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덥지" 5월 한낮 더위가 벌써 이마에 구슬땀을 부른다. 이럴 때 주말 계획으로 먼저 떠오르는 건 두 가지다. 에어컨 빵빵한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감상할지, 아니면 시원한 평양냉면 한 그릇 때릴지. 영화 보고 냉면까지 먹으면 꿩먹고 알먹기, 금상첨화다.
단, 비용은 만만찮게 들어간다. 영화는 관객 1300만명을 돌파한 '어벤져스: 엔드게임' 멀티플렉스 상영관 2D 입장권을 기준으로 했다. 냉면은 맛집 블로거들이 '서울 3대 OO' '전국 5대 OO' 등을 뽑을 때 자주 들어가는 평양냉면 노포를 조준점 삼았다. 뭐가 더 비쌀까? 냉면이다. 3시간 넘게 스크린에 두 눈을 꼭 붙잡아두는 '어벤져스4'는 1만2천원 정도. 요즘은 요일과 시간, 그리고 좌석 등에 따라 가격차가 있다. 3D나 4DX로 가면 가격은 훨씬 높아지기는 한다.
고급 평양냉면은 올해 또 가격이 올랐다. 지금 이 칼럼을 쓰게된 배경이다. 중앙일보 16일자 인터넷판 뉴스에 따르면 역사와 전통의 한 노포가 한여름을 앞두고 냉면 가격을 1만4000원으로 올렸단다. 약 8년만에 40% 인상이라고 했다. 냉면집 실명은 안 나왔지만 대치동과 미국 워싱턴DC에 분점이 있는 서울 중구 A식당이라고 썼다. 이 정도 정보라면 냉면 마니아는 누구나 어느 식장인지 감 잡을 게 분명하다. 기자 역시 매년 자주는 몰라도 가끔 갔던 냉면옥이다. 놋그릇째 육수 들이키며 1만3000원도 비싸다고 투덜댔거늘, 더 올랐다.

보도에 따르면 이 식당 수준의 다른 유명 냉면집들도 덩달아 가격표를 고치고 있다. 냉면 노포의 그릇 당 평균 가격은 1만2천~1만4천 되시겠다. 미식가 평론에서 극찬하는 메밀 100% 순면은 17000원이다. 3D 영화에 순밀 냉면 코스로 즐기면 지갑에서 만원 짜리 세장이 술술 샌다.

다행히 기자는 어린이 입맛이라 평양냉면 슴슴한 육수에 제대로 입문한 것도 마흔 넘어서고 아직까지 순면은 별로다. 설탕 팍팍치고 매운맛 확 풍기는 분식점표 비빔냉면이 당길 때가 더 많다. 1980년대부터 다녔던 잠실의 한 매운냉면 식당은 지금 많이 올라서 한 그릇에 4500원이다.(지난해 기준, 또 올랐을지는 모르겠다)
극장요금은 지난해 8월 1만원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국내 극장 점유율 1위 CJ CGV의 인상에 이어 나머지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 등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극장체인들은 입장요금 올릴 때마다 온갖 비난의 표적이 됐던 게 사실이다. '서민 문화생활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회적 인식이 극장요금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기 때문.
기자도 영화팀 소속일 때 CGV 등의 편법 요금 인상과 스낵코너 폭리를 비난하는 기사를 자주 썼던 기억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극장요금과 짜장면값은 서민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바구니 물가의 상징들이었으니까.
평양냉면의 지위는 이 둘 위에 우뚝 선 모양이다. 육수에 금가루를 풀은건지 면발에 인삼가루를 섞은건지, 거침없이 지붕 뚫는 가격 인상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덥고 짜증나는 날, 영화 한 편에 냉면 한 그릇의 일상은 정녕 이대로 사라지는걸까. 아들한테 물어보니 그런 소리 말라며 혀를 찬다. 영화엔 원래 편의점 컵라면이 제격이라고 큰 소리다. 정말 그럴지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옛날 어렸을 때 자주 흥얼거렸던 어른들 유행가 한 자락이 떠오른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기생집이 무어냐 요릿집이 무어냐.." /mcgwire@osen.co.kr
<사진> '어벤져스:엔드게임' '수요미식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