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의 불문율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지난해 포스트시즌부터 리그 차원에서 배트 플립이 권장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남아있는 듯하다. 배트 플립보다 더 보기 힘든 ‘타구 감상’이 빈볼과 벤치 클리어링을 불렀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신시내티 레즈의 시즌 5번째 맞대결이 열린 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피츠버그 PNC파크. 2회초 무사 1루에서 신시내티 데릭 디트리치가 우중간 담장을 크게 넘어가는 투런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개막전 마수걸이 홈런에 이어 시즌 2호포.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케 한 타구, 비거리가 무려 140m였다. 디트리치의 홈런 볼은 장외로 넘어가 PNC파크 외야 뒤에 자리한 엘러게니강 물 속에 떨어졌다. 지난 2001년 개장한 PNC파크 역대 47번째 엘러게니강 홈런. 이 강으로 홈런 타구를 보낸 선수는 디트리치가 32번째였다.

그러나 이 홈런이 빈볼을 불렀다. 홈런을 치고 난 뒤 디트리치는 타석에 서서 타구를 감상했다. 약 5초간 타구를 지켜본 뒤 1루로 뛰었다. 홈런을 맞은 피츠버그 투수 크리스 아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포수 프란시스코 서벨리도 디트리치가 베이스를 돌고 홈에 들어오자 한마디 건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결국 바로 다음 타석에서 ‘보복’이 가해졌다. 4회초 디트리치가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서자 아처가 초구 93.3마일(약 150km) 강속구를 몸 뒤쪽으로 던졌다. 디트리치는 공을 피했지만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신시내티 3루 덕아웃에선 데이비드 벨 감독이 뛰어나와 제프 켈로그 구심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그러자 양 팀 선수들도 덕아웃을 비우고 뛰쳐 나왔다.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신시내티 야시엘 푸이그가 흥분했고, 양 팀 선수들이 한 데 뒤엉켰다. 신시내티 벨 감독을 비롯해 푸이그, 투수 아미르 가렛, 피츠버그 투수 펠리페 바스케스, 키오네 켈라 등 5명이 퇴장을 당했다.
빈볼을 유발한 디트리치는 퇴장을 당하지 않았다. 이어진 4회초 타석에서 아처의 슬라이더에 배트가 헛돌아 삼진을 당했다. 하지만 8회초 2사 1루에서 우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포를 터뜨리며 멀티포를 가동했다. 이번에도 타구를 잠시 바라보긴 했지만 시간을 길게 끌지 않고 1루로 뛰어갔다.
경기 종료 후 디트리치는 “난 배트 플립을 하지 않았다. 타구를 보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며 보복구에 대해 “경기의 일부분이라고 하지만 야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다치지 않은 것이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바스케스는 “디트리치가 조금 과했다. 타구가 멀리 갈 것이란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한참 기다렸다가 뛰어선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벨 감독은 “홈런을 친 선수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베이스를 돌 수 있다. 보복구는 어떤 이유로든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다”며 아처의 빈볼을 꼬집은 뒤 “다른 팀에서 우리 선수를 고의로 다치게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waw@osen.co.kr

[사진] 피츠버그(미국 펜실베이니아주)=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