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성범죄' 폴란스키 수상 바라보던 '피해자' 여배우..후폭풍 발칵(54회 세자르상)[종합]
OSEN 최이정 기자
발행 2020.03.01 17: 54

'프랑스의 오스카'라 불리는 권위있는 영화 시상식인 세자르영화상 시상식이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해외에서 수십년간 도피 행각을 벌인 로만 폴란스키에게 감독상을 수여해 후폭풍에 휩싸였다.
지난 달 28일(현지시간) 파리 시내 살 플레옐 극장에서 진행된 제45회 세자르영화상 시상식에서 로만 폴란스키는 신작 '장교와 스파이'(J’accuse, An Officer and a Spy)로 영화제의 노른자 상 중 하나인 감독상을 비롯해 각색상, 의상상을 수상, 3관왕에 올랐다. 
앞서 약 한 달 전, '장교와 스파이'는 후보 지명 소식만으로도 논란을 일으켰던 바. 이 작품은 이번 시상식에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 최다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그러자 다수의 성범죄 전력을 지닌 성범죄자를 옹호하는 것이라는 반발과 함께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번 세자르영화상 시상식을 보이콧하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한 여성단체는 SNS를 통해 "강간이 예술이라면 폴란스키에게 모든 세자르상을 줘버려라. 강간범이자 아동성범죄자에게 치하하는 것은 희생자들의 입을 닫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시상식이 열린 파리 시내 살 플레옐 극장 앞에서는 여성단체, 인권 활동가 등을 중심으로 로만 폴란스키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대는 폴란스키의 이름에 '강간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violer'를 합성해 '비올란스키(violanski)'라 부르며 각성을 촉구했다.
이러한 논란은 예견됐던 바.
앞서 세자르영화상을 주관하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알랭 테르지앙 회장은 “후보작 선정에 있어 윤리적 잣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라고 의견을 피력하며 "영화를 본 150만명의 프랑스 관객에게 물어봐라"라고 밝혀 거센 비난을 받았다. '장교와 스파이'가 비난 여론의 한 가운데서도 프랑스에서만 150만명이 관람하는 등 흥행에 성공한 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프랑스 영화인 200여명은 이에 프랑스 아카데미의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고, 이 같은 공개서한에 수많은 탄원이 이어지자 결국 알랭 테르지앙 회장을 비롯해 세자르상 운영진은 총사퇴를 선언했다.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는 프랑크 리에스터 문화부 장관까지 나서 "폴란스키가 상을 받는다면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공개적으로 밝혔다.
논란의 당사자인 로만 폴란스키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전날 발표한 성명에서 “여성 운동가들이 나를 공개적으로 공격하고 있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장교와 스파이'의 출연진과 제작진 역시 로만 폴란스키가 시상식에 앞서 부당하게 재단 당한다는 이유로 시상식 참여를 거부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모습은,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아델 에넬은 로만 폴란스키에게 감독상이 돌아가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퇴장한 장면이다. 
아델 에넬은 과거 미성년자일 때, 영화 감독 크리스토프 뤼지아로부터 지속적으로 성범죄를 당한 사실을 폭로했고 크리스토프 뤼지아는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시상식의 아이러니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감독상 후보에 오른 셀린 시아마 감독 역시 그와 함께 퇴장했으며, 다른 몇몇의 여배우들도 자리를 떠났다.
그런가하면 로만 폴란스키 작품이 이번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을 두고 “우리에겐 열 두개의 근심거리가 있다. (밖의 시위가)조용해지려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말해 쓴웃음을 자아낸 이번 시상식 사회자였던 코미디언 플로랑스 포스티는 시상식 직후 자신의 SNS에 "역겹다"란 글을 올리기도.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폴란스키에게 감독상을 수여한 시상식을 향한 분노 여론은 점점 더 거세지는 분위기다. 권위의 추락은 물론 일부에서는 이번 시상식이 로만 폴란스키를 이용해 노이즈 마케팅을 했다는 시선도 받고 있다.
한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지난 1977년 3월 로스앤젤레스에서 13세 소녀에게 술과 약물을 복용시켜 성관계 한 혐의로 기소돼 미국에서 유죄를 인정받고 42일간 구금됐으나 바게닝(유죄협상제도)의 일환으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그러나 이후 판사가 이를 파기하고 수십년 징역형을 선고할 것이라고 전해 들은 폴란스키는 선고 직전 파리로 도주했다. 이후 약 40여 년간 유럽 국가를 떠돌며 도피 행각을 벌였다. 미국은 폴란스키를 여러 차례 자국으로 소환해 기소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스위스에서도 또 다른 성폭행 혐의로 피소됐다가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는 등 최근까지도 그에 대한 성폭력 폭로와 고소 고발은 계속됐다.
한편 폴란스키 감독은 ‘로즈메리의 아기’, ‘차이나타운’, ‘테넌트’ 등의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을 당시에도 직접 상을 받지는 못했다.
'장교와 스파이'는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프랑스군의 유대계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된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재구성한 역사물이다.
/nyc@osen.co.kr
[사진] '로만 폴란스키: 어 필름 멤와' 스틸, '유령작가' 스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포스터, '장교의 스파이' 스틸,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