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빼앗긴 설움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 이 말이야’라는 대사에서 깊은 울림을 느꼈다.”
영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 제공배급 쇼박스, 제작 빅스톤픽쳐스・더블유픽처스・쇼박스)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배우 유해진의 말이다. 이 영화는 1920년 6월,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 정규군을 유인해 최초의 승리를 이룬 독립군의 전투를 그린다.
유해진은 독립군 황해철을 연기했다. ‘봉오동 전투’에서 황해철은 평소에는 장난기가 많은 사람 좋은 인물이나 전투가 시작되면 항일대도로 일본군의 목을 거침없이 베는 비상한 솜씨를 지녔다. 동생들의 목숨은 끔찍이 아끼지만 정작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스럽게 일본군에 맞선다.

유해진은 3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나리오 자체가 묵직하면서도 통쾌함이 있었다. 저는 그런 것을 (연기적으로)표현하고 (작품을 통해)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완성본을 보니 그런 통쾌함이 느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 소감을 전했다.
이어 그는 “원신연 감독님이 말하길 (봉오동 전투는)감추고 싶은 역사가 아니다. 승리의 역사라고 하셨다. 저희 영화를 보면 그런 게 잘 그려진 거 같아서 좋다”며 “사실 역사책에는 짤막하게 소개된 부분이지 않나. 굉장히 아쉽다. 승리의 역사라는 결과론도 중요하지만 저는 저희 영화가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잘 그렸다는 게 다행이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유해진은 ‘봉오동 전투’의 만듦새에 대해 “원신연 감독님이 전하고 싶었던 내용, 스태프와 배우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았다. 저희들끼리는 시사회에서 좋게 본 거 같다. (보통 시사회에서 작품을 보고)생각보다 안 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있는데, 저에 대해서는, 이번 영화는 전체적으로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인정했다.
“영화가 현재 상황(반일감정)의 힘을 받아 흥행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없다. (기획을 시작하던)5년 전부터 지금의 정치 상황을 예상하고 기획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저희 영화 자체의 힘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저희 영화가 독립군을 생각하자는 마음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시면 (선조들이 피 흘려 지킨)우리나라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느끼실 거 같다.”

유해진은 캐릭터를 표현하는 연기적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에 비해 비교적 다양한 배역을 무리 없이 소화한다. 구수한 입담과 재치, 순발력을 바탕으로, 극 전체를 유쾌한 에너지로 이끈다. 조연배우에서 주연배우로 우뚝 서게 된 것은 그의 이 같은 능력이 입증됐기 때문. 워낙 기본기가 탄탄하다 보니 그 어떤 캐릭터도 찰떡 같이 소화한다.
유해진은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책임감이 들어서 인 거 같다. 영화가 상업적인 부분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물론 ‘봉오동 전투’가 비상업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배우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작품의 순위를 정할 순 없지만 끌리는 시나리오가 분명히 있었다”라고 출연을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어떤 작품이든 끌리는 마음이 없으면 못 한다. 배우는 현장에서 작은 움직임이라도 캐릭터적으로 명분이 있어야 연기한다”며 “작품도 마찬가지로 배우 본인에게 동력을 주는 부분이 있어야 자신이 출연할 작품을 선택하는 거다. 무엇보다 예전부터 ‘원신연 감독님과 작품 하나 해야지’ 싶었다”라고 출연을 결정한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유해진은 2016년 개봉한 영화 ‘럭키’(감독 이계벽, 2016)가 700여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이듬해 선보인 영화 ‘공조’(감독 김성훈, 2017)가 약 800만, 같은 해 여름 개봉한 ‘택시운전사’(감독 장훈)가 1218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주연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이 같은 결과는 배우로서 그가 노력해온 과정이 빛을 발한 것이다. 복권이 당첨되듯 운 좋게 이룬 성과는 분명 아니다. 1997년 영화 ‘블랙잭’으로 데뷔한 유해진.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까지 어떻게 무명 시절을 살아냈을까. 얼마나 치열했을까.
유해진은 “사실 현장에서도 그렇고 제가 예민한 부분이 있다. 비교적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은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순간 기분 좋자고 큰 것을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예민할 수밖에 없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삼십 대 후반부터 특히 그랬는데, 촬영 전날 한숨도 못 자고 찍을 것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하고 고민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현장에 있는 시간도 내 인생의 하루인데 너무 예민하게 살지 말자고 느꼈다”고 밝혔다. 연기에 임하는 유해진의 자세 또한 황해철이 휘두른 칼 처럼 굉장히 무겁다. / watch@osen.co.kr
[사진] 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