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감독의 복귀작 ‘유열의 음악앨범’은 11년 동안 이어진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감성 멜로 영화다. 한 남자가 변치않는 마음으로 오랜시간 한 여자를 잊지 못하고 좋아한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현실에서 불가한 일이지만, 영화는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첫사랑의 기억을 불러 모으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유열의 음악앨범’(감독 정지우, 제공배급 CGV아트하우스, 제작 무비락・정지우필름・필름봉옥)은 현재도 ‘이현우의 음악앨범’이라는 이름으로 방송 중이며, 지난 1994년 10월 1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FM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을 영화의 주요 매개체로 차용했다.
주인공 미수(김고은 분)와 현우(정해인 분)가 ‘유열의 음악앨범’이 시작하는 시간에 기적처럼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의도치않은 사건으로 인해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면서 상처입지만 서로에 대해 한층 더 애틋해질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표현했다.


정지우 감독은 최근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요즘에 멜로 영화를 한다는 게 어려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아 보였다”라며 “이 프로젝트가 성사될 수 있는지 걱정했지만 제딴에는 새로운 멜로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유열의 음악앨범’을 연출한 이유를 밝혔다.
이 영화는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의 대본을 썼던 이숙연 작가가 각본을 맡았으며, 정지우 감독이 각색 및 연출했다.
정지우 감독은 “연애라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가령 한 커플이 있다면 그 중 한 명이 바람을 피운다든지, 친구들에게 연인에 대한 단점을 털어놓으며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연애는 본인의 기질적인 습관과 성격이 장애물을 만든다는 가설이 있다. 그건 우정이든, 사랑이든 여러 가지 관계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렇게 풀어내다 보니 지극히 현실적인 멜로가 나왔다”고 연출 과정을 설명했다.

68년생인 정지우 감독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즐겨 듣던 세대지만, ‘유열의 음악앨범’을 주요 소재 및 제목으로 사용한 이유는 있었다.
“사실 두 가지 성격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다. (라디오가)아침 9시에 방송한다는 게 굉장히 애매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출근길도 아니고. 청취자들이 일하면서 듣는 10시나 11시, 이 시간대에 방송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쓰는게 좋긴 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제목으로 가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물론 초반엔 (제작진 중)한 사람도 영화의 제목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해서 걱정이 되긴 했다. 대안을 찾으려는 아이디어를 모았지만, 이미 (유열의 음악앨범에)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결국 어쨌든 소개를 잘 해서 관객들의 귀에 익게 만들고 싶었다.”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2012)로 데뷔한 배우 김고은이 스무 살 미수 역을 맡아 현실적인 연애기를 완성했다. ‘은교’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출연이 쉽사리 성사됐다는 설명이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를 통해 높은 인기를 얻은 배우 정해인이 미수를 사랑하는 현우 역을 맡았다. 이 영화의 출연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방송되기 전에 결정됐다고. 정해인은 우울한 청소년기부터 취업을 앞둔 청년의 모습까지 현우의 변화를 제대로 보여줬다.
정 감독은 정해인의 캐스팅에 대해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의 스타성을)미리 알아본 것은 아니다. 이미 인기 궤도에 들어와 있었다. ‘밥누나’가 그 정도로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예상은 못했지만 기대작 드라마였기에 정해인이 (방송 후)크게 자리 잡을 거라고는 예상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고은과 정해인이 함께 모인 순간에, 리딩할 때, 같이 했던 스태프도 다 같은 마음이었다. 둘이 나란히 앉아만 있어도 보기가 좋았다”며 “예상치 못하게 정말 그림이 좋았다. 제가 연기 연출에서 갖고 있는 생각은 배우를 방해하지 않는 거다. 연기를 하면서 느낄 그들의 여러 가지 느낌을 막아서지 않는 게 감독으로서 중요한 거 같다”고 말했다.

‘달리기’와 ‘사랑’은 아무리 느려도 언젠간 결승점에 도달한다는 공통점을 지녔기 때문일까. ‘유열의 음악앨범’에는 유독 현우와 미수가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정지우 감독은 “ 콜드플레이가 ‘픽스 유’를 부를 때 무대에서 뛰는데 저는 그게 너무 좋았다. 보면서 기분이 좋았는데 이 음악을 영화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뛰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며 “정해인이 정말 전속력을 다해서 달렸다. 너무 빨라서 배우의 얼굴이 카메라에 제대로 안 담겼는데, 2인 1조로 촬영팀을 만들어서 구역을 나누어 달리도록 했다. 뛰는 장면은 찍기 힘들지만 보기엔 좋은 거 같다”고 전했다.
미수와 현우의 마음은 OST로 정확히 대변되는데 신승훈, 이소라, 루시드폴, 그리고 핑클까지 90년대 후반을 달군 가수들의 노래가 안성맞춤이다. “스토리에 가사를 붙이면 (영화적인 감동이) 한층 더 크게 작동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와 음악을 연결하고 싶어서 편집하면서부터 음악 작업을 시작했다”며 “음악을 바꾸면 편집까지 바꿨다. 가사가 잘 들린다는 전제로 위치를 놓는 작업을 했다”고 음악에 집중했던 제작 과정을 밝혔다.
정지우 감독이 그린 ‘유열의 음악앨범’ 속 시간의 흐름과 음악의 미학을 짚어보는 것도 관객들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안 바뀐다는 말을 믿게 되는 거 같다. 하지만 진짜 사랑이 쌓이면 아주 작게라도 기적처럼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watch@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