 없다. ‘쏘울’은 2008년 첫 선을 보인 이후 글로벌 시장에선 100만 대가 넘게 팔렸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냉대를 받았다.

이유가 있다. 모호한 포지션 탓이다. 2008년 첫 모델이 나올 당시만 해도 ‘소형 SUV’ 세그먼트에 대한 인식이 국내 자동차 시장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실용성을 강조한 박스카로 분류됐다. 하지만 ‘쏘울’은 실용성을 극대화시킨 모델도 아니다. 박스카에 비해 좀더 캐주얼한 디자인을 택한 도심형 크로스오버 차량이다.
지금처럼 소형 SUV 세그먼트가 자리잡은 상황이었다면 간단히 ‘도심형 콤팩트 SUV’라 분류했을 터다. 하지만 세그먼트에 대한 인식이 없는 시장은 혼란스러웠고, 쏘울은 10여 년을 외롭게 버텨왔다.

쏘울의 3세대 모델 ‘쏘울 부스터’는 이런 배경 속에서 태어났다. 지금까지 몰랐던 가치를, 때가 됐으니 이젠 알아 달라고 단순히 애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 우리 시장엔 없었던 독특한 성격으로 어필하고 있었다.
쏘울 부스터의 디자인은 1, 2세대에서 다져진 뼈대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소형 SUV’라는 정체성을 찾았지만 여전히 박스카의 테두리는 유지했다. 정통 박스카와 콤팩트 SUV의 중간쯤 모습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쏘울만의 특성을 만들어 내기가 모호한 위치다. 그래서 기아차는 선택했다. ‘부스터’다. 영어의 부스터(booster)는 어떤 물체를 밀어올리는 추진체다. 전기에서는 전압을 높이는 승압기가 부스터다.
‘쏘울 부스터’는 최고출력 204마력을 내는 뜨거운 심장을 개성으로 삼기로 했다.
최근 기아자동차는 미디어 시승행사를 열면서 시승 구간을 ‘구리포천고속도로’로 잡았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박스카가 달릴 시승코스는 아니었다. 다이내믹한 주행성을 자랑하는 모델을 시승할 때 주로 잡는 구간이다.
시승차를 모는 기자들도 신이 나 있었다. 경쟁적으로 속도를 올리며 ‘쏘울 부스터’의 고출력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박스카의 구조상 미끈한 주행감을 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뜨거운 심장을 올렸다해도 쏘울이 스포츠 세단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핵심은 ‘쏘울 부스터’로도 역동적인 주행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쏘울 부스터’는 가솔린 엔진을 품고 있다. 1.6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으로 최고 출력 204마력(ps), 최대 토크 27.0kgf∙m의 동력성능을 낸다. 세단 모델 중에서는 ‘K3 GT’가 같은 엔진을 달고 있다. 지난 해 11월, ‘K3 GT’를 시승하면서 유쾌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운전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세팅 된 차가 ‘K3 GT’였다.

쏘울 부스터가 ‘K3 GT’의 움직임을 낼 수 없다. 다만 최고 출력 204마력의 파워는 그대로였다. 다소 거친 손맛도 느껴졌다. 정숙성을 추구하는 가솔린 SUV가 절대 흉내낼 수 없는, 디젤 SUV의 주행감성을 쏘울 부스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기어비가 상향조정 된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DCT)는 응답성이 개선 돼 운전자의 의도 대로 부지런을 떨었다. 복합 연비는 17인치 타이어 장착 시 12.4km/ℓ, 18인치 타이어 장착 시 12.2km/ℓ로 나와 있지만 구리포천고속도로에서 고속 주행을 많이 한 탓에 10.1km/ℓ 정도 나왔다.
차로 이탈 방지 보조(LKA, Lane Keeping Assist)의 도움을 받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Smart Cruise Control)도 고속도로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보조 기능이다.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달리면 당장 경고 메시지가 뜨기는 하지만 운전을 차에 맡기고 잠시 긴장을 풀어 볼 정도는 충분히 됐다.

시승 시간이 낮이었던 터라 와 닿지는 않았지만 실내 무드램프도 기아자동차가 강조하는 쏘울 부스터의 매력이다. 소리의 감성적 시각화(Emotional visualization of sound)를 콘셉트로 재생 중인 음악의 비트에 따라 자동차 실내에 다양한 조명 효과가 발생한다. 비트를 감지하는 램프는 ‘사운드 무드 램프(Sound mood lamp)’로 부르는데, 8가지의 ‘은은한 조명’과 6가지의 ‘컬러 테마’로 구성된다.
볼륨감이 돋보이는 센터페시아의 10.25인치 HD급 와이드 디스플레이도 ‘쏘울 부스터’의 젊어진 트렌드를 웅변하고 있었다. 와이드 디스플레이는 날씨, 지도, 음악재생 등으로 3분할 해 사용할 수도 있다.
기아차 최초로 블루투스 기기 두 개를 동시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블루투스 멀티커넥션(Bluetooth Multi-Connection)’도 쏘울 부스터가 자랑하는 청춘 콘텐츠다.

한층 젊어진 쏘울 부스터는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다.
쏘울 부스터의 가격은 프레스티지 1,914만원, 노블레스 2,150만원, 노블레스 스페셜 2,346만원이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