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형' 이강인(18, 발렌시아)의 '탈압박'과 '임기응변' 능력은 경기장 밖에서도 탄성이 나올 만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U-20) 대표팀은 1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했다. 비록 우크라이나에 역전패했지만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남자 축구 사상 첫 결승전을 치렀고 준우승까지 차지해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특히 이강인에게 쏟아진 관심은 엄청났다. U-20 월드컵 역대 아시아 선수로는 두 번째 골든볼(MVP)을 수상,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세르히오 아게로(맨체스터 시티), 폴 포그바(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할 수 있는 자질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강인은 경기장에서 보여준 '탈압박' 능력으로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축구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축구를 18세의 나이에 이미 완숙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강인이 둘러싸인 수비수를 제치는 플레이 하나하나에 팬들의 기대감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탈압박'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상대의 수비 압박을 벗어난다는 뜻도 있지만 볼을 계속 소유할 수 있는 자신감, 그런 위험한 상황을 즐길 수 있는 대담성은 물론 넓은 시야와 순발력까지 복합적으로 내재된 말이다. 그래서 경기장에서 이강인은 '막내형'이었다.
그런데 이강인의 탈압박 능력은 경기장을 벗어나서도 통용됐다. 이강인은 귀국한 후 기자들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부분 대회 관련 질문이었지만 소속팀과 A대표팀 등 자신의 거취와 관련된 민감한 내용에도 답해야 했다. 지금까지 몇차례 공개 인터뷰가 있었지만 이렇게 집중도가 높았던 점은 없었기에 이강인의 반응이 궁금했다.

이강인은 골든볼 수상에 대한 질문으로 몸을 풀었다. 이강인은 "그 상황에서는 경기를 져서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좋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팀 동료, 코칭스태프, 경기 안뛴 형들이 많이 응원해주고 많이 도와줘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그래서 그런 상을 받았다. 그 상은 제가 받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받은 상"이라고 10대라고는 믿기지 않은 대답을 했다.
또 대회를 통해 더 높아진 인기에 대해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팀 동료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열심히 뛰어줬다. 좋은 선수들이어서 제가 플레이하기 쉽게 만들어줘서 그렇게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었다. 경기 안뛴 형들도 밖에서 응원 많이 해줬다. 코칭스태프들도 많이 응원해줬다. 한국, 폴란드에서 응원해주신 분들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이강인의 이런 대답은 대표팀보다는 자신에게 집중되고 있는 칭찬과 찬사를 훌륭한 언변으로 다시 팀의 덕분으로 되돌려 놓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성인 선수들에게도 좀처럼 듣기 쉽지 않은 대답이었다. 옆에서 이강인의 말을 듣고 있던 기자들의 표정에서도 흐뭇함이 읽혀질 정도였다.
이강인은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질문에는 단호하면서도 무난하게 답했다. 지난 시즌 출전시간이 거의 없었던 이강인이었기에 아약스, 아인트호벤(이상 네덜란드), 레반테(스페인) 등과의 이적설이 나돌고 있다.
이에 취재진은 이강인에게 다음 시즌 거취에 대해 이야기할 부분은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강인은 단호하게 "없다"고 말했다. 또 마르셀리노 감독이나 구단에서 축하인사가 온 것은 없었냐는 물음에도 "개인적인 연락이라 따로 말해드릴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혹시 생길 수 있는 오해의 소지를 아예 잘라낸 대답이었다.
또 높아진 A대표팀 합류에 대한 기대감에 대해서는 "지금 20세 대표팀 끝나고 왔으니까 다른 것보다는 가족들과 방학을 즐기고 싶다"고 웃으며 넘기기도 했다. 휴가가 아니라 '방학'이란 단어 정도만 이강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강인은 임기응변에도 뛰어났다. 이강인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U-20 대표팀 환영식에 참석, 팬들과 만남을 가졌다. 팬들은 이강인의 이름이 불리자 가장 뜨겁게 반응했다. 고조되는 분위기에서 행사 진행자는 SNS에 올라온 즉석 질문을 던졌다. 정정용호 형들 중 누구를 누나에게 소개시켜주고 싶냐는 질문이었다.
이강인은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솔직히 아무도 없다"고 너스레를 떤 후 "꼭 소개줘야 한다면 (전)세진이형 아니면 (엄)원상이형이 괜찮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나마 정상인 형들이다. 나머지는 좀 비정상이어서 부담스럽다"고 말해 모두를 폭소케 했다.
'슛돌이' 이후 발렌시아 구단의 인터뷰 금지 규정으로 베일에 싸여 있던 이강인이었다. 최근 조금씩 이강인의 인터뷰 실력이 봉인 해제되면서 새삼 놀라게 만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강인의 인터뷰는 경기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탈압박 능력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강인의 다음 탈압박 인터뷰가 기대된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