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칼럼기고] 미래는 바꿀 수 있어도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20.03.24 07: 02

당구는 최근 들어 가장 ‘핫’한 스포츠로 떠오르고 있다. 20년 기자 생활 기억에 당구가 이렇게 크게 주목을 받았던 적이 없다. 당구는 과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황득희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서 제도권 스포츠로 완전히 도약하기는 했지만, 프로나 올림픽 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스포츠 주류권에서 한참 뒤에 있어야 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가 점점 프로화·엘리트화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당구는 ‘서민 스포츠’라는 인식까지 굳어지면서 주류 스포츠 종목으로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그랬던 당구가, 최근 10년 안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했다. 이제는 TV를 켜면 어떤 프로 스포츠보다도 더 많이 볼 수 있는 종목이 당구다. MBC와 SBS 양대 스포츠 케이블채널에서는 당구 경기를 할 때마다 생중계를 하고, 평상시에는 당구 전문채널 빌리어즈TV를 비롯해 대여섯 군데의 채널에서 동시에 방송을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한, 과거 영화나 드라마, 뉴스에서 건달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나 볼 법했던 당구가 이제는 주로 보타이를 멘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대가 되었다.
당구 경기의 중계사는 지난 2000년대 초중반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몇몇 채널에서 당구 중계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방송이 바로 ‘아리랑TV’와 ‘SBS스포츠’다. 당시 사회적으로 당구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나쁘지 않은 시청률이 뒷받침되면서 고정적인 녹화 중계가 시리즈 형태로 나갈 수 있었다.

[사진]코줌 제공

물론, 방송은 많지 않았고 그만큼 가치도 적었다. 드물게 송출 케이블을 탔던 탓에 방송 스케줄을 확인하고 일부러 TV 앞에 앉아야 어렵게 볼 수 있었다. 일단 TV 앞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모바일로 TV를 볼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다른 가족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고, 행여나 기다리다가 잠이 들까 봐 알람을 따로 맞춰 놓는 등 당구 한 경기 보는 게 글자 그대로 ‘일’이나 다름없었다. 
불과 10여 년 전이었는데, 이때의 모습을 지금은 보기 어렵다. 당구 방송을 소비하는 형태에도 큰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현재는 집에서 종일 틀어놓는 채널이 당구 전문방송이고, 명절이나 저녁 식사 시간에 밥상머리 앞에 모인 온 가족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청할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이것은 당구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당구가 지금처럼 프로 스포츠로, 가족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고사성어에서 찾을 수 있다.
“백 번 말로 해도 당구를 모르는 사람은 이해를 못 한다. 전 세계에 이렇게 멋진 당구선수들이 있다는 걸 영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의 당구는 이 한 마디에서 출발했다. UMB 세계캐롬연맹의 방송마케팅 대행사인 ㈜코줌인터내셔널 오성규 대표이사가 10여 년 전 만난 필자에게 했던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당구계는 당구만 틀어주는 전문방송을 꿈도 꾸지 못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몇몇 방송사에서 녹화중계를 하는 시스템에서 어떻게 하면 길게 연명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뿐, 당구 전문방송을 시도할 수 있는 자본도 사람도 없었다. 그런 어려운 시기에 당구 전문방송을 만들겠다고 유일하게 나선 사람이 오성규 대표다.
3쿠션 종목을 UMB와 함께 촬영해 영상 기록을 남기던 프랑스의 ‘코줌(KOZOOM)’을 어느 날 갑자기 한국으로 들여와 중계권 사업으로 첫걸음을 뗀 오 대표는 불과 몇 년 만에 UMB의 중계권 가치를 10억원대로 만들었고, 전 세계에 ‘서바이벌 3쿠션’이라는 한국형 새 당구 종목을 보급하는 ‘당구 한류화’도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오 대표는 중계권, 용품 판매 수익과 같은 코줌의 사업이익 수십억원을 당구계에 재투자해 상금을 크게 올리는 등 프로화의 기반을 만들었고, ‘전 경기 생중계’라는 기적 같은 일을 현실로 이뤄냈다. 이것은 오 대표의 말처럼 백 번 말로 해도 모르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면서 하나하나 이루어진 결과다.
오성규 대표는 지금의 당구 환경을 구축하는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당구 전문방송의 주춧돌을 놓은 것은 물론이고, 당구 경기 중계권을 10억원 가치로 키워냈으며, 수십 년 동안 1000만 원도 안 됐던 3쿠션 세계대회 우승상금을 우리돈으로 약 6000만 원까지 대폭 올려 당구선수도 상금으로만 억대의 수익을 올리는 시대를 열었다. 실제로 서바이벌 마스터스에는 1년간 17억 원의 상금이 지급되어 세계 1위 딕 야스퍼스(네덜란드), 한국의 조재호(서울시청) 등 5명은 처음으로 상금으로만 1억 원 이상을 수령했다. 
[사진]코줌
과거 ‘승부사’ 최성원(부산체육회)을 탄생시키는 등 한국 당구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실력을 크게 인정을 받은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에 매년 한국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오 대표와 ㈜한밭이 연간 3만달러를 지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러한 사실은 당구계에 알려지지 않아서 필자도 잘 몰랐던 부분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선구자’ 김경률(1980~2015)은 과거에 필자와 함께 지방 스케줄을 다녀오던 중 청주에 내려달라고 하면서 “우리가 해주는 것도 없는데, 성규 형은 선수들을 대회에 내보낸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자기 돈도 매년 수천만원을 쓴다”라며 처음 이 사실을 공개했다. 
훗날 오 대표는 “한국 선수에게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자주 대결할 수 있도록 출전 기회가 많아야 하고, 또 그들이 흘린 땀을 인정받을 수 있는 큰 상금이 걸린 무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3쿠션 당구의 프로화는 이 과정을 거쳐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당구 경기를 영상으로 보여줘 가치를 높이고, 그 결과로 얻어진 수익이 선수들에게 상금으로 재분배되는 건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오성규 대표가 보여준 행적과 성과는 바로 이러한 결과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고, 실제로 그는 자신의 말을 빠짐없이 모두 지켰다.
안타깝게도, 현재 당구계에서 UMB, KBF(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 PBA(프로당구협회)가 벌이는 주도권 싸움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오 대표가 이룬 큰 업적이 폄훼되고 있다. 미래를 바꿀 수는 있어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누구도 당구 전문방송에 대해 시도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에 당구계에서는 유일하게 오 대표만 당구 전문방송을 시도했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등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당구대회 전 경기 생중계’, ‘중계권 10억원’, ‘연간 상금 1억원 수여’ 등의 큰일을 해냈다. 지금까지 오 대표가 이룬 성과를 ‘아니다’라고 부정할 수도 없다. 지난 10년 동안 필자를 비롯한 많은 당구인들이 당구계에서 듣고 보고 겪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매달 기사로 남겼던 언론의 기록이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당구의 발전에 대해 고민해 본 이들은 사람의 중요성을 너무도 잘 안다. 당구계처럼 자원이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는 사람이 곧 힘이다. 지금 당구계의 모습은 반성이 필요하다. 오 대표처럼 10년 동안 당구를 위해 진심을 다해 애쓴 사람까지 비난하고 당구계 밖으로 쳐내려고 한다면, 누가 더 당구 발전을 위해 노력을 할 수 있나. 그런 환경 속에서 당구는 결코 미래가 없다. 지난 10년간 이루어진 기적과 같은 일을 더는 기대할 수가 없다. 당구계가 거짓으로 왜곡되고 진실이 아닌 일에 호도되어 당구 발전이라는 중요한 시대적 목적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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