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상화,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아...여유롭게 살고 싶다"[일문일답]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19.05.16 14: 53

"다 내려놓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
'빙속 여제' 이상화(31)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스케이트 부츠를 벗었다. 항상 경쟁 속에서 살았던 이상화는 이제 새로운 인생 설계를 위해 재충전 시간을 갖는다. 
이상화는 16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더 플라자호텔 루비홀에서 은퇴식 및 기자간담회를 갖고 공식적으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서의 생활을 마감한다고 밝혔다. 2004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고 2005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 여자 5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이상화'란 이름을 알린지 15년만이다.

[사진] 이동해 기자 / eastsea@osen.co.kr

이상화는 "스피드스케이트 선수 이상화입니다. 스케이트 선수로서의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라고 말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이어 이상화는 "토리노 팀 막내로 출전해 '넘어지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7년이 지났다. 17년전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세계선수권 우승, 올림픽 우승, 세계신기록 보유라는 3가지 목표를 세웠다"면서 "이 3가지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려왔고 분에 넘치는 국민들의 응원 덕분에 17년 전 목표는 다 이룰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이상화는 "3가지 목표를 다 이룬 후에도 계속 좋은 모습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다음 도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저의 의지와 다르게 항상 무릎이 문제였다. 마음과 다르게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면서 "이런 몸 상태로는 최고 기량 보여줄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국민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줄 수 있는 위치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싶다"고 은퇴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상화는 "이 자리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링크장에서 사라지지만 스피드스케이팅은 살아있으니 변함없이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빙속 여제'의 탄생을 알린 이상화는 4년 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같은 종목에서 또 한 번 정상에 오르며 올림픽 2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올림픽 2연패는 카트리오나 르 메이돈(캐나다), 보니 블레어(미국)에 이은 역대 3번째 기록.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였다. 이상화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 올림픽 3연패를 노렸지만 라이벌 고다이라 나오(일본)에게 금메달을 넘겨준 바 있다.
이상화는 지난 2013년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13-2014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2차 대회 여자 500m 2차 레이스에서 36초36을 기록, 이 부문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다음은 이상화와의 일문일답이다.
[사진] 이동해 기자 / eastsea@osen.co.kr
-고민 많았다고 했다. 언제 최종적으로 은퇴 결정했나
▲3월말 은퇴식이 잡혀 있었다. 온몸에 와닿더라. 너무 아쉽고 미련이 남아서 좀더 해보자 해서 재활을 병행했다. 하지만 몸 상태는 나만 알고 있는 거지 않나. 예전 좋았던 몸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은퇴하는게 낫다 싶어 결정했다.
-앞으로 목표나 활동 계획은
▲중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 목표만 위해 달려왔다. 다 내려놨고 어느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다.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
-국가대표 17년 생활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기억은
▲소치 올림픽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운동 선수에게는 징크스가 있다.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우승을 하고 나면 다음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못딸 것이란 이야기가 있었다. 나 또한 두려웠다. 하지만  깔끔한 레이스여서 더 기억에 남는다.
-3개의 올림픽 메달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밴쿠버는 첫 메달이었다. 3위 안에만 들자는 목표였다. 예상 외로 깜짝 금메달을 땄다. 소치에서는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계속 그렇게 좋은 성적으로 2연패 했다. 그 자체로 나 자신에게 엄청난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평창에도 그런 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담 이겨내려 했다. 4년전보다 부상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고 우리나라여서 긴장한 것도 있었다. 평창메달도 색이 이뻤다.
-고다이라 나오와 은퇴에 관한 이야기 했나.
▲저번주 금요일 기사를 통해 보고 나오가 농담아니냐고 잘못된 뉴스였으면 한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상황을 보자고 했지만 이렇게 기자회견을 통해 선수들에게 은퇴를 알리게 됐다.
-부모님 반응은
▲ 저희 부모님은 제가 계속 운동하는 걸 원했던 것 같다. 은퇴 날짜가 잡히기 전에도 속상해 하실까봐 말씀 안드렸다. 저만큼 섭섭해하실 것 같다. 오늘도 잘하고 오라는 말을 해주셨다. 말 한마디에 서운함이 묻어 있더라. 항상 겨울이 되면 볼 수 있었던 딸의 경기 모습을 못보니까. 그런 부분은 차차 달래드려야 할 것 같다.
-제2의 이상화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지도자로 나설 계획이 있나.
▲은퇴를 고민했던 것이 올해다. 평창 때는 우승이 목표여서 아직 계획을 세우지 않은 상태다. 은퇴함으로써 스피드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후배들을 위해 지도자로 나설 수도 있을 것 같다. 제 생각이 정리된 후에 고려할 것이다. 지도자로 나설 의향이 있다.
-어떤 것이 가장 아쉽다.
▲겨울에 성적을 내기 위해 여름에 열심히 훈련한다. 소치 끝나고 캐나다에서 훈련했다. 여름에 힘들었지만 훈련 과정이 재미있었다.
[사진] 이동해 기자 / eastsea@osen.co.kr
-밴쿠버 3총사 중 모태범, 이승훈에게 할 말은
▲태범이는 다른 종목(사이클)을 한다. 가끔 연락한다. 이야기가 똑같다. 운동할 때가 재미있었다. 스케이트 때보다 힘들다고 말한다. 맡은 바에서 최선 다해서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 어떻게 기억하고 떠올려주길 바라나
▲평창 끝나고 인터뷰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남고 싶다고 했다. 아직 변함이 없다.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종목에 그의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고 항상 노력하고 안되는 걸 되게 하는 선수였다'고 기억되고 싶다.
-맞수 고다이라 나오 선수에게 한마디한다면
▲나오 선수와는 인연이 깊다. 중학교 때 한일전부터 친해졌다. 우정이 깊다. 아직 나오는 현역이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욕심내지 말고 하던대로 해주셨으면 한다. 나가노로 놀러가겠다고 했다. 조만간 찾아갈 계획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갔다면
▲그 때도 부담감 속에 떨 것 같다. 스스로 1등만 하던 이미지였나보다. 2등만 해도 죄짓는 기분이다. 베이징 때도 우승 못하면 힘들 것 같다. 준비 과정이 더 힘들 것이다. 평창 때도 힘들었다. 하지만 해설로 갈 수도 있고 코치가 돼서 갈 수도 있다. 둘 중 하나가 돼서 가고 싶다.
-감사한 분이 있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국가대표 때까지 아주 많다. 국가대표팀이 되고 나서 금메달을 따기까지 많은 분이 계신다. 소치부터 평창까지 함께해준 케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 계신 많은 코치 선생님을 찾아뵙고 고마움을 전달하겠다.
-세계신기록이 언제 깨지길 바라나
▲욕심이지만 영원히 안깨졌으면 한다. 하지만 기록은 깨지라고 선수들 기량 많이 올라왔다. 언젠가 깨지겠지만 1년 정도는 유지해줬으면 한다.
-선수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마인드 컨트롤이었다. 어떻게 주변에 신경쓰지 않겠나. 힘들고 부담이 오더라. 1등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식단 조절도 해야했고 남들 하나 할 때 2개를 해야 했다. 모든 것 자제하고 마인드 컨트롤 하는 것이 힘들었다.
-비인기 종목 걱정된다고 했다. 포스트 이상화가 있나
▲김민선을 추천하고 싶다. 민선이가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력이 많이 성장했다. 어릴 때 저의 모습과 흡사했다. 평창 때도 밤을 같이 내게 떨지 말라고 하더라. 신체조건이 좋다. 500m 뿐 아니라 1000m까지 연습해서 잘됐으면 한다. 500m 최강자로 거듭나길 바란다.
-은퇴 인사를 많이 받았나
▲한국보다 외국 친구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국내 선수들은 아무래도 축하한다고 말도 못할 것이다. 나오랑 스벤(크라머)에게 가장 먼저 받았다. 오늘 공식적으로 발표한다면 많은 메시지를 받게 될 것이다.
-평범한 일상 중 해보고 싶은 것은
▲규칙적인 생활 많지 않나. 하루에 4차례 시간을 나눠서 운동을 하다보니 힘들었다. 그런 패턴을 이제 내려놓고 싶다. 강박관념 없이 한가롭게 산책을 하고 싶다.
[사진] 이동해 기자 / eastsea@osen.co.kr
-연예 기획사와 계약을 했는데
▲어떻게 살것인가. 아직 계획은 없다. 일단 다 내려 놓고 살고 싶다. 연예소속사라고 해도 많은 스포츠 선수가 많다. 친분을 쌓고 싶었다. 스포츠 프로그램 출연 계획은 아직 없지만 그런 제의가 들어온다면 관심을 갖고 찾아보겠다.
-올림픽 중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평창이 제일 힘들었다. 독일에서 나름 최고 기록을 세우고 넘어갔다. 하지만 느낌이 조금 달랐다. 내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섰다. 2015년부터 제대로 편히 자본 적이 없다. 1등 압박에 힘들었다. 평창이 제일 힘들었다.
-다른 종목에 관심을 갖는 선수도 많다.
▲저는 그대로 자기 분야에서 최고 때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릎 부상이 커서 다른 운동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수술 시기가 왔다. 수술 후 상태를 보고 할 수 있는 스포츠를 찾게 되지 않겠나.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잠을 편히 자보고 싶다. 평창 끝나고 알람 끄고 생활할 것이라 했지만 하루 이틀 밖에 못갔다. 은퇴한다고 해서 착잡했다. 은퇴를 발표함으로써 '선수 이상화'가 사라졌으니 '일반 이상화'로 돌아가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
-이렇게 해야만 최고 선수가 될 수 있다고 해주고 싶은 말은
▲주변 친구도 그렇고 힘들다고 해서 포기하는 친구들 많다. '쟤도 하는데 나는 왜 못하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안되는 걸 되도록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letmeout@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