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던 마켓셰어가 20%로.”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숫자가 말해 준다. 기아자동차 플래그십 세단 ‘THE K9’의 지난 1년은 드라마틱했다.
작년 4월, 기아자동차는 비장한 각오로 ‘THE K9’을 출시했다. 전작인 1세대 K9이 전문가들의 평가는 좋았으나 정작 시장에서의 반응은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K3, K5 만큼 볼륨 모델은 아니지만 플래그십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였다.
절치부심한 기아차는 ‘THE K9’에 브랜드의 역량을 총집결했다. 여느 모델과 달리 ‘차 또한 풍경을 담는 건축물’이라는 ‘철학’을 도입해 자동차에서 간과하기 쉬운 정서적 공백을 채웠다. 차가 아니라, 차 안에서 바깥 풍경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여유’를 팔았다. 정서적으로는 ‘풍경’이지만 기술적으로는 ‘반(半)자율주행’이었다. ‘THE K9’을 시승한 이들이 한결같이 칭찬했던 요소가 굵직하고 정숙한 움직임, 그리고 탁월한 자율주행 능력이었다.

디자인은 1세대에 비해 존재감이 강해졌다. 전작이 ‘품격’이 강조 됐다면 2세대는 상대적으로 ‘개성’이 강하게 표출 됐다.
시장에서의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작년 4월 풀체인지 모델을 선보였고, 바로 다음 달 1,705대가 팔렸다. 출시 초기 반짝하는 수요가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도 판매량은 월 1,000대 윗선에서 유지 됐다. 작년 4월 이후 올해 3월까지 월 평균 판매량이 1,216대에 이르렀다. 1세대의 경우 출시 직후 1년 간의 월평균 판매량이 804대였다.
비약적인 성장이다. 출시 초기 1년간의 판매량을 비교하면 ‘THE K9’이 전 세대보다 51%나 늘었다.
연간 판매량도 1만 1,843대로 점프했다. K9의 연간 판매량이 1만 대를 넘은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2017의 연간 판매량 대비 663%가 솟았다.

‘THE K9’의 강점은 역시 ‘개성’이었다. 가볍지 않고 세련된 개성이다. 플래그십이지만 오너드리븐으로 사용해도 전혀 나이 들어보이지 않는 디자인이 주효했다. 이미 여러 차례 보도 된 바 있지만 구매층이 젊어졌고, 대형 세단임에도 불구하고 흰색 차량의 판매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 ‘세련된 개성’을 뒷받침한다.
‘가성비’라는 단어도 종종 나온다. 3.8리터 엔진을 장착한 대형 프리미엄 세단을 6,000만 원대에 살 수 있다. 제네시스의 G80과 G90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오히려 G90을 맞상대 한 게 시장에서는 ‘가성비 갑’으로 통하는 효과를 냈다. 실제로 차량 크기나 파워트레인, 편의안정장비는 G90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가격은 2,000만 원 이상 차이가 난다.
G90의 디자인이 너무 ‘우월’한 것도 상대적으로 ‘THE K9’의 선택지를 높였다. G90의 디자인은 오너드리븐을 생각하는 이들에겐 굉장히 부담스럽다.
기아자동차 국내 마케팅실의 자료를 살짝 엿봤다. 그들은 “상품성 측면에서는웅장하고 클래식한 디자인, 실내 고급감, 우수한 공간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성능 측면에서는 고급차의 중시 속성인 주행안정성과 정숙성에 특히 만족도가 높았다”고 적어 놓았다.
적극적인 시승 프로그램도 주효했다. 그 간의 고급차 시장은 차를 직접 시승하고 구매하는 패턴보다는 소비자들이 암묵적으로 설정해 놓은 사회적 기준을 따르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THE K9’은 “고급차일수록 더더욱 시승체험을 해야 한다”며 독립형 전용 전시관 ‘살롱 드 K9’을 신차 출시와 동시에 운영했다.
기아차에 따르면 월 평균 시승횟수가 2,050회에 달한다고 한다. 더 놀라운 수치도 있다. ‘THE K9’을 구매한 이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무려 92%가 ‘시승이 구매에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고 한다. 구매 패턴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개인 대 법인의 판매비중이 1세대 4:6이던 것이 5:5로 바뀌었다.
대기업 인사 시즌이 오면 어떤 차를 선호하는 지 조사를 하는데, 지난 연말 국내 주요 대기업 승진임원 중 70% 이상의 전무급 임원들이 ‘THE K9’을 선택했다는 소식도 있다. 삼성이 60%, LG가 72%, SK가 75% 였다고 한다. 그들도 과하지 않고 세련된 디자인이 소비자들에게 늘 주장하던 ‘젊은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게다.
‘세련된 개성’에서 탄력 받은 기아차는 ‘2020년형 THE K9’을 출시하면서 스포티 컬렉션을 별도 트림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스포티 컬렉션은 역동적인 셀들이 나타내는 입체적 패턴의 라디에이터 그릴, 입체감 있는 휠 중심과 얇은 스포크로 구성된 신규 19인치 휠을 달고 나왔다. 그리고 라디에이터 그릴 테두리와 휠을 포함한 외관 몰딩부는 새틴 크롬으로 처리 됐다. 슈트를 차려 입었지만 입었지만 비즈니스 백팩을 메고, 정장 구두 대신 캐주얼 로퍼를 신은 격이다.
중후하지만 세련 된 대형 세단.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중년의 암묵적 합의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