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성장형 배우는 아니고 매 작품 자신만의 한계를 깨고 나가는 위치인데 진짜 연기를 하고 있느냐”라고 본인만의 연기 철학을 묻는 기자의 물음에 “저도 성장하면 안 되나요?”라고 대답하는 배우 이병헌(50)이다.
“초특급 배우들이 모인 그 안에서도 이병헌의 연기적 존재감이 돋보였다”는 질문에도 “그랬나요?”라고 다소 부끄럽다는 얼굴로 겸손한 대답을 내놓으며 웃는다.
이병헌은 19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 ‘백두산’ 속)모든 배우가 마찬가지다. ‘(찍을 땐)내 분량이 저것보다 훨씬 많았는데 저거 말고 다 잘렸네?’ 싶을 거다. 다 같이 아쉬운 사람들이 많을 거 같다. 영화가 정말 잘 돼서 ‘내부자들’ 오리지널처럼 ‘백두산’ 오리지널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개봉한 영화 ‘백두산’(감독 이해준・김병서, 제작 덱스터 픽처스・퍼펙트스톰필름・CJ엔터테인먼트, 배급 CJ엔터테인먼트)에서 이병헌은 북한의 최정예 요원 리준평을 연기했다.
전역을 하루 앞둔 특전사 대위 조인창(하정우 분)이 남과 북의 생사가 걸린 백두산 폭발 저지 작전에 투입된다. 그는 팀원들을 이끌고 작전의 키를 쥔 북한 무력부 리준평을 만나는데, 두 사람은 티격태격 정도가 아니라 극한의 갈등으로 치달으며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다.
서로 다른 목적을 지녔지만 백두산 폭발 막기라는 공동의 운명을 지닌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며 미션 수행에 일심동체한다.

이날 이병헌은 “사실 하정우가 먼저 캐스팅이 됐는데 내가 전화를 걸었더니 ‘형이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점점 긍정적인 반응으로 마음이 갔다. 두 감독들을 만나고 김용화 감독까지 만나면서 하게 됐다”고 출연 과정을 전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를 떠올린 이병헌은 “너무 매끄러우니까 오히려 결핍이 안 느껴졌다. 뭔가 열려 있을 때나 결핍이 있을 때 오히려 매력이 느껴지는 게 있는데 이 영화는 건드릴 곳이 없어서 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매끄럽게 잘 빠졌다는 건 전형성이 있다는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통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데 ‘백두산’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는 전개라서 매끄러웠다는 거다. ‘과연 이 부분을 관객이 이해해줄까?’라는 질문이 몇 군데 들긴 했다”라고 자신이 캐릭터와 영화의 전반적인 부분을 이해했던 과정을 들려줬다.
이어 이병헌은 자신이 연기한 리준평 캐릭터에 대해 “이 캐릭터가 어떤 느낌이겠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냉철한 느낌이 오기도 했고. 웃긴 사람은 아니다. 제가 이 캐릭터를 뭐라고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들다.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로 만들어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석한 지점을 밝혔다.

그러면서 “배우가 작품에 참여하면서 (시나리오 및 촬영과정에)100% 설득 당하지 못해 걸리는 게 있는데 ‘백두산’을 촬영하면서 저는 과연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게 몇 개 있어서 걸렸다. 그 얘기를 감독님들에게도 했는데 모든 장면을 하나하나 다 설명하면서 갈 순 없는 거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해 안 가도 그냥 그렇겠구나, 싶으면서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병헌은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파 배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캐릭터를 만날 땐 한계에 부딪힌다고 했다.
“작품이 현실적인 얘기더라도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게 더 많다. 상상에 의존하면서 연기를 한다. 근데 운 좋게 내가 경험했던 게 있으면 빨리 하게 되고, 그 장면을 좀 더 자신있게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정우는 물론 업계 사람들이 제게 연기를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기분이 좋다. 업계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를 듣는 건 항상 기분이 좋다”고 말하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 속에 이병헌을 넘어설 후배가 존재할까. 어쩌면 그 벽은 오로지 이병헌 자신에 의해서만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남한산성’(2017) ‘싱글라이더’(2017) ‘마스터’(2016) ‘내부자들’(2015) 등 최근 몇 년 사이에도 그만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대작들이 터졌지 않았나. 올해 내놓는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드라마 및 영화 60여 편에 이르는 수많은 작품들을 거치며 이병헌은 필모그래피의 한 단계 한 단계마다 자신을 뛰어넘어왔다.
이에 이병헌은 “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저의 영화 팬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며 “예를 들면 저는 관객들이 나의 코믹한 모습, 슬퍼하는 모습, 액션 잘하는 멋있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뭔가 결핍된 느낌을 보고 싶어하시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일희일비와 다르게 어떤 날은 기분 좋게 집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날 내가 진심을 다해서 연기했을 때 기분이 좋다. 근데 흉내를 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기분이 안 좋다. 사실 배우들이 아주 예민하고 유연한 상태이기 때문에 (작품할 땐)내 기분을 챙겨야 한다. 다른 배우의 상태까지 챙기는 게 힘들다. 누군가와 감정이 틀어져서 심적으로 싸우게 되면 계속 그 상태로 일 해야 하니까 그건 더 큰 곤란과 힘든 상황에 직면한다. (순간 느끼는)지금의 감정을 눌러야 그 어떤 방해 없이 갈 수 있다. 순간의 감정에 잠깐 훅 하지 않는다.”/ watc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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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최재현 기자 hyun30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