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길준영 인턴기자] ‘강한 2번타자’는 KBO리그의 대세로 이어질 수 있을까.
올 시즌 KBO리그를 강타한 트렌드 중 하나는 ‘강한 2번타자’다. 사실 강한 2번타자라는 말 자체는 그리 새롭지 않다. 예년부터 있어왔고, 시즌 개막이 가까워지면 심심치 않게 자주 들을 수 있는 단골 멘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전술로서의 강한 2번타자를 구현한 팀은 많지 않았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지난해 2번 타자의 OPS는 0.795로 9개 타순 중에서 9번(0.669), 7번(0.734), 8번(0.737)에 이어서 네 번째로 낮았다. 반면 강한 2번타자론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아메리칸리그(내셔널리그는 투수 타석이 있어서 제외)의 지난해 2번 타순 OPS는 0.764으로 3번(0.803), 4번(0.791)에 이어서 세 번째로 높았다.

이는 미국과 한국에서 강한 2번타자가 갖는 의미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세이버매트릭스가 등장한 이후 도루나 번트 같은 작전 야구가 생각보다 가치가 높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 결과 2번 타순에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난 타자가 아니라 스스로 득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타격 능력이 뛰어난 타자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즉, 테이블세터가 아닌 클린업으로 2번 타순의 역할이 변한 것이다.
올 시즌 2번 타순에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 크리스티안 옐리치(밀워키 브루어스), 호세 알투베(휴스턴 애스트로스), 무키 베츠(보스턴 레드삭스) 등 MVP 수상 경력이 있는 타자들이 배치된 것만 보아도 이러한 변화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팀내 최고의 타자를 4번에 배치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 KBO리그에서 강한 2번타자는 ‘타격 능력이 좋은 테이블 세터’ 정도의 의미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KBO리그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SK 한동민은 2번 타순에서 33개의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두산은 타점 생산 능력이 뛰어난 최주환을 2번에 배치했고 62타점을 쓸어 담았다.
올 시즌 타순별 OPS를 살펴보면 변화가 두드러진다. 3번(0.834)의 OPS가 가장 높고 그 다음이 4번(0.827), 2번(0.823) 순이다. 2번 타순의 OPS는 지난해 6위에서 올 시즌 3위로 뛰어올랐다.
현재 리그를 대표하는 강한 2번타자는 두산 페르난데스, 키움 김하성이다. 페르난데스는 올 시즌 27경기 타율 4할1푼7리(103타수 43안타) 5홈런 23타점 23득점으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기본적으로 득점기회를 만드는 테이블 세터 역할을 수행하지만 필요할 때마다 장타를 터뜨리며 타점도 쓸어담고 있다.
김하성 역시 올 시즌 활약이 좋다. 22경기 타율 3할5푼2리(91타수 32안타) 1홈런 16타점 17득점 6도루를 기록하고 있다. 시즌 전부터 2번 타순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키움 장정석 감독은 “김하성은 굉장히 강한 2번타자다. 우리팀 2-3-4번은 어느 팀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며 웃었다.
아직 클린업으로서의 강한 2번타자가 일반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다수의 팀들은 여전히 2번타자를 ‘연결하는 타자’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KBO리그의 타순 전략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올 시즌을 바라보는 재밌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fpdlsl72556@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