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감관저터부터 경교장까지 '선을 넘는 녀석들' 최희서 "기억하는 게 힘" [종합]
OSEN 전미용 기자
발행 2019.09.01 22: 29

서울 남산의 숨겨진 역사를 찾아나섰다.
9월 1일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는 최서희, 전현무, 김종민, 설민석이 남산의 아픈 역사를 찾아나서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설민석은 김종민에게 "통감부에 관해 아냐고 물었다.  이에 김종민이 술술 막힘없이 대답했고 유병재보다 낫다는 평을 받았다. 이에 설민석은 "대한민국 성장의 아이콘이다. 21세기 역사를 구할 예비 잠룡이다"라며 칭찬을 받았다. 이에 전현무는 김종민이 워낙 한국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본격적인 서울 다시 보기, 빛과 그림자 2탄로 주제로 남산 곳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설민석은 "남산하면 떠오르는 게 뭐냐"고 물었고, 최희서는 "돈까스"라고 대답했다.  이에 설민석은 "남산은 일본 제국주의에 코어, 중심이다. 여기서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며 흥분했다.
이들은 통감관저터에 모였고 설민석은 "나라가 망한 도장을 찍은 곳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관저, 국권 피탈 후, 총독관저로 아픈 역사의 장소"라고 말했다.
이어 경술국치 1주일 전, 대한민국 어전회의가 열렸고 이곳에서 이완용이 5년동안 작업한 강제병합을 주도하고 순종 역시  떠밀리듯 강제병합에 동의를 했다고 전했다. 이에 최희서는 그곳에서 온몸을 던져 강제병합을 반대했던 분이 계신다며 황태자비가 순정효왕후, 옥쇄를 치맛속에 숨겼는데 남편과 아버지가 빼앗다며 이야기를 했다. 
이에 설민석은 "이완용이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까 봐 미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일주일 뒤 8월 29일 공식 발표를 하게 된 거"라고 말했다.  전현무는  "선녀들 아니었으면 이곳에 와보지 못했을 거다. 우린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후  최희서는 자신이 투어를 준비했다면서 서울 투어 버스에 올라탔다. 전현무, 김종민, 설민석은 "여기서 보니까 또 다르다"며 감탄했다. 최서희는 "경성시대에도 16인승 버스 투어가 있었다. 조선싱궁, 경성신사, 창경궁, 조선총동부부 코스다. 일제의 우월함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최서희는 "1930년대는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지 20년이 지난 상태, 젊은 사람들은  태어나보니 이미 식민지.. 그들에게는 일제 문화를 그냥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 당시 선망의 직업이 데빠또걸이었다. 제복 입은 모습을 멋있게 봤을 거다"라고 말했다. 
김종민은 "한국은행에 이토 히로부미 글씨가 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은 잊지 않게 박물관에 두면 어떻겠냐"고 말했고   최서희는 "그 당시 굉장히 좋은 문학가들이 많았다.  그들 중 모더니스트 박태원 작가의 외손주가 봉준호다"라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어 구 미츠코시 백화점을 본 뒤 구 혼마치, 현 명동에 도착했다. 최서희는 "일본이 그 당시 자신의 중심지로 만들려고 했었던 곳이다. 지금처럼 그 당시도 많이 붐볐던 곳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역사의 현장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설민석은 대형병원 앞에 서서  "이곳이 대한민국의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 경교장이라고 써있는 곳에서 설민석의 설명을 들었다. 설민석은 "광복이 되고 한 달만에 미국이 들어왔다. 미국은 어떤 정부도 인정하지 않았다. 김구 선생은 임시 정부 자격으로 와야만 했는데..쉽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인 자격으로 고국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때 김구 선생은  "내가 우리나라의 단합을 위해 물구덩이든 불구덩이든 들어가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곳이 김구 선생이 머문 장소가 이곳이다. 이어 이곳에서 총격 받아 돌아가셨다"라고 말했다. 지하에는 김구 선생님의 얼굴과 그 당신 입었던 옷들이 전시돼 있다. 설민석은 "최초로 국민장으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이었다"라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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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선을 넘는 녀석들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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