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찢남’이라는 말은 너무 좋죠.(웃음)”
배우 류준열이 3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같은 말로 작품에 대한 만족도를 드러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부터 천만배우 반열에 이름을 올린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 2017), N포 세대의 초상을 보여준 영화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 2018)와 올해 흥행한 영화 ‘돈’(감독 박누리)까지, 찰떡 같은 캐릭터 소화력으로 청춘의 군상을 그려온 류준열.

그가 이번엔 1920년 6월, 99년 전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 바쳤던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로서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류준열은 이날 “처음엔 국찢남(국사책 찢은 남자)이라는 말을 못 알아듣고 ‘내가 시대를 못 따라가는 건가?’ 싶었다. 알고 보니 좋은 단어였다. 제가 추구하는 게 처음부터 영화 그 자체에 있었던 인물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기에 국찢남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렇게 얘기를 해주셔서 좋았다”고 했다.
이어 “’봉오동 전투’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위대한 한 명의 영웅보다 역사에 담지 못한 사라져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본다. 근데 (저희에게)민초들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주셔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영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 제공배급 쇼박스, 제작 빅스톤픽쳐스・더블유픽처스・쇼박스)는 1920년 6월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 정규군을 유인해 최초의 승리를 이룬 독립군의 전투를 그린다. 독립군이 일본군을 봉오동으로 이끄는 여정이 긴장감을 유발하면서도 가슴을 울린다.

영화의 출연을 결정한 계기에 대해 “영화가 가진 이야기의 힘, 메시지가 기본적으로 제게 와 닿았다. 이외에도 원신연 감독님의 전작들을 너무 재미있게 봤다. 첫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전부 극장에서 봤다. 데뷔하기 전부터 즐겨 봤다”고 밝혔다.
이어 “원 감독님이 '사람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특히 이렇게 고생스러운 영화는 감독님의 리더십이 좋아야 배우들과 스태프가 고생하지 않고 촬영을 하기에, 배우로서 감독님께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출연을 결정한 이유로 원신연 감독을 꼽았다.
분대장 이장하 캐릭터를 맡은 그는 오랜 기간 사격 및 소총 훈련을 받았는데, 몸을 사리지 않는 그만의 액션 연기가 영화 속 전투의 리얼리티를 살렸다.
이에 류준열은 “촬영하는 6개월 동안 보호가 잘 되어 있어서 부상 없이 촬영을 마쳤다. 보호 장비라고 할 건 없었지만 (산에서 뛰느라)발목을 고정하는 게 있었다. 압박 붕대로 발목을 고정해서 어떨 때는 피가 안 통하기도 했다. 밥을 먹을 때는 풀어 놓았다가 촬영을 할 때 다시 했다. 팔목 보호대는 불편했지만 덕분에 안전하게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류준열은 냉철하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들 끓는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의 내면을 밀도 있게 표현하며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완성했다. ’이장하’는 국사책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용기 있는 군인들의 모습을 담아 새롭게 창조된 인물이다.
“(이장하가)첫 등장할 때부터 마음에 들었다. 감독님께서도 가장 공들인 장면이다. 그런 등장을 마다할 배우가 누가 있겠나.(웃음) 시나리오에서 장하의 눈빛을 수식하는 부분이 있었다. 영화에서 보신 그 눈빛이었다.(웃음) 초롱초롱하게라고 써 있진 않았는데, 결의에 차 있고 군인다운 맑은 눈이라고 써 있었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저는 총을 쏘는 자세나 앵글보다 눈빛에서 독립군의 모습을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애를 많이 썼다. 감독님도 ('이장하의 첫 등장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하셨다."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들은 봉오동의 험준한 지형을 무기 삼아 군사력이 우세한 일본군에 맞선다. 오로지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필사의 유인작전을 펼친 건데 총탄이 빗발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황에서 그들을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하기 위해 질주하는 사투는 99년 전 긴장감 넘쳤던 전투의 순간을 고스란히 담았다.
류준열은 “청산리 대첩은 국사책에서 자세히 배워서 잘 알고 있지만 봉오동 전투는 교과서에 몇 줄 나오지 않는다. 기억하기론 책에 몇 줄 없었다. 그래서 촬영을 하면서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책에선 아쉽게도 몇 줄 설명으로 끝나지만 그렇게 끝나기엔 아쉬울 정도로 큰 전투다.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듯 독립신문 등 자료를 모았음에도 적어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보시면서 크게 느끼시는 부분이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류준열은 “저는 달리기도 자신이 있었다. 달리는 거 빼면 시체일 정도로, 달리는 부분이 많았지만 어렵진 않았다. 다만 산이다 보니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유해진 선배님과 달릴 때는 티가 많이 나는데, 선배님은 산을 너무 잘 타신다”며 “영화의 모든 스태프를 통틀어 유해진 선배님이 가장 잘 뛰신다. 평생 산에서 단련하신 분 같다. 정말 산신령 같은 분이다.(웃음) 30분~40분 걸리는 곳도 가장 먼저 도착해 계셨다. 후배들이 보통 선배님들보다 먼저 준비하고 기다리기 마련인데, 제가 더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뒤쳐지겠다 싶었다. 정말 어마어마하신 분이다.(웃음)”고 유해진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이 영화는 출신 지역, 계층, 성별 등 모든 게 다르지만 조국을 위해 하나된 사람들, 목숨보다 독립이라는 대의가 우선이었던 사람들이 치열한 사투 끝에 쟁취한 승리가 깊은 울림을 안긴다.
“사실 이번 영화에서 어려운 게 많았다. ‘독전’ 속 락 캐릭터와 비슷한 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연구할수록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이장하는 목표가 너무나도 분명한, 앞만 보고 달리는 인물이다. 연기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배웠던 지점이 많았다.”/ watch@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