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아, 그때를 봄날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16일 서산구장. 한화 새 외국인 타자 브랜든 반즈가 2주 자가격리에서 해제돼 퓨처스 팀에 전격 합류했다. 1군 선수단 일정을 따라 수원 원정에 있던 정민철(48) 한화 단장도 반즈를 격려하기 위해 서산구장을 찾았다.
반즈의 퓨처스리그 데뷔전을 보기 위해 임원실에 있던 정민철 단장에게 깜짝 손님이 찾아왔다. 상대팀 SK 투수 이태양(30)이었다. 지난달 18일 SK로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이태양은 한화에서 11년을 뛰었고, 정민철 단장이 투수코치일 때 사제의 연을 맺었다.
![[사진] 이태양-정민철 단장 /OSEN DB](https://file.osen.co.kr/article/2020/07/17/202007170148776903_5f1085b891264.jpg)
하지만 공과 사는 분명했다. 정 단장은 외야수 노수광을 데려오기 위해 ‘애제자’ 이태양을 트레이드 카드로 쓰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SK 2군과 퓨처스리그 경기를 위해 강화 원정에 있었던 이태양은 정 단장에게 전화 통화로 트레이드 소식을 접한 뒤 눈물을 쏟으며 짐을 쌌다. 그 이후 뜻밖에도 예정에 없던 서산구장에서 재회했다. 1군이 아닌 2군에서의 만남, 기대했던 그림은 아니었다.
상대팀으로 만난 이태양의 첫 인사. 정 단장은 “SK에 친한 사람 별로 없지?”라는 농담을 툭 던졌다. 이태양은 “제가 워낙 사교성 좋잖아요. 1군에 적응할 만하니 내려와서…”라고 답했다. 이태양은 지난 11일 구위 회복을 위해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뒤 2군에 내려갔고, 14일부터 서산 원정을 왔다.
대화는 이태양의 최고 시즌이었던 2014년으로 흘러갔다. 당시 한화 투수코치였던 정 단장 지도를 받아 주축 선발로 급성장한 이태양은 인천 아시안게임에도 발탁됐다. 우완 정통파 선발로 정 단장이 적극 홍보했고, 이태양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태양은 “타이밍이 좋았죠”라고 그 시절을 떠올렸다.
![[사진] 2014년 한화 투수코치 시절 정민철 단장(왼쪽)과 이태양(가운데) /OSEN DB](https://file.osen.co.kr/article/2020/07/17/202007170148776903_5f108634d46ab.jpg)
정 단장은 “태양이 너가 국가대표된 것이 지금도 미스터리”라고 또 다시 농담을 던졌지만 이내 묵직한 한마디를 던졌다. “태양아, 그때를 봄날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이제는 다른 팀이 됐지만 오랜 기간 정을 쌓은 제자에게 건넨 애틋한 충고. 지나간 성공에 머물지 않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길 바라는, 스승의 진심 어린 한마디였다.
이태양이라고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정 단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럼요, 제 봄날 아직 안 왔습니다”라고 힘차게 답했다. 이날 경기 조가 아니었던 이태양은 정 단장과 둘만의 시간을 조금 더 가졌다. 한화라는 추억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이제는 SK 선수로 독기를 품고 살아남아야 한다.
2014년 최고 시즌을 보냈던 이태양은 그러나 이후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으며 고생했다. 2018년 구원투수로 부활해 한화의 가을야구를 이끌었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하향세에 있다. 올 시즌 성적은 17경기 1홀드 평균자책점 6.38. SK 이적 후 10경기 평균자책점 5.59로 아직 눈에 띄는 반등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SK는 이태양에게 또 다른 봄날이 찾아올 것이라 믿고 있다. 박경완 SK 감독대행은 “이태양은 앞으로 우리 팀 선발 자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태양은 145km 이상 무조건 던질 수 있는 투수”라고 기대했다. 이태양은 2군에 내려온 이후 첫 경기였던 15일 한화전에 구원등판, 1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이날 최고 구속은 145km였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