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단순화’ 서준원이 얻었을 1승 이상의 가치
OSEN 조형래 기자
발행 2019.08.09 06: 03

“요즘 생각이 많아서 죽겠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신인 서준원은 최근 뜻대로 풀리지 않는 자신의 투구에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는 “요즘 생각이 많아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 생각들을 해결하고 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항상 자신감과 패기가 넘쳤던 서준원이었지만 평소와는 달랐다. 프로의 벽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는 듯 했다. 
신인 신분이지만 서준원은 당당하게 선발 로테이션에 자리를 잡고 시즌을 소화하고 있다. 다만, 6월 말부터 들쑥날쑥한 투구가 그의 마음 한 켠에 남아 있었다. 기복이 심했다. 선발로 고정되고 나서 치른 3경기에서 2승 평균자책점 0.50(18이닝 1자책점)을 기록했지만 지난달 30일 삼성전까지 4경기에서는 기복을 보이면서 3패 평균자책점 9.00(18이닝 18자책점)에 머물렀다. 서준원 나름대로 고민이 심화될 수 있던 시기였다.

9일 오후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2019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의 경기가 열렸다. 4회초 NC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롯데 선발 서준원이 더그아웃으로 향하며 기뻐하고 있다. /dreamer@osen.co.kr

하지만 서준원은 결국 자신이 답을 찾았다. 지난 8일 대구 삼성전 선발 등판해 6이닝 3피안타 3볼넷 2사구 4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시즌 3승째를 수확했다. 지난 6월 7일 KT전 이후 3번째 퀄리티 스타트까지 기록했다.
경기 후 서준원은 한 가지 숙제를 갖고 마운드에 올랐음을 전했다. 그는 “감독님께서 경기 전 속구 위주의 승부를 주문하며 숙제를 내주셨다. 2스트라이크 이전까지는 속구를 던지라는 게 내용이었는데 그게 잘 통했다”고 언급했다.
어쩌면 공필성 감독대행은 그동안 서준원의 투구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 보이는 모습을 파악했을 수 있다. 특히 서준원은 프로에 진출한 뒤 속구 위주의 투구보다는 커브와 슬라이더 등 변화구 위주로 상대를 꼬드기는 피칭에 좀 더 신경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패기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대신 기교로 프로의 선배들과 맞붙어보려고 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의 선배들이 ‘새내기’의 기교에 속아넘어갈 리가 없었다.
하지만 공필성 대행은 명확한 지시를 내렸다. 서준원의 생각을 단순화시켰고 변화구 대신 속구 위주의 피칭으로 상대를 압박해보라는 지시 사항으로 자신의 진가를 확인하게끔 만들었다. 이날 서준원은 던진 96개의 공 가운데 속구는 57개였다. 비율상 절반이 넘었다. 대신 주로 던지던 커브가 5개, 슬라이더는 1개 뿐이었다. 두 구종의 자리를 39개의 체인지업으로 채웠다. 
서준원은 이어 “슬라이더와 커브가 말을 안 들어 경기 초반 생각이 많았는데 아예 두 구종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고 체인지업과 속구로만 승부를 했다. 체인지업이 결정구로서 제 역할을 잘 해줬다”고 경기를 풀어나간 방향을 언급했다. 공필성 감독의 정확한 지시 사항,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서준원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어렵게 생각하고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경기가 술술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서준원이 이 경기를 통해 깨달았을 것이다. 
지도자들이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는 방법은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스스로 부딪히면서 깨닫게끔 하는 방법, 그리고 또 하나는 정확하고 세부적인 지시 사항을 전달해 지도하는 방법이 있다. 지도자들은 주로 전자의 방법을 택한다. ‘프로’의 무대에서 ‘강하게’ 단련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자서 고민을 하는 선수들에게는 때로는 정확한 지시가 성장의 발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서준원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생각이 많지 않아도, 다양하지 않고 단순하더라도 충분히 수준급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공필성 대행의 단순한 지시사항이 서준원에게는 1승 이상의 가치와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다. 과연 서준원에게 2019년 8월 8일은 특별한 변곡점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jhra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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