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태권도연맹(WT·총재 조정원)은 정녕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발전의 길을 모색하고 있을까, 아니면 시나브로 퇴락의 길을 밟고 있을까?
태권도는 국기다.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은 “대한민국의 국기(國技)는 태권도로 한다.”(제3조의 2)라고 명시하고 있다. 곧, 태권도는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무도 스포츠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빛나는 문화유산의 바탕 위에서 기운이 싹터 창설된 국제 연맹(IF)이 WT다. WT 본부가 한국의 수도 서울에 자리하고, 수장인 총재가 한국인인 까닭도 이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1973년 5월 창설된 WT를 지금까지 46년간 이끈 역대 총재는 김운용(1973~2004년)→ 조정원(2004년~)으로 두 명 모두 한국인이다.

그러나 최근 WT가 밟는 걸음걸이를 보면 개탄스럽다. 과연 이런 태동의 역사를 인식하고 있는지 자못 의아심이 인다. 전 세계인의 보편적 무도 스포츠로 성장한 한민족의 국기라는 자긍심을 지니고는 있는지, 만일 그렇다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사뭇 안타깝기만 하다.
걸음 모양새를 살피려고 시간을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이달 중순에 열린 2019 맨체스터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15~19일·이하 현지시간)로 공간과 시간을 좁혀도 충분하다. WT가 주최·주관하는 가장 큰 이벤트인 이 대회에서 벌어진, 태권도의 얼을 망각한 데서 말미암은 일련의 행태는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태권도는 우리네 고유의 무도’라는 근원적 정신은 도무지 찾을 길 없는 넋이 빠진 모양새의 일이 거푸 일어났다.
되풀이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 퇴보와 쇠락을 자초할 뿐
3막으로 이뤄진, 실소를 자아내는, 아니 분노마저 일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연극이었다. 일부러 연출하려 해도 낯부끄러워 포기할 법한 어이없는 각본의 연희(演戲)였다. 각 막의 소재는 ▲ 1막 명예의 전당 ▲ 2막 심판, ▲ 3막 태극권이었는데, 이를 관통하는 주제는 한마디로 ‘영혼의 증발’이었다.
1막은 WT 총회가 무대였다. 대회 개막 하루 전(14일)에 열린 총회에서, 조정원 총재가 던진 말은 귀를 의심케 했다. 명예의 전당 건립과 관련한 발언에서, 조 총재는 “그 예정지로 중국 또는 한국을 염두에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태권도의 발상지 한국을 거론하기는 했어도, 중국에 더 비중을 둔 뉘앙스를 짙게 풍겼다. 이 점은 중국을 먼저 손꼽은 데서 분명하게 엿보였다.
수 년 전부터 조 총재는 중국에 경도된 행보를 옮기고 있다. 2년 전 창설된 우시(無錫) 월드 그랜드슬램 챔피언스 시리즈에 올림픽 자동 출전 티켓 한 장을 배정한 건 그 대표적 방증 사례다. 중국이 전 세계 태권도 대회 최대 상금(76만 달러· 약 9억 여 원)이라는 파격적 조건으로 내민 달콤한 유혹의 손을 기꺼이 마주 잡고 여러 특혜를 베풂에 주저하지 않고 있다.
2막은 본무대에서 벌어졌다. 대회 사흘째인 17일 여자 +73㎏ 결승전에서 일어난 상상하기도 버거운 심판 판정은 곪을 대로 곪은 WT의 환부가 여과 없이 드러난 일대 사건이었다. 올림픽 랭킹 1위 비안카 워크던(영국)과 2위 정수인(鄭姝音·중국)이 격돌한 결승전은 기가 막히는 결말로, 팬들의 분노를 샀다.
마지막 라운드 1분 12초께 20:11로 앞서던 정수인에게 반칙패(감점 10개)가 선언되며, 뻔했던 결말은 순간적으로 각색되며, 오히려 워크던이 승자가 됐다. 누가 봐도 승패가 갈린 듯한 상황에서, 작정한 듯 몇 초 간격으로 잇달아 감점을 준 타릭 벤라디 주심(모로코)의 기준과 일관성을 잃은 판정에, 정수인은 희생양이 됐다.
반칙승만을 의식한 워크던은 스모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잡고 밀어내는 동작을 되풀이했다. 그런데도 이를 도외시한 채 정수인에게만 잇달아 감점을 선언하는 주심의 판정에, 1,500여 명의 관중은 분노의 야유를 퍼부었다. 이 웃기조차 힘든 ‘희극’을 지켜본 관객에게, WT는 앞으로 “태권도를 많이 사랑해 달라”라고 부탁할 수 있을까? 심판이 경기를 농단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규칙이 지배하는 스포츠에 어느 누가 흥미를 갖고 관심을 기울일까? 그 스포츠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사건은 얼핏 심판이라는 한 개인의 어긋난 행동일 뿐 WT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후 WT의 행보를 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일벌백계의 칼날을 들고 나서도 모자랄 판에, WT는 어떤 징계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대회가 끝난 지 9일이 넘었지만, WT가 벤라디 심판을 징계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2020 도쿄(東京) 올림픽에서 판관으로 나설 50명의 심판진 후보에, WT는 여전히 ‘타릭 벤라디’라는 이름을 버젓이 올려놓고 있다.

정점은 3막으로, 중국을 구애하는 조 총재의 연모(?)가 민낯으로 드러났다. 그 무대는 폐막식이었다. 다음 대회 개최지인 우시 측에서 준비해 선보인, 태극권을 소재로 안무한 공연은 보는 이를 아연케 했다. 세계 태권도의 가장 큰 이벤트가 펼쳐지는 무대가 분명할진대, 어떻게 중국 무술인 태극권이 상연될 수 있다는 말인가.
WT는 차기 개최지 우시가 자기네 문화를 선보였다고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종합 무대가 아니라 태권도 단일 무대였다. 그런데 어떻게 태극권을 올려놓을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조 총재가 이끄는 WT가 그동안 얼마나 중국에 편향된 길을 걸어왔는지를 쉽게 가늠케 하는, 중국이 의도한 오만한 공연이었다.
WT에 묻고 싶다. 태권도의 미래를 밝게 밝히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으며 그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 심히 의문스럽다. 작금 되풀이되는 행태는 단견에서 기인한 분별 없음에서 야기됐는지, 아니면 이익만을 좇는 과욕에서 말미암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결말은 쉽게 헤아릴 수 있다. 퇴보와 쇠락이다.
영혼을 팔아 버린 듯싶은 일련의 맹동(盲動)에, ‘종가’ 한국의 뜻있는 태권도인들은 우려를 금치 못한다. 그리고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WT가 왜 종가의 자존심을 포기하고 태권도 본연의 가치를 등한시한 채 굳이 퇴락의 길을 고집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최규섭(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