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장영실, 그동안 수많은 연극과 TV 드라마, 영화를 통해 다뤄진 역사 속 인물들이다. '또 세종이랑 장영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뻔한 스토리를 예상할 수도 있지만, 최민식과 한석규, 그리고 허진호 감독이 완성한 영화 '천문'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결과물을 내놨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과 장영실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다. 세종과 장영실의 엄청난 신분 차이를 뛰어넘는 특별한 우정은 세종 24년에 일어난 '안여 사건'(임금이 타는 가마 안여(安與)가 부서지는 사건)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는다. 장영실은 '안여 사건' 이후 역사적 기록에서 사라지며 행방이 묘연해지는데, 이러한 실제 역사를 토대로 장영실이 의문만 남긴 채 사라진 이유에 대해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졌다.
최민식과 한석규를 한 스크린에 모은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2016) 이후 3년 만에 신작을 선보였다. 1997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로 데뷔한 허진호 감독은 '봄날은 간다'(2001), '외출'(2005), '행복'(2007), '호우시절'(2009)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멜로 거장'으로 자리 잡았고, '천문'은 '덕혜옹주'에 이어 두 번째 사극 연출작이다.




최민식은 극 중 조선의 하늘을 연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맡았고, 한석규는 조선의 하늘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을 연기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1999년 개봉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발점 '쉬리' 이후 20년 만에 재회해 호흡을 맞췄다. 성군 세종과 조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진한 우정을 진정성 있는 연기로 소화해 큰 울림을 선사한다.
'명량'(2014), '봉오동 전투'(2019)에서 이순신 장군, 홍범도 장군을 열연해 울림 있는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홀린 최민식은 이번에도 실존 인물인 장영실로 분해 열연했다. 하늘의 별을 사랑하고, 세종에게 충성을 다하는 장영실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다른 배우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최민식만의 장영실'을 완성해 몰입감을 높인다.
한석규는 2011년 방송된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 이어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또 한번 세종 역을 맡았다. 드라마에서 익히 알려진 인자한 모습의 세종이 아닌 훈민정음 반포와 집현전 학사 살인사건으로 고뇌하는 세종의 색다른 모습을 연기하면서 그해 연기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천문'에서는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세종을 그리면서 시사회 직후, "역시 한석규"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항상 백성을 먼저 걱정하고 배려하는 인자한 세종부터 후반부 빨간 곤룡포를 벗어 던진 채, 검은 곤룡포를 입고 자신을 향한 역모에 분노한 모습까지 극과 극의 연기를 선보인다. '천문' 속의 세종은 장영실보다 감정 변화의 폭이 큰 인물인데, 한석규는 미세한 감정 변화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냈다.


참고로, 세종과 장영실 캐릭터는 최민식, 한석규가 서로 의논해 정했다. 허진호 감독은 두 배우 모두 어떤 배역이든 잘 소화해 낼 것으로 생각해 그들의 의견에 맡기자고 판단했다. 평소에도 각별한 친분을 자랑하는 두 배우는 시나리오를 받은 지 하루 만에 각자의 캐릭터를 결정했다. 최민식과 한석규의 진한 우정이 영화 속에도 녹아들어 세종과 장영실의 모습이 더욱 실감 나게 표현됐다.
최민식과 한석규가 연기를 잘하는 건 '두말하면 입 아픈 당연한 소리'이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세종과 장영실의 디테일한 감정선은 브로맨스를 넘어 절절한 멜로의 분위기도 전달된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이 보기 불편하거나 낯설게 다가오진 않는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의 연기가 탁월해 다양한 감정들이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극의 후반부 세종과 장영실이 허름한 방에서 대면해 눈물을 흘리는 신이 나오는데, 허진호 감독도 예상하지 못한 두 배우의 엄청난 내공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자네 같은 벗이 있지 않은가"라는 명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러닝타임 132분, 12세 이상 관람가, 12월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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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포스터,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