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구X혜리 '판소리 복서', 흔해빠진 복싱 영화가 아냐[Oh!쎈 리뷰]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19.10.01 09: 43

 길거리를 떠 도는 강아지를 사랑하는 병구(엄태구 분)는 무뚝뚝한 상남자 스타일의 복서는 아니다. 어른보다 오히려 ‘초딩'들과 말이 잘 통할 법한, 어찌 보면 모자란 구석이 넘치는 바보 같은 남자다.(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챔피언 타이틀을 노리며 프로복싱 선수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뜻하지 않은 슬럼프를 겪고 하나의 사건에 연루돼 모든 것을 바친 사각의 링을 떠났다. 이제는 별다른 직업이 없는 그는 그냥 동네 만만한 형이다.
체육관을 운영하는 박관장(김희원 분) 밑에서 경기출전을 위한 재기를 노리지만, 복싱을 다시 하고 싶다고 해서 쉽사리 도전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게 됐다. 과거에 불 타올랐던 열정과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외부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영화 스틸사진

영화 스틸사진
하릴없이 시간을 낭비하던 병구에 천사 같은 민지(이혜리 분)가 찾아오면서 상황은 점차 개선되기 시작한다. 그녀 역시 ‘아프니까 청춘’인데, 자신이 갈 길도 헤매고 있으면서 오지랖 넘치게 병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듣도 보도 못한 ‘판소리 복싱’을 시작한다. 미완의 ‘판소리 복싱’을 완성시키기 위해.
민지는 초등학교 때 잠깐 북치고 장구쳤던 실력을 자랑하며 병구의 전담 고수(鼓手)가 되어줄 것을 약속한다. 두 사람은 틈만 나면 “죽기 전에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한 번 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거 해야죠”를 외친다. 자기계발서 같은 이 대사가 스크린을 묵직하게 채우며 열정 지수를 높인다.
생소한 ‘판소리 복싱’은 각본 및 연출을 맡은 정혁기 감독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다. 대학시절, 배우 조현철과 함께 교내에서 장구를 치는 사람들을 목격했고 ‘복싱과 결합해보면 어떨까?’하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해 단편 ‘뎀프시롤:참회록’(감독 정혁기・조현철, 2014)을 만들었다. 조현철은 당시 복싱을 배우고 있었다고. 
영화 스틸사진
10월 9일 개봉하는 ‘판소리 복서’(제공배급 CGV아트하우스, 제작 폴룩스(주)바른손)는 이 단편작에 다양한 인물들과 소재를 넣어 플롯을 발전시킨 프로젝트다.
상업영화에서 주로 강렬한 캐릭터를 맡았던 엄태구가 카리스마를 잠시 내려놓고 가벼움과 무거움을 적절하게 오가며 열연했다. 밝고 에너지 넘치는 혜리는 자신의 캐릭터에 잘 맞는 옷을 갖춰 입었다. 두 사람의 귀여운 로맨스는 덤. 복싱 선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권투선수 몸매로 변신한 엄태구의 비주얼이 눈길을 끈다.
김희원, 최덕문, 최준영 등 배우들이 빈 공간을 채우며 극을 이끌어나간다. 본편이 메인 예고편, 티저 예고편보다 재미있다. 러닝타임 114분./ watc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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