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전설 김지미가 후배들을 위해 따뜻한 조언을 남겼다.
4일 오후 부산 남포동 비프광장 야외무대에서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특별프로그램 '김지미를 아시나요'가 진행됐다. 영화계 레전드 배우 김지미와 게스트로 안성기가 등장했다.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김지미는 약 700편의 작품에 출연했고, 2014년 제15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공로상, 2016년 제7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이번 특별프로그램은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해 한국영화사의 전설적인 인물인 '영화인 김지미', '여배우 김지미', '인간 김지미'란 3가지 주제로, 4일부터 6일까지 토크쇼가 마련될 예정이다. 그의 출연작 '티켓'(1986), '토지'(1974), '율화'(1979), '춘희'(1967), '장희빈'(1961), '비구니'(1984) 등 6편의 영화도 상영된다.
김지미는 "그토록 사랑해주셔서 이 자리에 나서게 됐다"며 "한국영화 발전에 부산 시민들의 열정이 정말 대단했다. 조금 속되게 얘기하자면, 부산 시민들의 열정이 극성스럽다할 정도였다. 영화제가 이 나이가 먹도록 절대적인 사랑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국제영화제가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모두 여러분들의 힘이다"며 큰 사랑을 고마워했다.
그는 "17살에 배우가 돼 현재까지 여러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앞으로도 영화계 후배들을 많이 지원해주시면 좋겠다. 한국 영화를 많이 봐주시면 좋겠다. 그래야 발전한다"고 했다.

안성기는 김지미가 '황혼열차'로 데뷔할 당시, 함께 출연하며 데뷔했다. 김지미는 "내가 17살이었는데, 안성기 씨가 5살이었다. 그때 난 보육원의 보모 캐릭터였고, 안성기 씨는 고아 역할이었다. 나이로 보면 선후배로 보이지만, 엄연히 동료 관계다. 난 사실 우연치 않게 김기영 감독에게 뽑혔다. 그땐 한국 영화가 1년에 1~2편 만들어졌고, 그 이후 1년에 몇 십 편씩 만들어졌다. 한국 영화 100년사 라고 하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거기에서 63년을 영화계에 있었다. 같은 동료들이 많지만, 내가 대표로 앉아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김지미와 총 8편의 영화를 같이 촬영한 안성기는 "전부 어릴 때 찍은 영화라서 거의 기억은 없지만, 정말 예뻤다는 기억은 있다. 그리고 우리 선배님은 50년 대 전쟁이 끝나고 나서, 한국이 영화를 열심히 만들 때 정말 부흥기를 이끄셨다. 나중에는 영화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위해 영화인 협회 회장님을 하셨다. 스크린 쿼터 문제, 그외 현안이 있을 때 앞장 섰다. 영화계에 많은 도움을 주신 선배님이다"고 말했다.
이때 김지미는 "선배 아니다. 동료"라고 했고, 안성기는 "맞다. 동료다 동료"라며 웃었다.
1973년 임권택 감독의 '잡초'를 직접 제작한 김지미는 "1957년, 17살 먹은 소녀가 세상 물정도 모르고 영화계에 픽업돼 일했다. 그러다 보니 세상도 알고 나이도 먹었다. 영화가 사회에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도 느끼게 됐다. 내가 여배우로서 연기만 하지 않고, 중간에 제작과 영화인 협회 이사장도 했다. 하지만 제작을 하게 된 동기는 여러분들도 아는 것처럼, 그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영화법도 같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럴 땐 이런 영화와 소재는 안 되고, 사회고발 영화도 못 만들었다. 그러면 편협적인 영화로 흘러가게 됐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은 할 수 있는 영화가 사라졌다. 그리고 여성을 중심으로 유흥가에 있는 여성들을 모델로 해서 찍는 영화만 통했다. 사회고발성 영화는 검열이 안 나왔다. 그럼 요즘 말로 직장을 잃게 됐다. 배우는 영화가 없으면 일을 못하게 된다. 배우로서 출연을 못하니 '내가 제작이라도 해야겠다'고 느꼈다"며 제작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지미필름을 설립해 영화를 제작한 김지미는 "영화사를 만들어서 제작을 했는데, 그땐 한국 영화가 극장에서 얼마동안 상영 해야 하고, 외국 영화는 얼마만큼 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인들이 많이 좌절했다. 주변에서 나보고 한국 영화계를 위해 일해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영화인 협회 이사장 직을 맡았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한 것은 아니다. 이사장 직은 전체 영화인을 대변해 얘기를 한 것 뿐"이라고 했다.
그는 "나도 많은 영화인들의 덕을 봤다. 촬영, 조명, 진행, 시나리오, 감독 등의 협조가 없었다면 김지미는 탄생하지 않았다. 그 분들의 권익을 옹호해주기 위해서, 대변하기 위해서 내가 좀 더 앞장 섰다. 뒤에서 머뭇거리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여배우로서는 과분하게 영화인 협회 이사장, 제작도 해봤다. 무엇보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지켜주셔서 오늘날의 김지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지미 못지 않게 한국 영화계 산증인으로 통하는 안성기는 "5살에 데뷔해 대학교, 군대까지 마치고 10년간 공백이 있었다. 1978년도에 재데뷔해서 다시 영화를 시작했다. 그때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영화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당시 유신 치하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가 없었고 굉장히 힘들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로 여성들이 주인공이거나, 반공 영화, 순수예술 영화, 계몽적인 영화로 이뤄져 있었다. 선배들이 영화의 매력을 많이 잃었고, 일반 관객들도 한국 영화를 보는 매력을 잃었다. 그런 속상함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80년 대가 되고, 90년대 민주화를 이루면서 영화는 자유를 찾았고, 자본의 규모도 커졌다. 그런데 훨씬 좋아진 환경에선 선배님은 활동을 못하게 됐다. 좋은 시절은 후배들의 몫이 된 셈이다. 나도 후배들한테 얘기하지만, 선배님들이 영화를 해왔기 때문에 우리의 영화가 있는 것이다. 선배님이 중간에 계신 고마움은 늘 갖고 있다"며 감사한 마음을 내비쳤다.
"여성 영화인에게 한 마디 해달라"는 질문에 "난 남성, 여성 구분하지 않는다"며 "이런 저런 환경을 겪으면서 지금은 정말 풍요롭고 좋은 환경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린 고생했던 세대이고, 모든 것이 풍부하지 않고, 부족했던 시대에 살았던 세대이다. 한국 영화가 이렇게 되기까지 나와 안성기, 많은 영화인들이 있었는데, 이 분들의 노력과 끊임없는 후원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김지미는 "예전에도 여성 감독 등 영화인들이 있었다"며 "후배들은 여배우로서, 연기자로서, 모든 것을 끝내도록 해야 한다. 노력하라. 일류가 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 열심히 해서 좋은 배우라는 칭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 열심히 해서 뒤쳐지지 않는 연기자가 되려면 자존심, 자긍심을 갖고, 연기만 해야 한다. 다른 세상은 쳐다보지 마라. 많은 여배우들이 열심히 하길 바란다"며 응원했다.
이날 김지미는 후배들을 응원하면서, 동시에 그 옛날 자신에게 줬던 사랑을, 이제는 후배들에게 보내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먼발치에서 보고 있고, 또 격려하고 있다. 여배우들이 (남배우들보다) 활동을 못 한다고 하지만, 시간이 흘러 흐름이 바뀌면 분명 여성 영화가 쏟아져 나올 거다. 어떠한 역할을 맡더라도 열심히 해서 좋은 연기자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셨던 사랑을, 우리 후배들에게도 계속 물려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2일까지 해운대 영화의 전당과 남포동 등 부산 일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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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