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바지는 입고 나왔지만 김세영(26, 미래에셋)의 9승 길은 ‘마법’ 대신 현격한 ‘실력차’가 안내하고 있었다.
한국시간 15일 새벽, 미국 오하이오주 실비아의 하이랜드 메도우 골프클럽(파71/6,550야드)에서 벌어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총상금 175만 달러=약 20억 6,00만 원, 우승상금 26만 2,500달러=3억 900만 원)의 최종 라운드 후반홀.
빛나던 김세영의 플레이가 잠시 주춤했다. 파4 16번홀에서 보기를 했다. 최종라운드 후반에 나온 보기, 대개의 경우라면 ‘승부처’의 엄습이다. 우승컵의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전환점이 되기 쉽다.

그러나 ‘현격한 실력차’를 내세운 김세영의 플레이에는 낭패감이 없었다. 상대가 엄청난 장타를 자랑하는 미국의 렉시 톰슨이었는데도 말이다.
김세영은 16번홀 보기로 22언더파가 됐다. 그런데 한 조로 경기를 펼치던 렉시 톰슨도 이 홀에서 보기를 범했다. 톰슨의 스코어는 17언더파. 파5인 남은 두 홀에서 톰슨이 모두 이글을 하고, 김세영이 두 홀 연속 타수를 잃어야만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
톰슨은 공격적으로 김세영을 몰아붙였다. 두 홀 모두 무시무시한 장타를 바탕으로 투온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17번홀에서는 이글을 잡기에는 퍼트 거리가 너무 길었고, 18번홀에 가서야 원하던 이글을 잡아냈다. 단숨에 3타를 줄여 봤지만 결과는 최종합계 20언더파.
김세영은 17번홀에서는 그린 주변에서 퍼터로 버디를 시도해 봤지만 실패했고, 18번홀에서는 3온에는 성공했지만 역시 버디 퍼트가 홀컵을 빗나갔다. 그래도 최종 스코어는 22언더파 262타였다.
김세영은 이날 16번홀 보기가 나오기 전까지 버디만 7개를 잡아 놓았다. 7~11번홀 5연속 버디는 렉시 톰슨에게 후반 뒤집기를 생각해 볼 틈을 주지 않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김세영의 LPGA 투어 개인 통산 9번째 우승은 큰 긴장감 없이 이뤄졌다. 올 시즌도 지난 5월의 메디힐 챔피언십 이후 2승째다.

출산 후 복귀한 미국의 스테이시 루이스가 16언더파로 단독 3위, 우리나라의 이정은이 14언더파로 단독 4위를 했다. 이정은은 5월의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한 뒤 바로 그 다음 주 대회인 숍라이트 LPGA 클래식에서 준우승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이후 3개 대회에서는 잠시 숨고르기를 했다. 직전 대회엔 손베리 크릭 LPGA 클래식에서는 컷 탈락하는 수모도 당했다.
하지만 이번 마라톤 클래식에서 다시 페이스를 끌어올려, 2주 연속 이어지는 메이저대회(에비앙 챔피언십,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호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