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일도 한 무명 투수, ‘99마일’ 광속구로 텍사스행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9.01.30 10: 08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지난 2011년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빠진 일부 선수들에 일침을 가했다. 두고 두고 회자될 만큼 명언으로 여겨지지만 SNS에도 순기능이 있다. 
1990년생 무명의 좌완 투수 크리스 넌(29)에게 SNS는 인생의 기회가 됐다. 지난 29일(이하 한국시간)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 보도에 따르면 고향 내슈빌에서 개인 훈련을 하던 넌은 이달 중순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불펜 투구 영상을 올렸다. ‘플팻그라운드’ 앱을 만든 롭 프리드먼이 무료 플랫폼을 제공하며 투구 영상 배포를 도왔다.  
넌은 97마일에서 최고 99마일(약 159km)까지 스피드건에 찍힌 7초, 14초짜리 짧은 영상을 게재했다. 넌의 투구 영상이 화제가 됐고, 텍사스 레인저스도 이를 봤다. 텍사스 구단은 아마추어 스카우터 데릭 터커를 보내 넌의 투구를 직접 확인했다. 넌의 공에 감명받은 터커는 텍사스 구단에 계약을 추천했다. 

텍사스는 29일 넌과 마이너 계약을 체결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선수 자격으로 참가한다. 텍사스 산하 트리플A 내슈빌은 넌의 고향이기도 하다. 넌은 “고향 내슈빌에서 던지는 것은 내 꿈이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내슈빌에서 가족, 친구, 팀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멋질 것이다”고 기대했다. 
196cm 90kg 장신의 왼손 투수 넌은 지난 2012년 드래프트에서 24라운드 전체 735순위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지명됐다. 2014년까지 성장세를 보이며 빅리그 꿈을 키웠지만 2015년 엉덩이 부상을 당한 뒤 하락세를 보였다. 결국 2016년에는 야구를 잠시 관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모델 일을 했다. 사진 촬영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 2017년 시카고 컵스 더블A-독립리그를 거쳤고, 2018년 휴스턴 애스트로스 산하 더블A에서 7경기 3승 평균자책점 1.80으로 호투하며 트리플A에도 올랐다. 트리플A에서 7경기 평균자책점 13.50으로 부진했고, 이후 독립리그 세인트 폴 세인츠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오프시즌에 물리치료사에게 엉덩이 치료를 받으면서 몸 상태가 회복된 넌은 구속을 90마일대 후반으로 끌어올렸다. 트위터 영상을 통해 텍사스의 눈에 드는 행운이 왔다. 우여곡절 끝에 텍사스에서 새 기회를 잡은 그는 “그동안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MLB.com은 ‘텍사스는 투수가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마이너리거 오스틴 비번스-덕스와 브랜든 맨에게 빅리그 기회를 준 팀이다’며 넌의 빅리그 데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봤다. 비번스-덕스는 32세, 맨은 34세에 텍사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했다. 모델 일까지 한 무명의 왼손 투수 넌에게도 메이저리그 데뷔의 날이 찾아올지 주목된다. /waw@osen.co.kr
[사진] 세인트 폴 세인츠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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