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등산하는 스포츠카' 재규어 I-PACE, 인천대교에선 완전 자율 주행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9.02.20 09: 10

 재규어 순수 전기차 ‘I-PACE’를 처음 접해 본 게 벌써 작년 6월이다. 포르투갈 라고스 일대에서 진행 된 I-PACE 글로벌 시승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어렵게 얻었을 때다. 그 때만 해도 국내 출시까지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릴 줄 몰랐다. ‘전기스포츠카’ ‘전기 SUV’ ‘전기 스포츠세단’ 어느 세그먼트로도 이 차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을 지닌 I-PACE였다. 인증 기관에서 요모조모 따져볼 항목이 많았을 법도 하다. 
근 반년만에 재규어 I-PACE를 우리나라에서 다시 만났다. 완전하게 새로운 종족을 우리나라 시장이 받아들이는데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작년 초여름의 기억이 생생히 살아날 지 걱정스러웠다. 
가격 얘기를 먼저 풀면 포르투갈에서의 신선한 충격이 확 돌아올까?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는 이 차를 ‘EV400 SE’ ‘EV400 HSE’ ‘EV400 퍼스트 에디션’으로 세분하고 각각 1억 1,040만 원, 1억 2,470만 원, 1억 2,800만 원의 가격을 매겼다. 포르투갈에서 받은 충격의 가치가 현실 화폐로 환산 된 수치다. 예상치보다 낮은 감은 없다. 기존의 잣대로는 정의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에 매겨진 가격이다. 

상세 제원에서는 최대 주행 거리가 달라졌다. 작년 글로벌 시승행사에서 받은 자료에는 I-PACE의 완충 시 최대 주행 거리가 480km로 나와 있었다. 폭스바겐 발 디젤게이트 이후 새로 도입된 방식, 국제표준시험법(WLTP)으로 측정한 주행거리였다. 그런데 국내 인증에서는 최대 주행거리가 100km 넘게 줄어 있었다. 국내 인증 기관이 측정한 배터리 완충시 달릴 수 있는 최대 주행거리는 333km다. 
배터리로 달리는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원래 변수가 많다. 도로 조건 뿐만 아니라 날씨와 기온에도 영향을 받는 게 배터리 성능이다. 보편적 기준을 정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그래도 100km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납득이 쉽지 않다. 열악한 충전 인프라는 배터리 잔량이 50%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부터 운전자를 불안에 떨게 한다. 100km의 차이는 불안과 안심의 경계가 달라질 수 있는 수치다. 유럽 쪽이 상대적으로 후할 수도 있고, 국내 인증 기준이 까다로울 수도 있다. 딱히 어느 한 쪽을 편 들 수가 없는 게, 배터리에 끼치는 ‘변수’들 탓이다. 
최대 주행거리가 확 줄어든 아쉬움은 있지만, 글로벌 시승 이벤트에서 I-PACE가 던진 인상은 ‘신종족’이었다. 전기차라 하기엔, SUV라 하기엔, 세단이라 하기엔, 스포츠카라 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갖추고 있었다. 이 모든 분류를 합쳐 하나의 운동체로 만들어 낸다면 그것이 I-PACE가 아닐까 싶었다. 
그랬던 I-PACE를 인천 영종도에서 다시 만났다. 영종도와 송도국제도시, 그리고 두 곳을 잇는 인천대교를 오가며 I-PACE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신종족을 접했던 설렘은 많이 차분해져 있었다. 그 사이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도 전기차가 많이 보급 됐다.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I-PACE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애서는 영종도와 송도를 오가는 주행 정도로는 부족했다. 
포르투갈에서 I-PACE는 경치 좋은 남부 휴양지 라고스의 한적한 산길은 물론, F1 경주가 열리는 알가르베 국제 서킷의 레이싱 코스를 내달렸다. 이 정도였으면 충격도 아니다. 오프로드 주행을 한다고 하더니 눈대중으로도 높이가 족히 200미터는 돼 보이는 산을 하나 넘어 버렸다. 전기차가 가장 취약할 것으로 여겨지는 개울을 건너더니 산등성이를 따라 난 흙길, 돌길을 꾸역꾸역 타고 올라갔다. 폴폴 뿜는 먼지와 울퉁불퉁한 바위는 I-PACE의 장애물이 아니었다. 가장 큰 난관은 운전자의 공포심 뿐. 가파른 경사도 때문에 전방 상황을 알 수 없어 전방 카메라와 어라운드뷰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진행이 어려울 정도의 코스를 무덤덤하게 뛰어 넘었던 I-PACE다.   
물론 글로벌 시승행사와 같은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재연할 수는 없었을 게다. 1억 원을 가볍게 넘기는 차로 개울을 건너고, 산을 넘는 위험을 감수하기는 어렵다. 다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I-PACE가 그 험한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해냈다는 사실이다. 
영종도 시승코스에서 전혀 얻을 게 없었던 건 아니다. I-PACE의 자율주행 기능이다. 구간 단속 카메라가 설치 돼 있는 인천대교는 I-PACE가 갖추고 있는 자율주행 기능을 테스트 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다리를 건너는 다른 모든 차들이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은 모든 차들이 프로그램에 의존해 달릴 때 제 효과를 낸다. 자율 주행을 하고 있는 차들 사이로 인간 운전자가 모는 차가 단 한 대라도 휘젓고 다닌다면 도로는 난장판이 난다. 
I-PACE의 자율 주행 기능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그 어떤 차들보다 고집이 셌다. 반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차라도 그 단계는 제각각이다. 좌우 한쪽 차선만 인식해 기준이 되는 차선을 중심으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는 반복하는 차도 있다. 요즘에는 양 차선을 모두 인식해 차를 양 차선의 중간으로 유도하는 반자율 시스템이 많아졌다. I-PACE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뭐랄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아버지는 잠시 비켜달라’고 고집피우는 아들 녀석 같다고나 할까? 마치 운전자의 개입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뻣뻣하게 운전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앞 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는 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아, 그리고 실용성에 대한 깨우침도 있다. 포르투갈에선 내달리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능력이다. I-PACE가 SUV의 형태를 지니다 보니 뛰어난 적재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트렁크 적재 용량이 656리터로 일반적인 중형 SUV보다 크기도 하지만 뒷좌석을 접을 경우 1,453리터까지 늘어난다. 엔진이 없는 전기차이기 때문에 보닛 아래에도 27리터의 적재공간이 숨어 있다. 
스포츠카 다운 매력은 스펙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71.0kg.m을 낸다. 이쯤 되면 나오는 숫자가 또 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른바 제로백은 SUV 모양을 하고도 4.8초에 불과하다.  
배터리는 국내 표준 규격인 콤보 타입 1 충전 규격으로 국내에 설치된 대부분의 공공 충전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100kW 고속 충전기를 이용하면 40분만에 80%까지 충전할 수 있고 50kW 공공 급속 충전기를 이용하면 80%까지 충전하는데 90분이 소요된다. 
충전 인프라와 배터리 잔량의 스트레스에서 해방 된 전기차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정숙한 실내는 말할 것도 없고, 엔진오일 교환 같은 유지 관리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없다. “전기차를 한 번도 안 타본 사람은 있어도, 전기차를 한 번만 타본 사람은 없다는”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 번 전기차를 구입해 본 사람은 더 이상 내연기관 차를 사지 않는다고 한다. 성능 좋은 가전 제품이 돼 가고 있는 전기차의 미래를 I-PACE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100c@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