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의 존재 이유를 흔히 ‘팬’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KBO리그는 그 존재 이유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3년 연속 800만 관중을 돌파하는 등 명실상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프로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현재의 KBO리그는 양적 성장에만 몰두한 나머지 내실을 다지는 데는 소홀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리그 규모는 확장됐고, 선수들의 연봉도 치솟았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팬들에게 즐거움을 줬다.
그런데 일부 선수들의 경우 그라운드 밖에서 팬들과의 스킨십에는 소극적이었다. SNS와 각종 야구 커뮤니티를 통해 일부 선수들의 팬 서비스 부재를 성토하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선수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진 선수 자신들이 받는 연봉과 팬들과의 상관 관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무리는 아니다.

괴리감이 느껴지는 고액 연봉, 소극적인 팬 서비스 등은 800만 관중을 넘어 그 이상을 바라보는 KBO리그의 최대 문제다. 야구계 모두가 고민을 해 봐야 하는 문제다. 양상문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비 시즌 동안 전력 구상과 함께 팬 서비스 문제를 골똘히 생각했고, 머지 않은 곳에서 해답을 얻었다. 바로 배구(V-리그)와 농구(KBL) 등 겨울 스포츠의 올스타전이다.
이미 V-리그 올스타전은 겨울 스포츠 최대 축제로 자리 잡았다. 남녀 혼성으로 치러지는 배구 올스타전에서 사실 경기는 뒷전이다. 팬들이 SNS를 통해 올스타 선수들의 별명을 지어주며 애정을 표시하고,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 ‘예능감’이 필수을 장착해 올스타전에 나선다.
올해는 서재덕(한국전력)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실제 모델이었던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공격 성공 이후, 화끈한 세레머니는 V-리그 올스타전의 최대 볼거리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는 선수들이 일일검표원으로 나서 일일이 팬들을 직접 맞이하는 등의 스킨십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이미 배구의 팬서비스 문화는 성숙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KBL의 경우 팬들이 점점 떠나가는 등의 위기다. 하지만 KBL 사무국을 비롯해 선수들은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팬심을 돌리기 위해 올스타전을 팬들과 함께하는 축제로 만들어가고 있다. 창원에서 열린 올해 올스타전은 본 경기 하루 전날, 선수들과 팬들이 함께 서울에서 창원으로 이동하는 ‘KTX 패키지’를 판매해 스킨십을 강화했다.
2년 전 부산에서 열린 올스타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동 기간 동안 선수들과 레크레이션과 대화를 진행하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여기에 창원 상남동에서는 ‘무빙 올스타’ 이벤트를 통해 팬들을 직접 찾아갔고, 경기 당일에는 선수들이 직접 팬들에게 간식거리를 나눠줬다. 경기 중간 작전타임 이벤트에도 팬들이 참여하면서 흥을 끌어올렸다.
양상문 감독은 지난 28일 시무식 자리에서 선수들에게 프로 선수의 책임감을 강조하면서 “선수들이 이젠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잘 생각하고 신경써야 한다”면서 “농구와 배구 올스타전에서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팬들에게 보여준 퍼포먼스가 가슴에 와 닿았다. 스포츠의 예능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팬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를 느꼈다”고 전했다.
지금의 KBO리그 인기가 한 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양상문 감독은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소속팀 선수들에게나마 팬 서비스에 대한 인식을 좀 더 심어주기 위해 다소 무거운 어조로 시무식에 임했다.

양 감독은 시무식 이후 취재진과의 자리에서 “농구와 배구 올스타전을 보면서 우리 선수들도 팬들하고 적극적으로 교감을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팬들이 한 번 떠나면 돌아오기 쉽지 않다”고 강조하며 “야구 실력으로 팬들이 야구장에 오실 수 있도록 하겠지만, 올스타전이나 다른 이벤트가 있을 때는 선수들이 팬들과의 시간에 할애를 하는 등 시간을 내야 한다. 최고 선수들이 팬들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KBO리그의 올스타전은 해마다 ‘재미 없는 이벤트’로 전락하고 있다. 선수들이 참여해 상품을 따내는 이벤트는 있지만, 팬들과 교감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양 일간 열리는 팬사인회 외에는 전무하다. 올해는 KBO 역시 올스타전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에 공감해 농구와 배구 올스타전에 참관팀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KBO리그는 2000년대 초반, 관중석이 텅텅 비는 냉혹한 암흑기를 겪은 바 있다. 당시의 기억들과 현재의 불안 징조들을 외면할 경우, 다시 한 번 팬들의 외면을 받는 시기가 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jhrae@osen.co.kr
[사진] 롯데 자이언츠 , KBL 제공, OSEN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