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도와주셨는데 못 하면 죄송하잖아요." 이승진(25·두산)이 잘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이승진은 지난 5월 29일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팀을 옮겼다. 두산은 투수 이승진과 포수 권기영을 영입했고, 포수 이흥련과 외야수 김경호를 SK에 보냈다.
수원신곡초-매송중-야탑고를 졸업한 이승진은 2014년 2차 신인드래프트 7라운드(73순위)로 SK에 입단했다. 140km 중반의 직구와 함께 커브를 주무기로 구사한 그는 선발과 롱릴리프 등 활용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두산 이적 후 두 경기에 나섰던 그는 퓨처스리그에서 본격적으로 선발 투수로 준비를 했다.
새로운 팀에서 적응력은 좋았다. 박철우 두산 퓨처스 감독은 "멘털적으로나 기량적으로나 운동하는 자세가 정말 좋은 선수다. 트레이드로 왔는데 코치들과 이야기하는 자세가 좋다. 항상 열려있는 마음으로 훈련에 임한다"라며 "투수 밸런스도 많이 좋아졌고, 마운드에서 여유가 생겼다"고 칭찬했다.
# “야구가 뭔가요?”
이승진과 야구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성남 수진초에 재학 중이었던 이승진은 친구와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이상한(?) 아저씨 한 명이 찾아왔다. 갑자기 따라오라고 하는 아저씨는 겁을 먹었던 이승진에게 제안을 했다. "야구 할래?"
'꼬마' 이승진은 야구가 무엇인지 몰랐다. "야구가 뭔가요?"라고 묻는 이승진에게 아저씨는 야구에 대해 알려줬다. 그리고 이승진을 솔깃하게 한 한 마디. "공부 안 해도 된다"
무서운 아저씨는 당시 수진초 야구부 김현삼 감독이었다. 이승진은 "야구를 하면 공부를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시작한 것 같다. 같이 갔던 친구는 야구를 안 하고 나만 했다"고 웃었다. 이승진은 4학년 겨울까지 있다가 5학년 시작과 함께 수원으로 이사를 갔고, 수원 신곡초에서 졸업을 했다.
![[사진] (왼쪽 큰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야탑고 시절-수원신곡초 시절-매송중 시절 이승진 / 이승진 제공](https://file.osen.co.kr/article/2020/07/20/202007202331778704_5f15cd2c37186.jpg)
# “타격이 싫어요. 투수 할래요”
이승진이 본격적으로 투수를 시작한 것은 매송중 1학년 때부터다. "타격을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승진은 "배트에 먹힌 타구 나왔을 때 생기는 손 울림이 너무 싫었다"라며 "코치님께 타격을 하면 밸런스가 흔들린다고 변명을 하며 타격 연습에 빠지곤 했다"고 떠올렸다.
실력이 없으면 통하지도 않을 소리. 그러나 당시 이승진은 중학교 선수 중에서도 수준급이었던 만큼, "투구 훈련에 전념하라"는 허락을 맞았다.
당시 매송중은 프로에 간 선수가 6명이 될 정도로 탄탄한 전력을 자랑했다. 이승진과 함께 김경호(SK), 임병욱(키움), 김기환(NC), 김동우, 권태양(이상 전 롯데)이 프로 진출에 꿈을 이뤘다.
이승진은 “(김)동우와 (권)태양이 모두 잘 던졌다. 사실 나는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그래도 친구들끼리 경기도 대회를 앞두고 '나는 노히트 노런을 하겠다', '나는 퍼펙트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구속도 빠르지 않고, 제구도 그저 그런 투수였다"고 소개한 '중학생 이승진'은 노히트노런을 했다.
고등학교 진학 후 이승진은 부상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이승진은 "고등학교 때 야구를 잘 못했다. 아프기만 했다. 좋을 때는 구속이 144km까지 나오곤 했는데 팔을 풀다가 어깨가 아파서 막상 마운드에서는 130km 밖에 나오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어깨 통증이 이어지면서 경기에 나가지 못하자 자신의 짐까지 짊어진 김동우는 이승진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친구다. 이승진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어깨가 아팠다. 그래서 동우가 많이 경기에 나갔다. 고 3때 동우는 13승을 기록하기도 했다"라며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어깨가 좋지 않았던 탓에 프로 입단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이승진의 이름은 7라운드에 나왔다. 이승진은 "지명을 받았을 때 좋기도 했지만, 사실 많은 고민도 했다. 하위 라운드에 지명을 받으면 몇 년 안 가서 방출 당하게 된다는 생각이 컸다. 대학교 진학도 고려하고, 군대를 갈까라는 생각도 했다"라며 "부모님께서 '프로에 가기 위해서 여태까지 야구를 했는데 금방 짤리더라도 해보는데까지 해보자'고 하셨다. 그 말에 힘을 얻어 도전을 택했다"고 솔직한 당시 심정을 이야기했다.
다행히 프로 입단 후 아픈 곳은 없었다. 이승진은 "고등학교 때 다 아팠던 것 같다. 최근에 트레이드 되면서 메디컬테스트를 봤을 때에도 몸 상태가 좋다고 하셨다"고 몸 상태를 자신했다. .
# 사라진 7km/h. 독이 된 열정
프로에 입단한 이승진이 처음으로 1군에 모습을 보인 것은 프로 5년 차 때인 2018년. 당시 이승진은 34경기에 나와 41⅓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4.57을 기록했다.
이승진은 "상무에서 제대하고 왔을 때였다. 상무에서 첫 해에는 잘 됐는데, 제대할 때 쯤 안 좋아졌다. 그러다가 손혁 감독님이 당시 코치님으로 왔는데 좋게 봐주신 덕분에 2018년에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왔다. 비록 한 경기도 못 던졌지만, 운 좋게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에도 이름을 올렸다"라며 "좋은 모습을 가지고 2019년 스프링캠프를 갔는데 더 좋았다. 시범경기까지 좋아서 잘 할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개막전부터 페이스가 뚝 떨어졌다"고 이야기했다.
페이스가 떨어진 가운데 야구에 대한 지독한 열정은 발목을 잡았다. 이승진은 "구속이 7km가 떨어지다보니 계속 야구 생각만 하면서 폼도 바꾸고 그랬다. 혼자 많은 생각을 하다보니 오히려 독이 됐다"고 아쉬워했다.

# "나 떠나" "거짓말 하지마"
2019년 17경기 출장에 그쳤던 이승진은 올 시즌 5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트레이드로 팀을 옮기게 됐다는 것. 2대 2 트레이드에서 공교롭게도 대상 중 한 명이 고교 동창 김경호였다. 트레이드 발표 후 "우리는 왜 같이 만나지를 못하냐"라는 한탄이 오갔다.
SK 동료들의 아쉬움도 짙었다. 이승진은 "(조)영우와 (이)건욱이와 같은 오피스텔에서 사는데 처음에는 트레이드 소식을 믿지 않았다. 기사 보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믿더라"라며 "트레이드 된 날에 커피 마시면서 위로해줬다. 또 다른 형들도 팀을 옮겨도 야구를 하는 것이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도 같이 뛰던 사람들과 떨어진다니 아쉬웠다"고 말했다.
동시에 기대도 있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겠구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두산은 2020년 시즌을 앞두고 김상진 코치를 새롭게 영입했다. 김상진 코치는 이승진이 SK에서 처음 만난 코치이기도 했다. 이승진은 "프로에 와서 김상진 코치님이 예뻐해주시고 많이 챙겨주셨다. 다시 만났는데 ‘큰 절 한 번 해라’라며 반가워 하셨다"고 웃었다.
# 요행 아닌 실력…과제는 "생각 하지 말자"
트레이드 후 이승진은 얼마지나지 않아 1군 무대를 밟았다. 6월 3일 KT전에서 1이닝 1볼넷 무실점으로 안정적으로 ‘두산 데뷔전’을 치렀지만, 4일에는 아웃카운트를 한 개도 잡지 못한 채 3피안타 1볼넷 3실점을 기록했다. 결국 이승진은 다음날 2군행 통보를 받았다.
이승진은 "너무 아쉽기는 했지만, 솔직히 첫 번째 잘 던진 것은 운이 좋았다. 요행을 바란 것 같았다"라고 되돌아봤다.
퓨처스리그에서 이승진은 재정비에 돌입했다. 이승진은 단내나는 훈련을 받으면서 "정말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코치님들이 밤낮으로 정말 열심히 가르쳐주신다"라며 고마운 마음도 꺼내보였다.
일단 효과는 좋았다. 이승진은 최근 나선 퓨처스리그 경기 4경기에서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이승진은 "코치님들께서 투구 리듬을 많이 강조하셨다. 또 생각이 너무 많다는 지적을 받아서 생각을 비우고 공을 던지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헀다 이어서 그는 "코치님들께서 이렇게 많은 힘을 쏟으시는데 못 던지면 죄송스러울 것 같다”라며 “꼭 코치님들께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다고 뿌듯함을 선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롤모델은 SK에서 한솥밥을 먹다 올 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광현(세인트루이스)을 들었다. 이승진은 "어릴 때 TV로 보고 같은 팀에서 가까이에서도 봤는데 멋있었다. 마운드에서의 모습도 그렇고, 팀에서의 성격과 마인드 모두 좋았다"고 밝혔다.
김태형 감독은 최근 선발 크리스 플렉센이 발등 골절로 빠지게 되면서 이승진을 콜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는 22일 잠실 키움전 선발이 유력하다.
이승진은 "다시 1군에 올라가면 볼, 볼 하지 않고 확실하게 잘 던지고 싶다"라며 "사실 상대의 중심타선이 나온다고 피하고 싶어서 볼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꼭 잡아야지'라는 생각이 앞서서 힘이 들어간다. 다시 1군에 올라간다면 확실하게 내 공을 던지면서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bellstop@osen.co.kr