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때의 공연이라면 팬들이 스타의 등장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데, 이런 공연도 있다. 가수들, 뮤지컬 배우들이 더 설레는 공연 말이다. 코로나19가 빚은 만화경이다. 공연계의 블루칩 god 김태우도 “4개월만에 처음 서는 무대”라며 감격스러워 하는 게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요즘 공연계의 현실이다.
김태우를 감동시킨 무대는 현대자동차의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이 주관해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 ‘스테이지 엑스(STAGE X)’다. 작년에는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 야외 특설 공연장에서 스탠딩 페스티벌 형식으로 열려 1만명의 관객이 땀을 흠뻑 적신 바로 그 무대다.
지구촌이 코로나19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올해에는 작년과 같은 형식으로 열었다간 사회악으로 치부될 게 뻔하다. 궁여지책으로 ‘드라이브 인 콘서트’가 기획됐다.

사회적 거리를 실천하는 가운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코로나19로 지친 일상을 음악으로 치유하고, 가수들과 뮤지컬 배우들에겐 수 개월간 중단된 무대의 생기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다. 공연장 입구부터 생활방역은 빈틈없이 이뤄졌다. 마스크 착용은 기본이고, 자동차 창문을 내려 탑승자들의 체온을 일일이 체크했다. 문진표를 빠짐없이 작성해 제출해야 했고, 차 밖으로 나깔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묘한 긴장감 속에 23일부터 24일까지 고양 킨텍스 제2전시장 야외주차장에서 펼쳐진 ‘스테이지 X’는 실연자들과 관람객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겼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공연팀과 함께 무대에 오른 뮤지컬 배우 최정원은 “언택트와 콘택트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이라며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반겼다. 자동차 용어로 치면 ‘하이브리드’ 공연인 셈이다.
무대 위 실연자와 자동차 안 관객들은 자동차를 매개체 삼아 교감해야 했다. 관객들은 박수 대신 경적을, 함성대신 비상등을, 환호 대신 상향등을 번쩍거려야 했다. 공연장 스피커가 설치돼 있었지만 차 속 라디오 전파로 사운드를 즐겨야 했다.
신차 출시 현장에서 귀가 닳도록 들었던 ‘극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사운드 시스템’이 코로나19로 실연(實演)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금기의 시그널’들이 교감의 도구로 쓰일 줄은 또 누가 알았을까? 분명 눈 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이었지만 사운드는 ‘크게 라디오를 켜고’ 격리된 공간을 빵빵 때렸다.

최정원의 ‘새로운 경험’은 곧 색다른 감동으로 승화 됐다. 무대 중간 인사말을 하는 최정원은 “마치 하늘에 있는 별이 땅에 내려앉은 것처럼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무대에 굶주린 배우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었다.
공연 분위기가 무르익자 무대와 관객들을 격리시키고 있는 막들은 한 꺼풀씩 걷히고 있었다. 차 안에서 내지르는 함성은 차창을 뚫고 나왔다. 무대 위에서는 번쩍거리는 불빛과 경적소리, 출렁거리는 서스펜션으로 관객들의 반응을 느끼고 있었다.
‘하이하이’를 시작으로 ‘꿈을 꾸다’를 열창하던 김태우는 “함성이 차창을 뚫었다. 여러분의 함성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급기야 ‘사랑비’를 부를 때는 여느 무대처럼 마이크를 객석으로 넘기기도 했다. 사랑비를 ’떼창’하는 목소리는, 희미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1만 명이 몰린 작년 ‘스테이지 X’가 젊은이들의 축제였다면 수백 대의 자동차가 몰린 올해의 공연은 온 가족이 ‘차 안에서 즐기는 가장 안전한 콘서트’가 됐다.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로서는 의외의 수확이 될 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가 물러나더라도 이런 형태의 공연은, 적어도 그 기획자가 자동차 회사라면, 한번쯤 더 차려봐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한바탕 태풍이 휩쓴 뒤 엔딩을 알리는 무대 옆 스크린에서는 이런 문구가 흘렀다.
“걱정 마세요. 우리는 지금 더 가까워지려고 거리를 두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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