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지미가 1970년대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제작한 이유를 자세히 공개했다.
4일 오후 부산 남포동 비프광장 야외무대에서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특별프로그램 '김지미를 아시나요'가 진행됐다. 영화계 레전드 배우 김지미와 게스트로 안성기가 등장했다.
이번 특별프로그램은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해 한국영화사의 전설적인 인물인 '영화인 김지미', '여배우 김지미', '인간 김지미'란 3가지 주제로, 4일부터 6일까지 토크쇼가 마련될 예정이다. 그의 출연작 '티켓'(1986), '토지'(1974), '율화'(1979), '춘희'(1967), '장희빈'(1961), '비구니'(1984) 등 6편의 영화도 상영된다.

17살에 연기를 시작해 1973년 임권택 감독의 '잡초'를 직접 제작한 김지미는 "1957년, 17살 먹은 소녀가 세상 물정도 모르고 영화계에 픽업돼 일했다. 그러다 보니 세상도 알고 나이도 먹었다. 영화가 사회에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도 느끼게 됐다. 내가 여배우로서 연기만 하지 않고, 중간에 제작과 영화인 협회 이사장도 했다. 하지만 제작을 하게 된 동기는 여러분들도 아는 것처럼, 그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영화법도 같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럴 땐 이런 영화와 소재는 안 되고, 사회고발 영화도 못 만들었다. 그러면 편협적인 영화로 흘러가게 됐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은 할 수 있는 영화가 사라졌다. 그리고 여성을 중심으로 유흥가에 있는 여성들을 모델로 해서 찍는 영화만 통했다. 사회고발성 영화는 검열이 안 나왔다. 그럼 요즘 말로 직장을 잃게 됐다. 배우는 영화가 없으면 일을 못하게 된다. 배우로서 출연을 못하니 '내가 제작이라도 해야겠다'고 느꼈다"며 제작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지미필름을 설립해 영화를 제작한 김지미는 "영화사를 만들어서 제작을 했는데, 그땐 한국 영화가 극장에서 얼마동안 상영 해야 하고, 외국 영화는 얼마만큼 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인들이 많이 좌절했다. 주변에서 나보고 한국 영화계를 위해 일해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영화인 협회 이사장 직을 맡았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한 것은 아니다. 이사장 직은 전체 영화인을 대변해 얘기를 한 것 뿐"이라고 했다.
그는 "나도 많은 영화인들의 덕을 봤다. 촬영, 조명, 진행, 시나리오, 감독 등의 협조가 없었다면 김지미는 탄생하지 않았다. 그 분들의 권익을 옹호해주기 위해서, 대변하기 위해서 내가 좀 더 앞장 섰다. 뒤에서 머뭇거리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여배우로서는 과분하게 영화인 협회 이사장, 제작도 해봤다. 무엇보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지켜주셔서 오늘날의 김지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소를 보였다.
한편,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김지미는 약 700편의 작품에 출연했고, 2014년 제15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공로상, 2016년 제7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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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