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평양 원정, 뒷이야기도 놀라움의 연속
OSEN 이균재 기자
발행 2019.10.17 14: 01

29년 만의 평양 원정길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험난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7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대표팀은 지난 15일 오후 평양 김일성경기장서 열린 북한과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3차전서 0-0으로 비겼다. 한국(2승 1무)은 이날 무승부로 2위 북한(이상 승점 7)과 승점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서 7골 앞서 조 1위 자리를 유지했다.
벤투호는 깜깜이 중계와 무관중으로 펼쳐진 사상 초유의 경기에 진땀을 뺐다. 북한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남측 응원단과 취재진의 방북을 불허했다. TV 생중계도, 외신 기자도 허용하지 않았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태극전사들은 그라운드 내에서도 곤욕을 치렀다. 북한 선수들과 거친 몸싸움과 함께 신경전을 벌였다. 대표팀 선수들과 최영일 단장의 생생한 증언에 의하면, 북한 선수들은 팔꿈치와 손, 무릎을 쓴 건 기본이고 험한 욕설까지 했다. 황인범(밴쿠버)은 한 대 맞기까지 했다. 무사귀환한 것이 다행일 정도.
‘주장’ 손흥민(토트넘)은 "북한 선수들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 누가 봐도 거칠게 들어왔다. 이기지 못한 건 너무 아쉽지만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큰 수확일 정도로 거칠었다”며 "심한 욕설도 들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놨다.
김진수(전북)도 "북한 선수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때리려고 한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황)인범이는 한 대 맞았다. (북한 선수들이) 욕을 계속 했다”며 “승리하지 못해 아쉽지만 다치지 않고 잘 마무리를 하게 돼 정말 다행”이라고 무사귀환에 의미를 부여했다.
벤투 감독은 "상대가 워낙 거칠게 나와서 심판이 경기를 자주 중단했다. 심판이 선수들에게 얘기하는 게 자주 반복되면서 경기 흐름이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고 끊겼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영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전쟁 치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축구를 보면서 그렇게 고함 지르는 건 처음 본다. 북한 선수들의 지지 않으려는 눈빛이 살아 있더라. 우린 정상적으로 기술적인 축구를 하려고 했고 북한은 정신적인 축구를 하려고 해서 경기가 거칠어졌다. 선수들이 부상 없이 잘 끝내고 승점 1을 딴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무관중 경기의 뒷얘기도 전했다. 최 단장은 "경기 1시간 30분 전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면 5만 관중이 들어오겠구나' 계속 생각했는데 끝까지 문이 안 열려서 선수들도 벤투 감독도 많이 놀랐다. 북한 측에 무관중 경기의 이유에 대해 문의했지만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태극 전사들은 숙소에서도 통제를 받았다. 최 단장은 "인터넷 자체를 아예 하지 못했다. 협회 문 밖으로 못 나가게 했다. 외부인도 출입 금지였다. 호텔엔 거의 선수단만 있었다”고 고백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원정이었다”는 손흥민의 말처럼 기상천외한 평양 원정길이었다./dolyng@osen.co.kr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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