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에 가려진 영원한 2인자' 재조명 받는 피펜의 가치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20.04.26 10: 34

‘불스왕조 2인자’ 스카티 피펜(55)이 새삼 재조명을 받고 있다. 
ESPN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의 2부는 스카티 피펜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무명의 선수가 어떻게 NBA의 꿈을 이뤄 조던과 함께 왕조를 구축했는지 뒷이야기가 공개됐다. 
피펜은 고교시절만 해도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185cm에 포인트가드를 봤던 피펜에게 장학금 입학을 제시한 대학은 없었다. 피펜은 무명 센트럴 아칸소대학 농구부에 장비담당으로 겨우 입학했다. 농구부에 소속은 돼 있지만 장학금도 받지 못하는 학생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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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피펜이 “내 꿈은 NBA선수”라고 말했을 때 동료선수들이 다 비웃었다. 그랬던 피펜은 대학시절 키가 15cm 자라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4학년 시즌 피펜은 23.6점, 10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NBA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피펜은 198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8번으로 시애틀에 지명된 후 트레이드 돼 불스에 입단했다. 조던의 원맨팀으로 고전했던 불스는 피펜의 입단으로 천군만마를 얻었다. 
불스는 1991년부터 NBA 3연패를 달성한다. 조던이 야구에서 복귀한 뒤 불스는 1995-96시즌부터 두 번째 3연패를 이룬다. 1992년 미국농구대표팀 드림팀에 도미닉 윌킨스의 부상낙마로 대신 뽑힌 선수도 피펜이었다. 조던과 피펜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합작했다. 조던의 모든 영광의 순간에 피펜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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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댄스'에서는 피펜을 발굴한 제리 크라우스 단장과 피펜의 불화가 다뤄졌다. 피펜은 1991년 7년간 1800만 달러(약 221억 원)에 장기계약했다. 피펜은 장애인인 아버지와 큰 형 등 14명 대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져야 했다. 피펜은 "미래에 불안함을 느껴 헐값에 장기계약을 맺은 것이 실수였다”고 회상했다.  
계약말기에 피펜은 불스내 연봉 6위, NBA 연봉 전체 122위에 불과했다. 결국 피펜은 본인의 계약에 불만을 품고 일부러 발수술을 늦게 했다. 크라우스 단장은 노골적으로 “피펜을 트레이드하겠다”고 밝혀 둘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피펜은 201cm의 좋은 신장에 가드같은 스피드, 센터 못지 않은 골밑 수비력까지 갖춘 만능 포워드였다. 포인트가드가 약했던 불스가 특유의 ‘트라이앵글 오펜스’로 6번의 우승을 달성한 것은 조던뿐 아니라 피펜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조던도 “피펜 없이 우승은 불가능했다. 최고의 동료는 단연 피펜”이라 거들었다. 
하지만 피펜은 늘 조던의 그림자에 가려 능력과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조던이 야구로 외도했던 1993-94시즌 피펜이 에이스로 나섰지만 불스는 동부 준결승에서 뉴욕 닉스에 3승 4패로 져서 탈락했다. 필 잭슨 감독이 토니 쿠코치에게 마지막 슛을 맡겨 피펜이 의자를 집어던진 일화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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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들에게 피펜은 단순히 ‘조던의 조력자’ ‘2인자’라는 이미지로 각인됐다. 하지만 ‘더 라스트 댄스’가 상영되면서 피펜을 잘 몰랐던 현역선수들도 피펜을 다시 보고 있다. 트리스탄 탐슨은 “피펜이 더 존경을 받게 돼 기쁘다. 그는 야수였다”고 칭찬했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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