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사의 선을 넘었다.
지난 9월 1일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는 설민석, 전현무, 최희서, 김종민이 남산을 찾아가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한 발 더 다가서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선녀들은 사진 한장을 가지고 장소로 모였다. 이들이 모인 곳은 남산. 설민석은 김종민에게 "통감부에 관해 알고 있냐"라고 물었고 이에 김종민은 "경술국치 때 총독부로 바뀌지 않았냐"라고 말했다. 이어 설민석은 경술년의 정확한 연도를 물었고 김종민은 막힘없이 "1910년 8월 29일"이라고 대답했다,

김종민의 모습에 전현무는 "병재보다 나은데"라고 감탄했다. 이에 설민석은 "김종민 씨는 선녀들의 성장의 아이콘이다. 예비잠룡이다"라며 흐뭇해했다.
이후 선녀들은 남산에 있는 숨겨진 장소 통감관저터를 찾았다. 설민석은 "나라가 망한 도장을 찍은 곳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관저, 국권 피탈 후, 총독관저로 아픈 역사의 장소"라고 말했다. 이어 경술국치 1주일 전, 대한민국 어전회의가 열렸고 이곳에서 이완용이 5년동안 작업한 강제병합을 주도하고 순종 역시 떠밀리듯 강제병합에 동의를 했다고 전했다.
이에 최희서는 그곳에서 온몸을 던져 강제병합을 반대했던 분이 계신다, 황태자비인 순정효왕후가 옥쇄를 치맛속에 숨겼는데 남편과 아버지가 빼앗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에 설민석은 "이완용이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까 봐 미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일주일 뒤 8월 29일 공식 발표를 하게 된 거"라고 말했다. 전현무는 "선녀들 아니었으면 이곳에 와보지 못했을 거다. 우린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통감관터저를 지나 선녀들은 남산의 '조선 신궁'을 찾았다. 최희서는 신궁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했다. 최희서는 "일본 전통 신앙의 신을 모시는 곳이 신사인데 신궁은 그 중에서도 특별한 곳"이라고도 전했다.
최희서는 조선 신궁에 대해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모시는 신의 신체 일부를 조선에 가져다 놓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설민석은 "당시 일제는 조선총독부로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고 조선신궁으로 정신적인 힘을 행사하려했다"고 했다고 말했고 최희서는 "당시 아이들에게는 황국신민 서사를 외우게 했다"고 전했다.
이어서 선녀들은 독립운동가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을 현대식으로 만들어 파는 특별한 음식점을 찾아 식사를 했다. 설미석은 이곳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시영 6형제에 대해 이야기를 전했다. 설민석은 명문가이자 부자였던 6명의 형제가 나라가 빼앗겼다는 사실에 분노해 땅을 팔아 독립운동가를 돕는데 앞장 섰다고 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 다섯째인 이시영 선생 혼자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왔다며 가슴 아픈 역사를 설명했고 듣고 있던 최희서는 눈물을 흘렸고 김종민, 전현무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 최희서는 자신이 투어를 준비했다면서 서울 투어 버스에 올라탔다. 전현무, 김종민, 설민석은 "여기서 보니까 또 다르다"며 감탄했다. 최희서는 "경성시대에도 16인승 버스 투어가 있었다. 조선싱궁, 경성신사, 창경궁, 조선총동부부 코스다. 일제의 우월함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최희서는 "1930년대는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지 20년이 지난 상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태어나보니 이미 식민지.. 젊은 그들은 일제 문화를 그냥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 당시 선망의 직업이 데빠또걸이었다. 제복 입은 모습을 멋있게 봤을 거다"라고 말했고 전현무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다"라고 알아맞췄다.
이어 구) 미츠코시 백화점을 본 뒤 구) 혼마치, 현) 명동에 도착했다. 최희서는 "일본이 그 당시 자신의 중심지로 만들려고 했었던 곳이다. 지금처럼 그 당시도 많이 붐볐던 곳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역사의 현장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설민석은 대형병원 앞에 서서 "이곳이 대한민국의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 경교장이라고 써있는 곳에서 설민석의 설명을 들었다. 설민석은 "광복이 되고 한 달만에 미국이 들어왔다. 미국은 어떤 정부도 인정하지 않았다. 김구 선생은 임시 정부 자격으로 와야만 했는데..쉽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인 자격으로 고국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때 김구 선생은 "내가 우리나라의 단합을 위해 물구덩이든 불구덩이든 들어가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곳이 김구 선생이 머문 장소가 이곳이다. 이어 이곳에서 총격 받아 돌아가셨다"라고 말했다. 지하에는 김구 선생님의 얼굴과 그 당신 입었던 옷들이 전시돼 있었다. 설민석은 "최초로 국민장으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이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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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선을 넘는 녀석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